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바로 가족영화!



아무리 봐도 성공한 인생이 없는 것 같은, 한마디로 한심한 가족이 있다.

가족의 어른 격인 할아버지는 마약과 섹스 중독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났고, ‘사람은 승자와 패자, 딱 둘로만 나뉜다’며 입에 성공학을 달고 사는 가장 리차드 후버는 자기 인생 앞가림도 안 되는 인물이다. 아들 드웨인은 전투기 조종사가 될 때까지는 말 한마디 않겠다며 묵언수행 중이고, 딸 올리브는 D라인 몸매로 어린이미인대회에 출전하겠다는 황당한 꿈을 꾼다. 거기에 프루스트에 관해서는 최고의 석학이라 자신하지만 게이 애인에게 버림받은 뒤 자살을 시도했던 외삼촌 프랭크까지 후버 가족에 합류한다. 오로지 엄마 셰릴만이 정상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매일같이 패스트푸드 치킨을 저녁으로 내놓는 것을 보면 그다지 모범 엄마는 아닌 듯하다.


단지 비행기 값이 없다는 이유로, 자살미수 경력이 있는 삼촌을 혼자 둘 수 없다는 이유로, 이 희한한 가족 6명이 구닥다리 밴을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올리브의 소원인 ‘리틀 미스 선샤인’에 출전하기 위해서. 도대체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는 구성원이 좁아터진 밴에 껴 앉아 있으니 평탄한 로드무비가 될 것 같지 않다. 폐차 직전 밴의 클러치는 말을 듣지 않아 출발할 때마다 가족들이 뒤에서 밀고 달리고 몸을 날리는 서커스를 감수해야 한다. 경적마저 고장이 나서 ‘빵빵’거리는 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대회 장소까지 가야 한다. 그러나 이깟 소동은 후버 가족의 좌충우돌 로드무비에서 껌 같은 사건일 뿐이다.

짧은 여행(?) 동안 후버 가족은 극단의 절망을 경험한다. 성공에 집착하는 가장 리차드는 여행 중에 '실패' 통보를 받고, 애인에게 버림받은 삼촌 프랭크는 여행 중에 옛 애인 앞에서 우스운 꼴을 당한다. 전투기 조종사가 될 때까지 말을 하지 않겠다던 아들 드웨인은 여행 중에 결국 입을 열어 "Fuck"이라 절규하고, 손자에게 되도록 빨리 많은 여자와 섹스를 하라고 강의하던 할아버지는 마약과 섹스보다 더한 극단의 결론에 다다른다.

인생실패자의 총집합 같은 가족이 고난을 딛고 눈물겨운 성공을 이룬다거나, 콩가루 같았던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면서 가족애를 확인하고 화합의 계기를 마련한다거나 하는, 가족영화라면 으레 등장하는 뻔한 감동 스토리는 없다. 실패자들은 여전히 실패를 거듭하고, 가족들은 여전히 개성 강한 모습 그대로다.그러나 이 영화는 어느 가족영화보다 유쾌하고 감동적이다. 삼촌 프랭크의 말대로 ‘고통이 곧 인생’이라는 것을 비껴가지 않지만, 단 한 순간도(심지어 죽음의 순간까지도) 청승떨지 않고 능구렁이처럼 재치 있게 넘어가는 화술과 소위 정상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섯 캐릭터들은 기이한 낙관을 만들어낸다. 이들 여섯 명은 할아버지로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삼촌으로서, 자식으로서, 모두 ‘꽝’인 인물들이다.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누군가'로서는 꽝인 이들이지만 그들은 '그들 자체'로 충분히 사랑스럽다. 분명 실패자들이지만 절대 비굴하지 않고 죄의식에 시달리지도 않고 자기를 긍정하는 것, '자기긍정'이야말로 이 영화를 행복한 코미디로 만드는 힘이다.


후버 가족의 기이한 낙관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누군가'의 최고를 가리는 미인대회를 뒤집어엎는 마지막 장면, 괴상한 가족의 퍼포먼스를 보며 통쾌함까지 느껴졌던 것은.
가족 구성원의 고통을 억지로 봉합하거나 가족 간의 갈등을 고정된 역할로 얼버무리며 ‘가족이니까 아끼고, 가족과 함께 있으니 행복하다’는 억지 해피엔딩을 만드는 숱한 영화들보다 구성원 각자의 개성과 자기긍정 속에서 낙관을 만드는 이 영화야말로 진짜배기 가족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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