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44 - 2016 시베리아 바이칼 인문기행(6편)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 바이칼 호숫물을 먹고 있는 젖소 무리.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 남동쪽, 이르쿠츠크와 브랴티야자치공화국 사이에 있다. 바이칼 호수는 ‘세계 기록’이 여럿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무려 2500만년이나 됐다. 수심이 1637m로 세계에서 가장 깊다. 저수량은 2만 2000㎦로 담수호 가운데 최대 규모다. 러시아 전체 담수량의 90%를 차지한다. 전 세계 얼지 않는 담수량의 20%다. 면적 3만 1500㎢, 남북 길이 636km, 최장 너비 79km, 최단 너비 27km, 둘레 2200km다. 물이 맑아 가시거리가 최고 40.5m나 된다. 강 330여개가 흘러드는데, 밖으로 나가는 수로는 신기하게도 앙가라강 하나뿐이다. 호수 안에는 섬이 22개나 있는데, 가장 큰 섬이 바로 우리가 묵은 길이 72km인 알혼섬이다. 호수 안에 있는 섬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 제주도의 반 정도 크기다.

바이칼은 몽골어로 ‘자연’을 뜻하는 ‘바이갈’에서 유래했다. 바이칼 호수는 ‘러시아의 갈라파고스’라는 별명처럼 고립된 위치로,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 이채로운 담수 동식물들이 살고 있다. 식물 1080여 종, 동물 1550여 종에 이른다. 이중 80퍼센트 이상은 이곳에만 있는 고유종이다. 마스코트로 만들어 팔고 있는 바이칼 바다표범이 가장 대표적이다. 어떻게 하다가 바다표범이 호수로 왔는지 신기하다. 200만 년 전에는 이곳이 바다였다는 학설도 있지만, 아직까지 정리된 이론은 없다. 동식물상과 독특한 위치로 인해 진화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시베리아의 진주’라는 별명이 헛말이 아니다.

우리 민족과 관련 있는 곳, 바이칼

바이칼은 특히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석기시대 혹독한 추위 때문에 따듯한 물이 솟아오르는 바이칼 주변에 머물고 있다가 해빙기에 큰 홍수가 일어나자 남하해 한반도 일원에까지 정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한 ‘순록민족기원설’이라는 최근 연구를 보면, ‘조선’이나 ‘고려(고구려)’는 순록을 뜻하는 ‘코리’나 ‘고올리’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것이다. 바이칼 동쪽에서 순록을 기르면서 살아온 코리(야쿠트)족을 비롯한 순록 유목민 일파가 순록의 먹이인 이끼의 길을 따라 만주 지역으로 이동했고, 목축과 농업이 결합해 고조선ㆍ부여ㆍ고구려ㆍ발해 등, 제국의 경제적 토대를 이뤘다는 것이다.

유전학적인 면에서도 몽골ㆍ만주ㆍ한국ㆍ바이칼 주변의 야쿠트인과 브리야트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유전자(DNA)가 거의 같다는 것이다. 또한 선사시대 이래 근대국가의 형태를 갖출 때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문명의 교류를 실현해왔던 유목민들의 정신적 지주는 샤머니즘이었는데 그 샤머니즘의 고향이 바로 이곳 바이칼 호수라는 것이다.

바이칼 호수 주위에 흩어져 사는 브리야트족은 바이칼이 시베리아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샤먼을 뜻하는 ‘바이’와 호수를 뜻하는 ‘칼’을 붙여 샤먼의 호수 즉, 바이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알혼섬 곳곳에 서낭당이 있다. 바이칼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장승이 서 있다. 나뭇가지에는 청ㆍ홍ㆍ백색의 천을 묶어 놓는다. 제사 지내는 터를 만들어 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부르한 바위 앞에서 다짐 ‘Remember 0416’

▲ 바이칼 인문기행 일행이 부르한 바위를 뒤로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행 8일째인 8월 7일, 아침 먹고 나서 숙소 주변을 둘러봤다. 바이칼 호수로 내려가 손을 씻고 있는데 젖소무리가 호수로 내려와 물을 먹고 있다. 마치 “한국 아저씨, 나 좀 봐요. 바이칼이 바다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지요”라고 하는 것 같다.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비박’한 정말 용감한 폴란드 청년 커플을 만났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폴란드란다. 즉석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주소를 주고받았다. 검색하니 뭐하는 친구들인지 즉각 확인된다. 정말 세상이 달라졌다. 이제 폴란드에도 내 친구가 두 명이나 생겼다.

숙소 사무실 앞 나무에 자전거 림을 걸어놓았다. 이런 것도 디자인이 되는구나? 우아직을 타고 알혼섬 투어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길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우아직은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 나아간다.
제일 먼저 부르한 바위로 갔다. 샤먼들에게는 우리 민족의 시원으로 알려진 곳이며, 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아홉 곳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우리도 그냥 갈 수 없어서 기념촬영을 하고 나서 피켓을 들었다. ‘Remember 0416’. 나 절대로 너희들을 잊지 않겠다고 부르한 바위 앞에서 다짐했다. 바이칼에서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와 아주 닮은 브리야트족

▲ 우아직을 운전하는 청년(왼쪽)과 찍은 사진.
어제부터 우아직을 운전하고 있는 청년 중 한 명과 사진을 찍었다. 바이칼의 원주민 브리야트족이다. 우리와 같은 민족이 확실한 것 같다. 브리야트자치공화국은 바이칼 호수의 반 이상을 둘러싸고 있다. 동쪽에 있는 울란우데에 수도가 있다. 이주민인 슬라브계에 밀려 비중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그들 고유의 전통문화를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들과 우리는 생김새가 아주 비슷하다.

어린아이의 경우 엉덩이에 몽골반점이 있다. 얼굴은 평평하다. 광대뼈가 튀어나왔다. 입술은 얇다. 눈은 가느다란 실눈이다. 눈꺼풀이 두껍고 피하지방층이 발달했다.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는 인당수 전설과 나무꾼과 선녀 얘기도 있다. 손님에게는 담배를 권한다. 씨름으로 중대사를 결정한다. 신의 아들이 지상의 혼란을 정리해주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천자사상도 있다. 모든 산과 계곡에는 고유한 영이 있다고 믿는다.

술이나 음식을 먹기 전에 음식물의 일부를 뿌려준다. 우리 고수레와 같다.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일을 살인과 같은 일로 취급한다. 문지방을 밟아서는 안 된다. 손님에게는 두 손으로 접대한다. 주인이 차려준 음식을 맛보지 않는 건 큰 결례다. 우리나라에 취업한 노동자 중에 한국말을 가장 빨리 배우는 사람들이 브리야트족과 몽골족이다.

삼형제바위로 갔다. 말 안 듣는 삼형제를 샤먼 아버지가 바위로 만들어버렸다. 그 아버지 참 무섭다.

눈 닿는 곳마다 그림인 알혼섬

▲ 배 뒤로 멀리 보이는 알혼섬의 선착장.
알혼섬의 최북단 호보이곶으로 갔다. 바위 옆모습이 신을 닮았다는 곳이다. 국립이르쿠츠크대학교 2학년 남학생 벤야민 크라실로프와 그의 여동생(16세)을 만났다. 우리는 자신이 소원하는 것들을 노란 리본에 써서 나무에 매달았다. 세월호 진상규명, 사드 배치 반대, 반전 평화 등의 소원을 빌고 오니 미샤ㆍ샤샤 등이 만들어놓은 점심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베리아 사냥꾼 스타일 점심식사다. 마치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인 <EBS> ‘세계테마기행’을 찍고 있는 기분이다. 그 유명한 오믈탕을 만들어줬다. 담백하다. 모처럼 입맛에 맞는다. 오믈은 바이칼에서만 나는 물고기인데 회로도, 훈제로도, 지리탕으로도 먹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랑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일명 하트바위로 갔다. 왼쪽에 서면 아들, 오른쪽에 서면 딸을 낳는다는데 나야 이제 더 이상 아이 낳을 일도 없고 비도 내려서 거기까지 안 올라갔다.

우쥐르 마을로 갔다. 알혼섬 내 유일한 몽돌해변이다. 해변 옆의 초원에서는 젖소들이 비를 맞고 앉아 있다. ‘우산 씌워줄까? 비 내리는데, 이제 네 아이들 데리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 비도 내리고 이제 그만 알혼섬을 떠나야할 시간이다.

알혼섬에서는 언덕을 넘어가면 예외 없이 절경이 펼쳐진다. 산과 하늘과 호수가 어우러져 눈 닿는 곳마다 그림이다. 알혼섬에서는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 수십 년 전 자동차가 멀쩡하게 돌아다닌다. 친구들이여! 늦기 전에 빨리 한 번 가보시기를. 선착장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소란하다. 어떤 차가 새치기를 하나보다. 러시아 여성들이 차를 몸으로 막아선다. 용감하다, 러시아여성들. 알혼이여!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알혼이여!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 다양한 색깔의 천을 두른 큰 솟대 같은 걸 세워 놓았다.
어제 들렀던 휴게소에 다시 왔다. 화장실 사용료가 15루블, 300원 약간 못된다.

우리가 타고 다니던 버스는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버스지만, 이르쿠츠크에서는 제일 좋은 버스다. 이곳에 한신관광이라는 회사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한신관광에서 쓰던 버스를 수입한 거다. 전화번호도 경기도 전화번호 그대로다. 한글이 그대로 있어야 더 고급으로 쳐준단다. 옛날 우리도 영어가 그대로 쓰여 있는 구제품을 폼 잡고 입고 다녔다. 오늘 아침에 놀러왔던 해가 천천히 저 들판 너머 자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이제 천천히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아침에 만난 폴란드 청년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고맙다는 답장이 왔다. 명실 공히 지금은 글로벌시대가 맞구나.

우리가 여행을 떠나지 못할 이유는 늘 100가지도 넘지만, 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여행일정을 가장 비싸고 극성수기인 8월 첫째 주로 잡은 이유는, 국민들 대부분이 쉬는 휴가기간이라 여행 참가 확률이 비교적 높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 그래서 7월 31일부터 8월 9일까지로 날을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학교를 옮기고 나니, 뜻밖에도 개학이 8일이었다. 비록 1년 전에 확정하고 준비한 일정이지만 이틀이나 안 맞아 포기하려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날은 새벽 4시 반 도착이었다. 그러면 월요일 하루가 문제. 나는 그때부터 고민에 빠졌다. 내가 주선한 여행을 내가 빠진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래서 선생이 된 후 처음으로 뻔뻔해지기로 마음먹고 양해를 구했다. 내가 여행에서 보고 배우는 많은 것들은 당연히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아이들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앙가라강 야경이 아름답다.

온종일 달려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마지막 날이라 맥주 한잔해야 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다음호에 계속)

글ㆍ사진/신현수(사진)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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