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44 - 2016 시베리아 바이칼 인문기행(5편)

바이칼, 저게 바다지 호수냐?

▲ 바이칼 호수의 석양.
8월 5일, 아침이 밝았다. 울란우데 역이다. 제법 큰 역이다. 차장들은 종종걸음으로 쓰레기를 버리고, 화장실 청소차가 나타나 우리의 배설물을 치운다. 기차는 초원지대를 지나고 자작나무 숲을 지났다. 그리고 하염없이 달렸다. 차장은 다시 청소를 하고, 우리는 다시 밥을 먹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보거나, 술을 마셨다. 생각해보면, 사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저녁 무렵 드디어, 갑자기, 바이칼이 나타났다. 기차 안이 갑자기 웅성거렸다.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바이칼이다. ‘저게 바다지 호수냐? 당신께 미안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뜬금없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부터 열차는 두 시간 이상 바이칼 호수를 끼고 달릴 것이다. 이른바 환바이칼 구간이다. 몇 시간 동안 호수와 구름과 태양과 노을이 합작해 시시각각으로 다른 장면을 만들어내는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눈물이 나왔다. 이유도 없이.

‘당신이 여기에 있지 않은데 / 노을 물든 바이칼 호수 따위가 /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만일 당신이 이곳에 나와 함께 있다면 / 당신이 이곳에 있는데 / 노을 물든 바이칼 호수 따위가 / 대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갑자기 터키 시인 루미의 시가 떠올랐다. 우리는 식당 칸으로 달려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배했다.

“바이칼의 파도와, 바이칼의 구름과, 바이칼의 노을과 끝내, 이루지 못한 당신의 사랑을 위하여 건배!”

바이칼에도 칠흑 같은 밤이 찾아왔다. 기차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하늘에서는 호박만한 별들이 바이칼 호수로 수직으로 뛰어들었다. 아, 바이칼은 이제 별들의 무덤이었다.

새벽 1시 반, 드디어 이루크츠크에 도착했다. 3일간 마구 펼쳐놓았던 짐을 부랴부랴 챙겨 역에 내렸다. 우리를 태울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장장 3박 3일, 3400km, 60시간이 넘는 긴 여행이었다. 드디어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한 것이었다. 가이드 선생을 보자마자 가져간 현금을 건넸다. 드디어 무사히 내 임무를 마쳤다. 여행 내내 공금을 가지고 다니느라 부담스러웠다. 다시 1시간 여를 더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앙가라 강변 가 욜로츠카에 있는 통나무 숙소. 시간은 새벽 3시 반이 넘었다.

욜로츠카 앙가라강가와 딸찌 박물관

▲ 앙가라강가.

▲ 앙가라강가에 있는 통나무숙소의 식당 내부,
8월 6일, 여행 7일째다. 이르쿠츠크에서 1시간 쯤 달려온 욜로츠카 앙가라강가의 통나무숙소와 숙소 옆 앙가라강을 산책했다. 아침 일찍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매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침식사를 했다. 생각해보니 내 생일이다. 생일이 있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여행 다니느라 생일에 나라 밖에 있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미녀 아가씨가 차려준 앙가라강가에서 생일상은 더욱 기억에 남을 것이다.

가이드 선생이 거주 등록증을 나눠준다. 잠 한 번 자는데 뭐 이렇게 복잡하나? 사회주의 시절 유산인가? 러시아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은 입국일 또는 거주지 이동일로부터 7일 이내에 거주 등록을 해야 한다. 숙박업소에서 신고하게 돼있다. 숙박업소는 숙소 도착일로부터 1일 이내에 신고해야한다. 열차 여행을 할 때는 열차표가 거주지 등록증 역할을 한다.

오늘의 첫 행선지, 딸찌(Taltsi) 박물관으로 갔다. 목조건축물과 민속품을 전시하는 야외 박물관이다. 우리로 치면 민속촌 비슷한 곳이다. 1980년 5월 개방됐다. 리스트비안카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도중 15km 지점 앙가라강가에 있다. 딸찌(Taltsi)는 ‘봄’이란 뜻이다. 학교ㆍ교회ㆍ가옥 등, 브리야트족의 오래된 목조건축의 견본들을 시베리아의 여러 곳에서 가져와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이지상 선생이 성공회대 교수 축구단 유니폼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어제는 엉덩이 부분이 찢어진 줄도 모르고 반바지를 입고 다니더니. 하기야 이지상 선생이 여행 기간에 날마다 화려하고 비싼 옷으로 갈아입었다면, 그것 또한 매우 낯선 일이었을 것이다. ‘자발적 가난’은 결코 ‘누추’나 ‘남루’가 아니다. 그렇더라도 옆에서 가까이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속이 좋은 건 아니다. 돌아가면 바지랑 티셔츠 하나 사줘야겠다.

▲ 딸찌 박물관.
기념품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여성들이 거의 영화배우처럼 예쁘다. 러시아에서는 ‘김태희’가 아이스크림 팔고, ‘한가인’이 기념품 판다더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청년 몇 명이 조상들이 부르던 노래를 불러준다. 시디(CD)도 판다. 햇볕은 강렬하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곧 시원해진다.

이르쿠츠크 시내로 나갔다. 한국과 중국 등, 세계에서 1년에 약 100만명 이상의 여행자들이 몰려들자, 도로 한쪽의 자작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길을 넓히고 있다. 나도 저 나무가 사라지게 하는데 한 몫하고 있구나. ‘윤리적 여행’은 참 어렵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에 있는 도시이자, 이르쿠츠크 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59만명이다. 기계제조ㆍ목재가공ㆍ모피ㆍ식료품 등의 공업이 발달했다. 수력발전소가 많아 전기요금이 세계에서 가장 싸다. 모스크바와 시베리아 철도로 연결돼있어 시베리아 동부의 교통 요충지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도시들 중 유일하게 35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 도시다.

1615년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에 앞장섰던 카자크 기병들에 의해 점차 동부 시베리아 정복의 거점으로 확장되다가 1686년에 도시로 승격했다. 18세기 초반에는 시베리아의 정치ㆍ경제 중심지로 떠올랐다. 그러나 제정러시아의 압제가 극에 달한 19세기에 들어서는 유형지로 변했다.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유배돼온 데카브리스트들에 의해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던 살벌한 도시가 ‘시베리아의 파리’로 파격적으로 변신한다.

데카브리스트는 ‘12월의 군인들’이란 뜻인데, 말하자면 ‘민주 군인’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이르쿠츠크는 20세기 초에는 반혁명 백군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한식이다. 집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더구나 안에서는 잘 먹지도 않는 김치가 반갑다. 여사장님이 여행사와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공부하러왔다가 그대로 눌러 앉았다. 진취적인 여성이다. 이역만리 이르쿠츠크까지 와서 주방장으로 일하는 젊은이도 역시 대단하다. 어제 선물로 받았던 치킨 회사의 광고판도 반갑다.

바이칼 한가운데 있는 섬, 알혼섬

▲ 알혼섬 숙소로 가는 길 벌판에 가옥이 한 채 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바이칼 한가운데 있는 섬,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알혼섬에 들어가기 위해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선착장까지 끝도 없는 길을 달렸다. 알혼섬으로 들어가다 첫 번째 만난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시베리아 벌판에도 자세히 보면 꽃이 있다. 이반지치꽃.(맞나?) 어제 새벽에 만나 이번 여행이 끝날 때까지 우리들을 도와줄 가이드 선생은 국립이르쿠츠쿠대학에서 공부했다. 안내를 잠시 쉴 때는 버스 안에서도 책을 읽는 학구파다. 휴게소에서 복숭아를 사서 직접 씻어서 나눠준다. 생긴 것처럼 정말 착하다.

목적지까지 1시간 정도 남겨놓고부터는 비포장도로다. 포장 얘기가 나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포장이 안 됐다고 운전기사가 불평한다. 러시아 정부의 무능하고 느린 행정을 비웃는 말이지만, 어쩌면 고속도로를 뚫어놓은 것보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시베리아에는 광활한 벌판만 있는 게 아니다. 스텝지역도 나타나고 가끔 야생화 지역도 나타나며 자작나무숲을 끝없이 달리기도 한다.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6시간도 넘게 달려 드디어 알혼섬 들어가는 사휴르따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비현실의 섬, 우리 민족의 시원, 바이칼호수 한가운데 떠있는 섬, 알혼섬으로 건너간다. 시간이야 20여분도 안 걸리지만 내 기분은 마치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듯하다. 이제 세상에는 바이칼 알혼섬에 가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게 됐다.

알혼섬 입구에서 우아직으로 부르는 4륜구동차를 타고 숙소인 후지르마을까지 약 40분을 달렸다. 당연히 비포장이라 차 안으로 먼지는 들어오고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우아직은 요동을 치는데 입 안으로 먼지가 들어오든 말든 풍경 때문에 벌어진 입은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창밖 풍경은 말 그대로 ‘피안’, 비현실의 세계였다. 호수와 산과 하늘과 구름과 석양이 함께 빚어내는 풍경은 내 무딘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풍경의 연속이었다.

▲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알혼섬으로 가는 길의 벌판.
숙소에 도착해 방을 배정받고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도 또 다른 비현실의 세계였다. 식당 창문 밖은 거대한 한 폭의 그림이었는데 그 그림이 가만히 있지 않고 식당 안으로 자꾸 걸어 들어왔다.

풍경에 취해 보드카에 취해 밥을 먹는지 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강가에 모닥불을 밝히고 시인들은 시를 읽고 가수는 노래를 불렀다. 특히 박일환 시인은 여행 기간 내내 시를 자판기처럼 쏟아내는 바람에 같이 간 다른 시인들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칠흑 같은 호수위로 별은 쏟아져 내렸으나 추워서 더 이상 밖에 있기가 어려웠다. 숙소로 들어가 술 한 잔씩 더하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알혼섬의 밤은 노래와 별과 시와 술과 함께 깊어갔다.(다음호에 계속)

글ㆍ사진/신현수(사진)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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