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권연벌레에요. 곡식 주위에 잘 생겨요”

깜짝 놀랐다. 벌레가 아니라 친구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휙 날아와 밥상에 내려앉은, 동그랗고 작은 갈색 벌레의 이름을 알다니. 게다가 식성까지 꿰뚫고 있다.

“이런 벌레 이름도 알아?”
“요즘 하는 일이 그렇잖아요”

친구의 별명은 ‘홍학’이다. 얼굴이 자주 빨개지고 팔다리가 가늘고 길어서 생긴 별명이다. 홍학을 처음 만난 건 7년 전. 내가 일하던 곳에 홍학이 자원활동가로 지원했다. 밝은 성격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했고, 맡은 일을 기대치 이상으로 해냈다. 업무를 총괄해야하는 내 입장에선 기특하고 고맙기 그지없었다.

학교 성적도 좋아서 장학금을 받는다고 했다. ‘스펙’ 쌓는 일도 열심이었다. 어려운 철학책도 척척 읽어냈다. 그런 홍학에게도 구멍이 있었으니,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것들, 예컨대 흔한 풀이름이나 자연ㆍ사회 현상에 대한 작고 가벼운 상식이 거의 없다고 할까. 홍학은 ‘교과서’였고, 또 ‘허당’이었다. 나는 그런 홍학이 좋았다.

 
홍학이 우리 집에 놀러온 건 내가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바나나크레이프(크레페) 사진 때문이다. 크레이프는 밀가루에 우유와 계란, 설탕을 넣어 반죽한 것을 프라이팬에 얇게 구운 것이다. 그냥 먹기도 하고, 꿀이나 크림, 잼 등을 바르거나 과일을 올려 먹는다. 나는 초코크림을 듬뿍 바르고 바나나를 얇게 썰어 올렸다. 홍학은 초콜릿을 무척 좋아한다. 게다가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다. 얼마 후 홍학이 집으로 날아왔다.

나는 크레이프 한 접시를 홍학에게 대령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벌레 한 마리가 날아왔고, 홍학이 벌레 이름을 맞춘 것이다. 허당 홍학이 벌레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대학시절 종횡무진 하던 홍학은 졸업을 앞두고 몸이 아팠다.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한 탓에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온 것이다. 취업을 했지만 얼마 못가 그만 뒀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 보니 디스크가 더 심해져버렸다. 몇 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홍학은 깨달았다.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생겼구나’ 꿈이 사라진 것은 디스크보다 더 큰, 존재의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었다.

힘겹게 자신의 상황을 인정한 홍학은 디스크 수술 대신 몸살림운동을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 날마다 울었다. 그래도 대학을 졸업했으니 스스로 생활을 책임지고 싶었다. 몸을 쓰는 일도, 사무일도 할 수 없었다. 결국 홍학이 찾아낸 일은, 바퀴벌레 약 광고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일이었다. 하루에 한두 시간만 일하면 용돈은 벌 수 있었다. 나머지 시간엔 운동을 했다. 몸은 많이 좋아졌지만 책상에 오래 앉는 일은 여전히 피해야했다.

“‘바퀴벌레 어떻게 잡나요?’ 이런 질문이 올라오면, 답글을 다는 것처럼 광고글을 쓰는 거예요. 광고글로 신고 되면 아이디가 차단돼 글을 못 써요. 티 안 나게 잘 써야죠”

우선 바퀴벌레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를 적는다. 벌레로 골치를 앓는 사람의 입장에 공감하는 마음, 그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광고는 맨 마지막에 딱 한 줄만 살짝 넣는다. 한때 대학에서 영화 비평으로 상까지 받은 실력이 아니던가. 홍학은 바퀴벌레를 넘어 집안에 등장하는 온갖 벌레에 대한 정보와 퇴치법을 줄줄 외울 수 있었다. 권연벌레는 그 중 작은 일부일 뿐이다.

“앞으로 뭘 할지 진짜 고민이에요”

올해 서른이 된 벌레전문가는 크레이프를 먹으며 미래를 걱정했다. 위로의 말을 할까, 용기를 내라 할까. 어떤 말도 쉽사리 할 수 없었다. 초코크림 범벅인 크레이프가 하나도 달지 않았다. 날이 따뜻해지면 홍학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헤매는 길에 누군가 함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