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유진영 전국언론노동조합 OBS희망조합지부장

<인천투데이>은 올해 새로운 코너로 ‘현장 속으로’를 마련했다.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애환과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장의 소식을 전한다.

OBS경인TV(이하 <OBS>)는 이달 14일 직원 18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이미 <OBS>는 2월 3일 직원 19명을 자택 대기발령했다. 또한 직원 33명에 대해서도 외주화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OBS희망조합지부(이하 OBS지부)는 14일, 정리해고 대상자 18명 중 17명이 전ㆍ현직 지부 간부로 ‘노조파괴 음모’라 규정한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회사 안에 천막농성장을 설치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지난 21일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 위치한 <OBS> 사옥을 방문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유진영 OBS지부 지부장을 만났다. 이날 아침에 김성재 <OBS> 부회장이 회사를 방문해 지부 조합원들은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인터뷰 도중에 김 부회장이 회사를 나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 지부장은 지부의 요구를 김 부회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인터뷰를 중단했다. 지부는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김 부회장이라고 판단, 김 부회장이 회사를 떠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가 합의한 ‘공익적 민영방송’

▲ 유진영 전국언론노동조합 OBS희망조합지부장.
<OBS>는 2007년 12월에 개국했다. 하지만 <OBS>의 역사를 얘기하려면 1997년 10월 개국한 <iTV>(인천방송)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유 지부장은 <iTV> 공채 1기로 입사했다.

“1997년 4월 개국 준비팀으로 입사했다. 당시 전국 광역시ㆍ도 중에 인천만 지역방송이 없었다. 서울과 묶인 수도권이라는 조건으로 인천이 여러 방면에서 소외됐다. 인천시민들의 숙원이었던 <iTV> 개국으로 인천의 정체성과 고유한 문화를 쌓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시 <iTV>는 <SBS>처럼 지역민영방송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라는 어려움에 광고수익 감소로 이중고를 겪었다. 그러다 LA다저스 박찬호 선수의 경기 중계권을 따내 한동안 활성화된 듯했으나 지배주주인 동양제철화학의 투자 거부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결국 방송위원회의 방송 사업권 재허가 거부로 정파(=방송 중단) 결정이 나, 2004년 12월 31일 <iTV>는 전파를 중단해야했다. ‘대주주의 투자의지 결여’가 재허가 거부 이유였다. 방송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프로그램 100% 자체 제작과 좋은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직원들은 방송이 중단된 날 울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공익적 민영방송’으로 새롭게 출발하기를 바라는 노조 조합원들과 시민들은 ‘새 방송 창사 준비위원회(이하 새방송준비위)를 출범시켜 공익적 민간자본과 시민주를 모집했다. 경인지역의 새로운 방송을 꿈꿨던 노조원들은 3년 넘게 ‘실업’ 상황을 견뎠고, 인천과 경기 지역 시청자들은 이들을 믿고 힘을 보탰다.

정부는 바로 신규 사업자를 모집했다. 당시 영안모자(회장 백성학)가 사업권을 땄다. 원래 영안모자는 1차 공모 때 지원 사업자 5개 중 5위에 그쳤지만, 새방송준비위의 지지에 힘입어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2007년 6월 1일, 옛 <iTV> 노조원들로 구성된 OBS지부 조합원 160여명은 <OBS>의 직원으로 복직했다. <OBS> 개국 때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은 노사는 ‘건강한 방송, 공익적 민영방송을 만들겠다’는 가치에 흔쾌히 합의했다.

“<iTV> 폐업의 핵심은 대주주의 투자 거부였다. 그 상황을 보면서 주주의 투자 여부로 방송사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느꼈다. 전파의 공공성을 생각한다면 시청자가 주인이지, 결코 주주자본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공익적 민영방송’이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방송사는 공공적 역할을 해야 하기에 재원의 공익성도 담보돼야한다. 그런 튼튼한 구조를 만들어야 방송을 사유화하려는 세력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모델은 유효하다”

‘희망’이라는 글자를 떼고 싶은 OBS희망조합지부

▲ OBS지부는 지난 3월 14일부터 ‘정리해고 철회’와 ‘김성재 OUT’을 내걸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OBS>는 개국하자마자 <SBS>와 광고결합판매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었다. 지역민영방송의 경우 재정상황이 취약하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 광고와 묶는 ‘결합판매’ 방식으로 광고를 따낸다. 지역방송은 원래 공영 미디어렙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에서 광고를 받다가 <SBS>가 대주주로 있는 민영 미디어렙인 미디어크리에이트(SBSMC)에서 광고를 받게 돼, KOBACO 때보다 광고를 적게 받게 됐다. 개국한 지 1년 만에 광고수익이 줄어들자 <OBS>는 제작비를 축소하고 긴축경영을 했다. 게다가 직원들의 임금까지 삭감하겠다고 나왔다.

“방송이 없어졌던 경험을 한 조합원들이라 공익적 민영방송의 모델을 만들어가자는 생각이 강해, 임금 부분은 손해를 감수할 수 있었다. 임금을 양보하더라도 그 비용이 제작비로 쓰인다면 좋은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데 밑거름이 되길 원했다. 그러나 무위로 돌아갔다”

개국이래 한 번도 임금이 인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OBS지부는 세 번이나 임금의 10%를 반납했고 호봉을 동결하고 연차를 반납하기도 했다. 또한 OBS지부는 대주주가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조합원들의 퇴직금을 반납해서라도 자본 잠식을 막겠다는 결의까지 했다. 그러나 회사는 조합원들의 희생으로 확보한 자금을 경영수지를 맞추거나 적자를 줄이는 데만 사용했다.

“대주주가 책임을 지고 경영이나 수익 개선 노력을 해야 하는데 노동자들만 희생했다. 지역방송을 살리기 위해 온 몸을 바쳐 지금까지 왔다.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조합원도 많다. 그나마 가족들이 우리에게 꿈을 실현하라고 지지해주고 있어서 버티고 있다”

그 꿈은 무엇일까? OBS지부 이름에 붙어있는 ‘희망’과 연관된 게 아닐까? OBS지부의 정식 명칭은 OBS희망조합지부다. 다른 산별노조 지부의 명칭과 다르다. 그 이유를 물었다.

“<iTV>가 없어졌지만 새방송준비위를 하면서도 전파는 지켜야한다고 생각했다. 지키기 위해 움직일 세력이 필요했다. 그때 새 희망을 만들자는 염원을 담아 ‘희망조합’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했다. OBS지부가 생겼지만 아직 우리가 꿈꾸는 지역방송은 아니다. 지금은 존재 자체가 불안하다. 희망이 완성되는 날 ‘희망’이라는 글자를 떼겠다”

지역방송은 지역 민주주의의 창구 역할

▲ 지난 21일 국장단 회의를 주재하러 온 김성재(사진 가운데) 부회장에게 OBS지부 조합원들이 퇴진을 촉구했다.
유 지부장은 방송은 일반 사업과 달리 청산 절차를 밟더라도 무형의 전파는 살아있고 시민들의 시청권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방송은 시청권의 개념으로 접근해 꼭 지켜야한다고 덧붙였다.

“시청권이 중요한 만큼 지역방송이 중요하다.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지역방송은 서울과 거리가 먼 곳인 부산ㆍ대구ㆍ광주 등에 있다. 서울과 멀수록 재원도 튼튼하고 공중파 방송이 담지 못하는 지역의 의제를 방송으로 보여준다. 인천도 지역이다. 생활권이 서울로 흡수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지역방송이 없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OBS>가 경인지역의 구심으로 지역민의 민주주의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

<OBS>의 콘텐츠와 프로그램에 대한 유 지부장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iTV>의 강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iTV>의 6mm 다큐 ‘경찰24시’나 ‘리얼 다큐’, <OBS>의 ‘휴먼다큐’ 등은 시청자 반응이 좋았다. 오히려 그런 장르를 지상파 방송에서 가져가기도 했다. 우리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모은 결과였다. 잘 이어갔다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쉽다. 다른 지역민영방송과 달리 우리는 100% 자체 편성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콘텐츠 투자를 통한 수익창출보다는 비용절감만 한다. 그러니 제작이 축소되고 방송의 영향력도 떨어진다”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OBS>에 조건부로 방송 사업권(3년간) 재허가를 승인했다. 2011년 3월까지 재무구조 개선계획을 제출하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회사가 재허가 조건을 위반해, 방통위는 2012년 10월 시정을 요구했다. 2013년 12월에도 ‘50억원 증자, 현금보유액 87억원 유지, 제작비 311억원 유지’ 등을 조건으로 재허가를 승인했다. 그러나 이 또한 회사는 지키지 않았다.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23일, <OBS> 대주주와 경영진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진행한 뒤 그달 26일 전체회의에서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했다. 사업권 취소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것이다.

방통위는 올해 12월 31일까지 대주주가 30억원을 증자하지 못하면 바로 재허가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방통위의 재허가 조건은 대주주가 책임지고 투자하라는 거다. 그러나 오히려 ‘혁신경영’이라는 미명 아래 정리해고를 했다. 비용절감으로 단기적인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몰라도 <OBS>가 살아남으려면 시민들한테 사랑과 신뢰를 받아야한다. 그러려면 콘텐츠로 승부를 내기 위해 투자해야한다”

유 지부장은 <OBS>가 지금의 사태까지 오게 된 데는 대주주와 경영진의 무능력도 큰 원인이지만, 지역방송의 필요성과 시민들의 시청권 보장 차원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년간 시청환경 등이 크게 달라졌지만 방송법은 변하지 않아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역방송은 더 소외됐다. 그 화두가 <OBS> 문제다. 다른 지역방송도 곧 일어날 문제다.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방송재원을 광고로만 할 게 아니라 기금 마련 등, 대책을 세워야한다. 지역방송은 풀뿌리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탄생했다. 지금의 법이 이런 목적에 부합하는지, 재정비해야한다. 단순한 노사의 문제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지역방송의 문제, 지역 시청권의 문제로 확대해야한다. 하지만 지금 현안인 정리해고 철회 투쟁과 이 문제를 야기한 김성재 부회장을 퇴진시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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