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유난스러웠다. 느닷없이 우유를 컵에 따라 마시고 싶었다. 교실 뒤에서 물컵을 가져와 우유를 부었다.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는데, 창문을 열고 칠판지우개를 털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와 우유를 그래 먹노?” “우윳빛이 예쁘다 아이가” 원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튀어나왔다. 햇살 사이로 하얀 분필가루가 어지럽게 오갔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수업을 시작할 무렵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샘요, 오늘 우유를 못 먹었는데요”

담임선생님은 먼저 주번에게 우유를 잘 받아왔는지 확인했다. 주번은 틀림없이 우리 반 번호가 적힌 우유박스를 가져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우유 먹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오늘이 1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며칠 전 우유급식 신청서를 집으로 가지고 간 날, 엄마는 “다음 달부턴 우유를 끊어라”라고 했다. 아빠가 직장을 그만 두고 사과 장사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4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우유급식을 끊은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 심혜진 그림.
그날 일이 머릿속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범인은 나였다. 하지만 손을 들 수 없었다. 선생님은 손을 든 아이들의 수를 세었다. “맞는데…” 선생님은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주겠다며 아이들을 설득했다. 나는 끝내 손을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주번을 일으켜 세웠다. 손을 들지 않은 아이들 중에서 오늘 우유 먹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교실에 긴장감이 돌았다. 얼굴이 벌게진 두 아이가 두리번거리며 아이들을 살폈다. 그날 나는, 하필이면 컵에 우유를 따라 마시다 주번과 눈이 마주친 터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주번의 눈을 피했다. 할 수만 있다면 책상 아래에, 아니면 신발주머니에라도 몸을 구겨 넣고 싶었다. 주번은 나를 찾아내지 못했다.

선생님은 “남의 것에 손을 대면 안 된다, 솔직해야한다”는 훈계를 했다. 그리고 “너희도 책임자”라며 애꿎은 주번을 나무라는 것으로 그 일은 마무리됐다.

그날부터 나는 주번이었던 그 친구를 피했다. 들키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다른 감정들이 나를 괴롭혔다. ‘고작 우유 한 개’로 아이들을 몰아세운 선생님도 밉고, 우유를 못 먹게 한 엄마도 미웠다. 하지만 가장 미운 건, 그날 우유를 마신 나였다. 갑자기 가난해진 나, 달이 바뀐 줄도 모르고 허세라도 떨 듯, 컵에 우유를 부어 마신 내가 제일 미웠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나를 쿡쿡 찔러댔다.

며칠 전, 작은 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응원을 할 겸 입학식에 갔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나눠준 가정통신문들을 들춰보았다. 우유급식 신청서에 눈길이 멎었다. 30년 전 그 일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지금도 누군가는 이 종이 한 장에 한없이 작아지겠구나…. 이 아이들 중 누군가는…’

학교에서 우유급식을 하는 게 옳은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잠시 제쳐두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적어도 아이들이 먹는 것 앞에서 만큼은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누가 그깟 우유 하나에 기가 죽느냐고, 오히려 안 먹어서 걱정이라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더욱 자유롭길 바란다. 학교에서 급식을 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우유가 필요하다면, 그 좋은 것, 공평하고 당당하게 누릴 수 있길 바란다. 누구든 먹을 수 있고, 누구든 먹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가볍게, 정말 가볍게 말이다. 아이들에겐 그럴 권리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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