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나는 무척 바쁘고 체력적으로 힘든 몇 달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일주일이 멀다하고 가까이 사는 친언니네 집에 들락거렸지만, 그 시기엔 자주 가지 못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언니네 집에 갈 때마다 언니네가 키우는 나이 많은 개가 살이 쑥쑥 빠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나이가 들었으니 살이 찌는 것보다는 마르는 편이 낫겠지’ 하며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 개는 한 때 나와 함께 살았다. 첫돌이 막 지난 조카에게 개의 피부병이 옮았기 때문이다. 언니는 “개를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야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여덟 살 노령에 피부병까지 있는 개를 다른 누군가가 사랑해줄 것 같지 않았다. 혼자 살던 나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개를 키우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대안이 없었다. 나는 개를 집으로 데려왔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개는 나를 격하도록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잠들기 전, 내게 몸을 기댄 채 발을 핥는 개를 안쓰럽게 쓰다듬을 뿐이었다.

▲ 그림·심혜진
4년 후, 조카의 피부병이 좋아지자 언니는 다시 개를 데려갔다. 정이 많이 들어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그래도 개가 하루 종일 혼자 있지 않아도 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어떤 날엔 조카가, 어떤 날엔 개가 더 보고 싶었다. 그러면 무작정 달려가 뽀뽀 세례를 퍼붓고 왔다. 개는 내게 큰 기쁨과 위안이었다.

작년 이맘 때였다. 언니네 집에서 송년회를 하던 날, 몇 달 만에 만난 개는 몸집이 절반이나 줄어 있었다. 너무 가벼워 한 손으로 들어 안기도 미안할 정도였다. 개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다. 기력이 없는 것도 나이 탓이려니 했다. 하지만 뭔가 불안했다. 그날부터 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다 다를까. 며칠 후 언니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개가 신장염 말기라고 했다. 의사에게 “며칠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집에 돌아와 나는 흰 쌀로 죽을 끓였다. 당근도 작게 다져 넣었다. 당근죽을 한 통 가득 담아 언니네 집에 갔다. ‘이거 다 먹을 때까지 만이라도 살아야해’ 개는 늘 있던 곳에서 몸을 떨며 엎드려 있었다. 나를 보고는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죽을 그릇에 담아 주자 혀를 내밀었다. 한 숟가락이나 채 먹었을까. 개는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이틀 뒤, 개가 쓰러졌다. 눈을 감고 옆으로 누운 채 한 차례 구토를 했다. 허옇고 멀건 국물에 작은 당근 조각이 섞여 있었다. 내가 준 당근죽이었다. 그까짓 죽 한 숟가락 제대로 넘기지도 못하고 이틀 동안 속에 품고 있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준 당근죽 한 숟가락이 마지막 식사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몇 시간 뒤 개는 조용히 숨을 거뒀다.

곧 일주기를 맞는다. 살아있다면 열일곱 살. 누군가는 “살만큼 살고 갔으니 됐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하던 대상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리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깊어진다. 살아 있을 때 좀 더 챙겨주었더라면 슬픔이 덜 했을까?

개의 죽음으로 나는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불현듯, 소중한 사람들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도 한다. 개가 그랬듯이. 그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바로 지금,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야한다. 개가 내게 남긴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일주기가 되는 날, 미처 다 먹지 못했던, 그래서 마음에 슬픔으로 가라앉아 있는 당근죽을 다시 끓여볼까 한다. 나를 위해 용기를 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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