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강량원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월세를 못내 집에서 쫓겨난 여성이 아이와 모텔에서 지냈고, 그러다 주거가 정확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경찰의 말에 아이와 헤어졌다는 기사를 예전에 봤어요. 이 연극과 비슷한 내용이에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상품) 사태를 배경으로 주거문제를 다뤘습니다”

연극 ‘베서니’는 로라막스 원작의 희곡을 함유선이 번역하고 강량원이 연출한 작품으로 극단 ‘동(動)’이 지난해 4월 대학로 무대에 올렸다. 집을 잃고 딸의 양육권을 빼앗긴 여성이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

이 작품으로 연출가 강량원은 지난해 연말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받았다. 또한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주최한 ‘2016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도 선정됐다. 이 상은 지난 1년간 국내 무대에 오른 연극작품 중 공연예술로서 미학적 성과가 가장 뛰어난 공연작품, 한국연극에 의미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을 기준으로 세 개를 선정했다. 지난해 12월 초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강량원(54)씨를 지난 2일 시립극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신체행동, 동작과 동작을 이어 의미 전달

▲ 강량원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로 강 감독의 작품과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 여성을 등장시켜 지금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설명하고 있는 연극이었어요. 우리 시대를 그대로 비춰준 거울이었죠. 고발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이 문제가 발생했고,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관객들과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연극 제목인 ‘베서니’는 여인의 빼앗긴 아이 이름이다. 강 감독은 이 연극이 동아연극상에서 연출상뿐만 아니라, 배서니의 어머니인 ‘크리스탈’ 역을 한 배우 김문희씨가 연기상을 받고 작품상까지 수상해 더욱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극단 ‘동’은 ‘신체행동’이라는 방식으로 연극작업을 해왔다. 1999년 창단해 최근까지 이 극단의 대표를 맡은 강 감독에게 ‘신체행동’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들었다.

“연극이라는 게 꽤 많은 시간동안 ‘문학적’이었습니다. 대사가 중요했죠. 최근까지도 배우들이 무대에 서서 대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 세상을 표현하는 건 말뿐만 아니라 몸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몸으로 움직이면서 대화하고 표현하는 것이죠. 대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신체적 감각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신체를 더 많이 개방해 감각하고 세계를 더 구체적으로 만날 것인가를 고민해 표현하는 방법이 신체행동입니다”

강 감독의 설명에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어느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분절된 신체행동으로 언어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걸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단어와 단어로 분절되는 언어를 연결하면 의미가 생깁니다. 신체적인 동작들도 한 동작과 다음 동작이 만나면 어떤 의미를 갖게 되죠.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데 그리워한다고 한마디의 말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행동으로 표현할 수도 있어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거나,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세수를 하거나, 그리고 다시 무언가를 합니다. 다른 행동인데 이런 행동들이 모이면 ‘불안하구나’ 또는 ‘도움이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죠”

그런데 강 감독은 ‘신체행동’이 그가 하고자 하는 작업의 중심이 아니라 여럿 중 하나라고도 했다. 관객과 만나 토론하는 작업도 있고, 관객들한테 질문하는 ‘학습극’이라고 이름을 붙인 형태도 있단다. 그때그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에 따라 전달하는 형식을 찾고 그것에 따라 다른 언어가 형성됐다고 했다. 강 감독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그 모든 게 실험적인 것 같았다.

“모든 예술은 실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예술작품은 오랫동안 고민을 잉태해서 생산한다는 말이 있어요. 같은 희곡이라도 배우와 연출가가 다르면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모든 작업은 독특한 특성이 있습니다. 저는 그걸 실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예술작품은 실험적입니다. 내 연극이 보통의 연극과 달라 ‘실험적’이라고 이름을 붙이는데, 제가 대중적이지 않은 실험을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 훨씬 더 소통하기 쉬운 방법을 찾고 있지, 실험을 위한 실험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실험적’이라고 표현한 언론이 많은데, 그것에 대해서는 ‘양가적(=동일 대상에 대한 상반된 태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에요. 개성이 분명하고 신선하다고도 이해되겠지만 많은 사람들과 소통이 어렵겠다는 의미로도 읽히거든요. 그런데 이번 ‘베서니’가 대중성에 가까운 연출상과 작품상을 받았잖아요. 이젠 제가 얘기하는 방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언어가 됐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이번 수상이 더욱 반가웠죠”

인천시민들과 문화민주주의 실현

▲ 강량원 예술감독은 지난해 8월 시립극단 단원들과 작업한 연극 ‘인천노트’에서 연출을 맡았다. ‘인천노트’의 한 장면.
강 감독은 대학 때 단과대학 연극반 활동을 했다. 연극반은 거리에서 ‘상황극’을 주로 했다. 강 감독은 좀 더 직접적으로 만나고 근본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대학 때 연극에서 봤다.

“그때 연극을 하면서 소통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시도하는 ‘신체행동’의 중요성을 대학 때부터 갖게 됐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배 몇 명과 인천으로 온 그는 극단을 만들어 연극을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연극을 전공한 게 아니라 동아리 활동이 전부였던 이들은 대학원에서 연극을 배워 전문성을 갖추고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후 헤어졌다.

연극과 연출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공부보다는 실기나 실천적인 연극을 하고 싶어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 졸업 후 2년간 지낸 인천과 다시 인연을 맺은 건 2005년이었다.

“남구 학산소극장에서 1회 ‘학산 젊은 연극제’를 했는데 함세덕의 작품 ‘해연’을 공연했어요. 그리고 인천 민예총 배우들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작업도 두어 번 같이 했습니다. 그때 인천시립극단 배우도 있어서 자연스레 알게 됐죠. 지난해 시립극단에서 ‘인천노트’라는 작품의 연출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아 시립극단 배우들과 작업했는데 무척 재밌고 좋았습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2015년부터 시립예술단의 감독을 단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선임했다고 했다. 2015년에는 교향악단과 합창단, 2016년에는 극단 예술감독을 단원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취합해 최종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시립극단 예술감독은 2015년 말 전임 예술감독의 임기가 끝난 후 1년간 공백상태였다. 그리고 지난해 강 감독과 또 다른 감독과 각각 공연 연습을 해 무대에 올린 경험을 한 후 단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강 감독을 선임했다.

“저도 ‘인천노트’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 배우들과 작업을 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우들이 선출한 감독이라 저를 ‘민선1기’ 감독이라 하기도 합니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민주적으로 선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저도 할 의지가 생겼습니다”

지난해 12월 1일 부임한 강 감독은 시립극단에서 ‘문화민주주의’를 이뤄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모든 과정을 공개하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작업을 하고 시민들이 작업을 보는 게 아니라, 시민들과 많은 접점을 만들어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거죠. 매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 대화를 하거나, 공연 전에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중간단계를 만들거나, 관객들에게 어떤 공연을 했으면 좋겠는지 묻는다거나, 관객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여러 가지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공연 서포터즈’다. 시립극단은 1월 16일부터 20일까지 ‘7기 공연 서포터즈’ 15명 안팎을 모집한다. 서포터즈는 공연의 준비과정이나 리허설을 참관하며 공연 제작과정에 함께 한다. 시립극단의 정기 또는 기획공연을 무료로 볼 수도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온ㆍ오프라인 매체를 활용해 홍보 지원활동을 하는 역할을 한다.

3월에는 희곡을 공모할 예정이란다. 당선작은 이듬해 4월 공연할 계획이다. 매해 새로운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들을 시민들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다. 신진 희곡작가들의 등용문이 될 수도 있겠다.

9월에는 청소년 연극제를 열 계획이다. 인천이나 전국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전문 연출가들이 직접 무대를 꾸며 페스티벌 형식으로 만들 예정이다. 6월 말에는 시립극단 단원들이 직접 연기하고 연출하는 ‘연극열전’도 한다. 관객들은 작품 서너 개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모든 시민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이 구현되는 게 문화민주주의가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많은 시민들이 예술권을 누릴 수 있게 돕고, 많은 사람에게 이로운 공연을 할 것입니다. 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거리낌 없는 시립극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배우들은 실력이 있고 마음도 열려 있어요. 좋은 배우들과 작업을 할 수 있는 게 시립극단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올해는 단원들과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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