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0일 특별 인터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박흥석 전 ‘조사관

특조위 해산 뒤에도 후속모임 꾸려가는 중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사고원인과 구조실패의 진상을 규명하고, 아울러 피해자를 지원하고 안전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2014년 11월 19일 제정됐고, 이듬해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특별법을 근거로 해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출범했다. 특조위 활동은 사고원인과 구조실패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희생자와 유가족 등)를 지원하며,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조위는 이 같은 활동을 정상적으로 펼치지 못하고 지난해 6월 30일 사실상 강제로 해산됐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특조위 사무처 구성과 운영에 필요한 지원을 늑장부린 데서 비롯했다.

특별법에 따른 특조위 활동기간은 1년이고, 6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지난해 정부와 새누리당이 특조위 지원을 중단한 것은 “특별법 시행일이 2015년 1월 1일이니, 6월 30일로 1년 6개월이 됐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특조위와 야권은 특별법에 특조위 활동기간이 ‘특조위가 구성된 시점부터’라고 규정 돼있는 점을 근거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특조위를 구성한 게 2015년 8월 4일이니, 2017년 2월까지가 활동기간”이라고 맞섰다.

특조위가 파행을 겪으며 활동을 제대로 못한 데는 새누리당이 추천한 위원들의 불참도 한몫했다. 새누리당이 추천한 위원들의 사퇴와 새누리당의 예산 삭감 등으로 파행됐고, 심지어 국회를 청문회 장소로 사용하는 것조차 거부됐다.

정부 지원을 받는 특조위의 활동은 중단됐지만 모든 활동이 중단된 건 아니다. 특조위에 참여했던 조사관들은 특조위 부활을 기다리고 준비하며 후속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인천투데이>은 특조위에서 인양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박흥석(37) 전 조사관을 만나 그간 특조위의 활동 내용과 향후 과제 등을 짚어봤다.

“피해자 매도당하는 걸 보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선거가 국민을 잘살게 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박 전 조사관은 2014년 부평구에서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월호 참사를 접했다.
그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이게 국가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자신한테 던졌다. 그 뒤 2015년 5월 특조위가 조사관 채용 공고를 하자,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의 책임을 밝히는 데 역할을 하고자 응모했다.

그는 “온 국민이 세월호가 수장되는 것을 지켜봤다. 운항과 화물고박 관련 일부가 재판을 받기는 했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모습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들은 사각지대로 몰렸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피해자들은 이념공세에 시달렸고, 유가족들은 ‘시체장사’라는 망언까지 들어가며 보상금을 노린 집단으로 매도당했다. 정부가 생색내고자 제시한 것들인데도, 마치 유가족이 원해서 마련된 것처럼 매도당했다”며 “자식 잃은 부모가 삭발하고, 정치인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진상을 밝혀달라고 무릎을 꿇는 모습에 분노했다. 유가족은 잘못한 게 없는데, 진실을 요구하는 유가족이 매도당하는 것을 참기 어려웠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7월 27일 첫 출근을 했다. 이석태 위원장을 보좌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그러다 중반부터 특조위 내 진상규명국 소속으로 배치돼, 특조위가 해산될 때까지 세월호 인양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지금도 인양과 관련한 사안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정부는 진상규명 의지 없다고 느꼈다”

▲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박흥석 전 ‘조사관.
박 전 조사관은 특조위에서 일을 할수록 박근혜 정부가 진상규명에 의지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정부는 2015년부터 2016년 7월 말까지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도 인양하지 못했다.

정부가 인양 계획을 발표했을 때, 특조위는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특조위가 유언비어를 유포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론 인양하지 못했다. 정부는 2017년 4월까지 인양하겠다고 했지만, 2017년 6월로 다시 늦춰졌다.

박 전 조사관은 인양 작업과 관련해 ‘온전한 인양’이 정부 약속인데도 해양수산부가 밀실에서 의사결정으로 비밀에 부치는 게 문제고, 특조위가 인양 작업에 대해 조사하려하면 해수부가 인양업체를 핑계로 이마저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조위는 국가기구이고 조사권이 있다. 그리고 해수부와 상하이셀비지(인양업체)는 조사 대상이다. 그런데 조사하러가겠다고 하면, 해수부는 ‘상하이셀비지가 작업에 지장을 초래한다며 조사를 거부했다’고 한다”며 “해수부가 상하이셀비지를 인양업체로 선정했지만,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혹이 든다”고 말했다.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은 정부 약속이다. 그리고 2016년 7월까지 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양 계획과 과정을 유가족과 국민 앞에 공개하고 약속을 지키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러나 이 정부에선 온전한 인양은 불가능해 보인다는 게 박 전 조사관의 우려다.

박 전 조사관은 “해수부가 상하이셀비지를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선체를 온전하게 인양할 수 있다고 해서다. 그런데 상하이셀비지는 선체에 이미 천공 160개(2016년 10월 기준)를 뚫었다. 그 중 직경이 1m 50cm인 것도 있다”며 “선체 내부의 미수습자나 화물의 유실 가능성이 높아졌고, 선체 자체의 불안전성이 높아졌다. 낮에는 감시라도 하고 있지만, 밤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피해자들의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특조위 방해자들 대부분 영전, 이게 박근혜 정부”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를 방문했고, 눈물을 흘렸으며,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수습, 국가개조를 약속했다. 하지만 박 전 조사관은 이와 달리 “정부는 악랄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거나 진상규명을 방해한 자들이 대부분 영전했다는 것을 토대로, 이 같이 평가했다.

박 조사관은 가장 먼저 최근 민정수석으로 영전한 조대환 전 특조위 부위원장을 꼽았다. 그는 특조위 내에서도 가장 강하게 특조위 해체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박 대통령은 국회 탄핵 당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그를 민정수석으로 발탁했다.

박 전 조사관은 “고(故) 김영환 전 민정수석 비망록에도 그와 관련한 것으로 보이는 ‘정치지망생’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것만 봐도 정부가 철저하고 일관되게 방해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특조위 부위원장으로 부임한 이헌 변호사도 영전했다. 그는 특조위 활동과 관련해 언론에 공개된 정부 대응문건 ‘해수부 특조위 BH(청와대)조사 시 여(與)위원 사퇴 표명 대응방안’과 관련이 깊다.

박 전 조사관은 “언론에 공개된 내용을 보면 특조위가 ‘7시간’을 조사할 때 청와대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매우 상세하게 나와 있다. 문건에 나온 내용과 당시 이헌 부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추천 위원들의 행동이 거의 일치한다”며 “특히, 이헌 변호사는 특조위 해체는 물론 2차 청문회 때 대통령 관련 조사를 빼자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다”라고 쓴 소리를 했다.

또 특조위 비상임위원이었던 고영주 변호사는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으로 영전했는데, 그 역시 특조위 해체를 주장했다. 또한 ‘특조위 활동이 정치적으로 편향’이라며 사퇴 의사 표명 후 참여하지 않는 방법으로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황전원 비상임위원의 경우 지난 총선 때 출마한다며 위원직을 사퇴했는데, 공천을 못 받자 새누리당 추천 상임위원으로 복귀해 특조위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박흥석 전 조사관은 “해수부와 해경의 주요 관계자들이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모두 영전했다. 이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특조위를 방해한 인사들을 얼마나 끔찍하게 챙긴지 알 수 있다”며 “특조위 방해를 넘어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고 신음하는 유가족을 한 번 더 농락하는 행위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이렇게까진 못한다”고 비판했다.

“여야 합의로 특검 약속했지만, 새누리당이 거부”

특별법에는 특조위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권한 규정이 미비하다. 세 가지인데, 조직(인사) 권한, 예산 권한, 강제 조사권에 대한 규정이다.

조직 인사는 인사혁신처가 관리했다. 심지어 특조위 내부에서 진상규명국장을 추천했음에도, 특조위가 강제로 해산되는 날까지, 청와대는 임명을 거부했다.

예산은 해수부 관리아래 있었다. 해수부가 특조위 예산을 처리하지 않으면 기획재정부까지 가보지도 못했다.

일례로 특조위가 세월호 선체 조사를 위한 예산 40억원을 편성했더니, 곧바로 해수부가 선체 정리 용역으로 40억원을 편성했다. 기재부는 유사한 목적의 예산이라며 특조위의 선체 조사 예산을 삭감했다.

조사권은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다. 박 전 조사관은 “구조실패에 대한 책임은 해수부ㆍ해경ㆍ해군ㆍ국정원ㆍ청와대 등의 정부부처와 기관에 있다. 그래서 조사대상이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조사에 강제권이 없어, 관련 기록을 요청해도 거부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실제로 거의 대부분 거부했다. 해군ㆍ국정원ㆍ청와대는 얼씬도 못했다”고 말했다.

여야는 특조위가 특검을 요청하면 통과시켜주기로 19대 국회 때 합의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로 특검을 요청하자, 새누리당은 거부했다.

그 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20대 국회 때 이 같은 특별법의 문제점을 보완해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신속안건으로 처리됐다.

개정안에 찬성하는 의원이 180명 이상이면 바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지만, 야당의원만으로는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신속안건 처리방안을 택했다. 신속안건은 상임위원회 통과 후 330일 이후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안건으로,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면 통과된다. 물론 야권공조가 전제돼야한다.

“특조위 강제 해산,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2016년 6월 30일, 특조위 활동기간이 강제로 종료되고 나서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의견이 특조위 내에서 강했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진상규명에 대한 소명이 컸다.

그래서 조사관 20여명이 활동을 이어자가자고 뜻을 모았고, YMCA에서 공간을 내줘 특조위 조사관 후속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자료를 정리하고 정부대응도 하고 있다.

박 전 조사관은 “향후 특조위가 재구성됐을 때 도움을 주기 위해 우선 조사의 방향과 관점, 자료의 우선순위에 대한 경험을 정리하기로 했다. 관련 기록을 가져나올 수 없었지만, 각자 알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고 한 뒤 “모니터링을 하면서 정부의 왜곡된 정보에 대응하며 바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감추는 자가 범인, ‘7시간 규명’ 정말 중요”

박 전 조사관은 특조위 활동이 궤도에 어느 정도 오를 때쯤 강제 해산당하면서 무력감이 밀려오긴 했지만, 특조위가 조사 방해와 거부라는 한계에도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했다. 특히 정부가 비밀로 간주하거나 없다고 했던 자료를 공개하게 했다는 것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참사 발생 직후 구조세력(=해수부ㆍ해경ㆍ해군 등) 간 무선통신기록이 조작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구조 당시 해경이 선원인줄 모르고 구조했다고 했는데 거짓말임을 밝혔고,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는 승무원 개인이 아니라 선사의 지시라는 것을 밝혀냈으며, 세월호 항적 데이터에도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해경이 공용통신 TRS주파수를 사용한 기록이 없다고 한 것이 거짓임을 밝힌 것은 큰 성과였다. 이 통신기록은 해경이 해수부ㆍ해군 등과 교신한 통신기록으로 해경본부가 소재한 인천 송도서버에 저장돼있는데 해경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특조위가 밝혀냈다.

박 전 조사관은 “기록된 내용 중 몇 가지 확인된 것 중 하나가 에어포켓이다. 당시 배 안에 에어포켓을 만든다고 공기를 주입했는데, 알고 보니 정부 발표와 실제 주입 위치가 달랐고, 실제 주입 시간도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해수부가 진행하고 있는 선체 인양작업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대로라면 해수부가 인양하고 조사해 선체를 처리하게 되는데, 현재 계획안대로 하면 세월호는 목포 신항에 거치된 이후 3등분으로 절단될 예정이다. 인양작업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다”

그는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밝혀야한다고 강조했다. “구조 일선에서 혼란도 문제지만, 이 혼란을 조율하고 지휘해야할 책임이 있는 정부의 핵심 지휘라인이 무엇을 했는지 밝히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7시간을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구조상황에 따라 해경도 동원하고, 해군도 동원하고, 필요하면 상선은 물론 외국도 동원해야했다. 그런데 그 결정 권한은 대통령한테만 있다”

한편, 특조위는 활동 결과물인 조사기록물을 서울시로 이관하기로 의결했으나, 해수부가 파견한 공무원에 의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다. 이로 인해 기록물이 창고에 처박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가기록물법’에 따라 비밀 내지 비공개로 분류되면 쉽게 열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전 조사관은 이 부분도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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