잘 모르는 이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건 언제나 어색하다. 3년 전 그날도 그랬다. 배다리(동구 송림동 일대)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이에게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로 한 날이었다. 책방이 한가해지는 저녁시간에 맞춰 약속을 잡았다. 그가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잖다. 책방 한쪽 가스버너에선 찌개가 끓고 있었다. “찌개가 조금 덜 끓었네요. 조금만 기다려 줘요”

찌개가 끓는 동안 헌책방 안을 서성였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헌책들이 책방 입구에 높이 쌓여 있었다. “책은 어떻게 가져 오시나요?” “따로 구입하는 데가 있어요. 가서 골라오는 게 일이죠” “아, 책을 직접 고르시나 봐요” “그럼요. 있는 대로 가져와서 쏟아놓고 파는 게 아니에요. 책에 대해 많이 알수록 책방도 풍부해지죠. 그래서 여전히 공부 중이에요” “책방을 몇 년 하신 거죠?” “스물세 살 때부터 했으니까…40년이 넘었네요”

▲ 심혜진 그림.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의 어린 시절로 흘렀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 태어나 전쟁 중 아버지를 잃고 학교를 다니지도 못했다. 버스안내원, 목재소 선별공, 호떡장사, 월부 책장사, 공사현장 일꾼, 담요판매원…. 그가 책방을 내기까지 전전한 직업들이다. 힘든 일상 속에서도 책을 펼치면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단다. 돈을 모아 세 평짜리 담뱃가게를 인수해 책방을 열고 1년 동안 서울 청계천 철길을 오가며 고물상을 뒤져 책을 모았다. 책방 운영만으론 생계가 해결되지 않아 새벽 4시에 일어나 우유배달을 했다.

“처음엔 책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점점 책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사명감이랄까,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하루하루 이어가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어느덧 찌개가 다 끓었다. 작은 상 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것은 된장찌개였다. 어색하게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이야기는 책방 문을 닫을 번 한 사연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중반, 낙후한 구도심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배다리 지역을 전면 철거한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책방 문을 잠시 닫았다가 공사가 완료되면 다시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30년 지켜온 책방을 보상금 몇 푼에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주민들과 함께 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2008년, 오랜 농성에 지친 주민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갔다. 주저앉을 수 없었던 그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낸 순간이었다. 결국 인천시는 2010년 ‘배다리가 문화적 보존가치가 있는 지역’이라며 철거계획을 철회했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인 시위를 접었죠. 그런데 어때요? 찌개는 먹을 만해요?” 이야기에 빠져 된장찌개 맛을 제대로 느낄 새가 없었다.

“지난 김장철에 누가 퍼런 배추 겉잎을 잔뜩 내다 버렸더라고요. 가져와 김치를 담갔는데, 오늘 처음 꺼내서 된장 넣고 끓였어요. 옛 맛이 나는 게 맛있네요” 헌책방과 버려진 배추겉잎찌개, 묘하게 어울렸다.

나이 칠십을 눈앞에 둔 그가 지금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인생 두 번째 시위다. 배다리 일대 지하엔 터널이 뚫려 도로와 건물에 금이 가고, 지상엔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이다, 관광 사업이다, 온통 시끄러운 ‘공사’와 ‘개발’이야기만 오간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뜻과 전혀 맞지 않는 개발에 맞서 또 다시 고된 싸움을 시작했다.

한편, 배다리는 요즘 도깨비가 나오는 드라마 촬영지라는 이유로 관광객이 몰린다. ‘인증샷’만 남기고 돌아가는 이들에게 45년 동안 지켜온 책방이나 속살이 썩어가는 지역 사정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터. 소박한 식사를 나누며 살아온 주민들의 삶이 더 이상 흐트러지지 않아야할 텐데. 다시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봐야겠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