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규칙 변경 효력정지 신청, 안 받아들여지면 다시 파업한다”
“취업규칙 변경 효력정지 신청, 안 받아들여지면 다시 파업한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6.12.2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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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이경락 전국철도노동조합 구로열차승무지부장

지난 14일 오후 구로역에 있는 전국철도노동조합 구로열차승무지부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경락 지부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방문한 날, 철도노조는 ‘2016 임금협약 잠정합의안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지난 8일 조합원들에게 ‘투쟁전술 전환 지침’을 내렸다. 총파업 대신 현장투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었다. 이 지침에 따라 조합원들은 73일간의 파업을 중단하고 9일부터 현장에 복귀해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파업의 주요 목표였던 ‘성과연봉제 철회’는 이루지 못해, 조합원들의 속은 시꺼멓기만 하다.

구로 현장에서 만난 이 지부장의 표정도 어두웠다. 지난 10월 27일, 서울역에서 열린 철도노조 열차조합원 총력 결의대회 때 삭발한 머리카락은 많이 자랐지만, 여전히 쓸쓸해 보였다. 총투표가 진행 중인 지부사무실 근처에서 철도노조 역사상 최장기 파업인 이번 파업이 남긴 성과와 과제에 대해 이 지부장과 얘기를 나눴다.

현장투쟁으로 투쟁전술 전환

▲ 이경락 전국철도노동조합 구로열차승무지부장.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이자 중앙쟁의대책위원장은 지난 8일 ‘다시 전선에 서서’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담화문을 요약하면, ‘73일간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다. 성과연봉제 반대라는 여론의 지지와 야3당의 정책 폐기 약속을 이끌어냈지만, 나라가 망하든 말든 관심 없는 대통령과 부역자들을 보면서 장기항전을 준비할 때라고 생각했다. 전술 전환은 성과연봉제 관련 쟁의권을 유지한 채 탄핵 이후 정국에 대비한 전술을 수립하기 위함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은 누구보다 고심했을 위원장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이 세 번째 복귀 시도다. 위원장은 물론 복귀가 아니라 현장투쟁으로 전환이라고 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9일 복귀하고 10일부터 정상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쟁의행위의 일환으로 사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다. 차량직종은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다시 파업하겠다고 결의하고 있는 지부도 있다. 불거진 현안이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아, 현장은 계속 시끄럽다”

현장 분위기가 어떤지 좀 더 구체적으로 묻자, 이 지부장은 직종 또는 지부별 편차가 심해 다양한 반응이라고 했다. 73일간의 파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현장은 다시 노조에서 파업을 결의해도 실행할 만큼 튼튼한 곳이 있는가하면, 파업을 하지 않은 취약지부의 경우 상당히 의기소침해있다고 전했다. 투쟁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할 수 없는 곳도 있단다.

“구로열차승무지부처럼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집단사업장의 경우 조합원의 힘이 응축돼있다. 그래서 버티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분산사업장인 경우, 역마다 조합원이 몇 명씩밖에 없는 곳은 쟁의행위라 할 수 있는 일을 거의 못했다. 분위기 자체가 파업을 하기에 쉽지 않은 조건이 있다”

파업의 정당성, 조합원 스스로 인식해

▲ 철도노조는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2016 임금협약 잠정협의안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했다. 구로열차승무지부 조합원이 투표하고 있다.
구로열차승무지부의 경우 이번 파업에 모범적으로 참여했다. 지부 소속 조합원 244명 전원이 파업에 참여해 단결력을 과시했다. 비결이 뭘까?

“2013년 파업에는 동참하지 않은 조합원이 있었지만, 이번 파업은 달랐다. 조합원들이 모두 파업의 정당성을 인식했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이 파업이 중요하니까 파업해야 한다고 생각해, 73일간 한 사람의 이탈도 없이 파업에 참여했다”

구로열차승무지부 조합원들은 경인선의 경우 인천역에서 소요산역까지, 경부선으로는 신창까지 운행하는 전동차의 맨 뒤 칸에서 출입문 개폐를 담당, 승객들이 승하차할 수 있게 하는 업무를 보고 있다. 모두 구로역에서 교대한다. 전동차의 앞 칸에선 기관사가 운전하고, 뒤 칸에선 승무원이 문을 여닫고 방송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성과연봉제란 직원들의 업무능력과 성과를 등급별로 평가해 임금에 차등을 두는 제도를 말한다. 기존 호봉제와 달리 입사 순서가 아닌 능력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임금을 근속연수와 직급이 아닌 한 해 개인별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했다.

기획재정부는 2016년 1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발표해 공기업 30개에 대해선 6월까지, 준정부기관 90개에 대해선 2016년 말까지 성과연봉제를 확대ㆍ도입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후 6월 10일, 기재부는 공기업 30곳과 준정부기관 90곳 등, 공공기관 120개 모두 성과연봉제 확대ㆍ도입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이에 민주노총 산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지난 9월 27일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철도ㆍ지하철ㆍ병원ㆍ가스ㆍ사회보험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 5만 4000여명이 파업에 참가했다.

“우리는 성과연봉제를 노예연봉제ㆍ성과퇴출제라고 표현한다. 철도공사에서는 철도에서 하는 업무는 협업체계라 개개인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사업소 평가로 운영될 거라고 한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성과연봉제가 시행되면 당연히 개인 연봉으로 평가될 게 불을 보듯 빤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미래가 공사 관리자들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고 있다. 돈을 덜 받아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싶은 생각이 강하다. 그게 이번 파업을 이끌어온 힘이다”

“불편해도 괜찮아” 국민들의 지지 이어져

▲ 이번 철도노조 파업을 많은 시민들이 ‘불편해도 괜찮아. 힘내라 철도’라는 말로 지지했다. 한 시민이 철도역에 지지글을 붙였다.
이번 공공부문 파업은 예년에 비해 국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파업을 하면 할수록 국민들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종사자들이 어떤 이슈를 거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도 임금인상 내용으로 파업했다면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거다. 성과연봉제라는 것이 공공부문에서 시작해 전 사업장으로 확대될 것이며, 이게 전면 시행되면 어떤 폐해가 있을지 국민이 인식하고 있다는 거다. 대의적인 파업이어서 호응을 받을 수가 있고 사회적 관심을 끌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 파업에 돌입했을 때 불법파업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10월 24일 김영훈 위원장이 경찰서에 출두해 7시간 조사를 받은 후 불법파업 논란이 사라졌다. 합법이라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조합원들은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다. 그때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최순실 게이트가 블랙홀이었다. 모든 이슈를 다 삼켰다. 하지만 기대감도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이 정권의 문제가 드러나고 우리 투쟁의 성과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9월 27일 파업을 시작해 위원장이 출두하고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날이 10월 24일이니까, 그 때가 파업에 돌입한 지 27일째였다. 그 사건이 터지고 50일이 지났다. 곧 해결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때 이미 대부분의 노조는 파업을 끝냈고, 몇 개 노조만 남아 있었다. 파업 50여일이 지나니 철도노조만 파업대오에 남았다”

철도노조 파업이 타협의 기미가 전혀 안 보였던 건 아니었다. 야3당이 철도노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와 정부에 철도파업을 중단하고 철도 정상화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국회 차원에서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며 중재를 시도했지만, 여당과 공사, 국토교통부는 그 제안을 거부했다. 그 후 최순실 사태가 터졌고,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철도노조 조합원 2만여명 중 파업대오를 흔들림 없이 지킨 건 7500여명이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이들은 낮에는 성과연봉제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시민들을 상대로 선전전을 벌였고, 저녁이면 광화문이나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들었다. 6차까지 이어진 광화문 촛불집회에선 철도노조 깃발과 그 깃발아래 모인 조합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주말 광화문 집회뿐 아니라 평일 촛불집회에도 철도노조 파업대오가 많이 참여하면서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작게는 몇 백명에서부터 1000명 이상의 조합원이 참가한 촛불집회도 많았다. 성과퇴출제를 막아야한다는 명분 있는 투쟁에 국민들의 따뜻한 시선이 있어서 함께 할 수 있었다. 싸늘한 시선이 있었다면 앉아 있기 힘들었지만, ‘힘내라 철도’라는 말이 조합원들한테 힘이 많이 됐다. 또한 촛불대오를 유지하는 데 한몫했다. 상호 긍정적이었다”

다시 투쟁전선에 서다

서울 성수동에서 살다가 1993년에 인천으로 와 지금까지 인천에 살고 있는 이경락 지부장 부부는 철도공무원이다. 이 지부장은 9월 27일자로 직위 해제된 251명에 포함돼있는 상태다. 부인도 파업에 동참한 조합원이라, 이 지부장이 노조 활동을 하는 데 부담이 적다.

이 지부장의 임기는 내년 2월 28일까지다. 내년 1월 초 철도노조 임원선거 공고가 나오고 1월 말 선거가 치러지면 2월 인수위원회를 거쳐 노조 위원장에서부터 지부장까지 새로운 지도부가 3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선거 얘기가 나오니 이 지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동안 겪었을 노고가 전해졌다. 이 지부장은 2년 임기의 지부장을 지금까지 세 번이나 맡았다.

철도공사는 지난 5월 30일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변경해, 내년 1월 1일부터 성과연봉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철도노조는 취업규칙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한 상태다. 이 지부장을 찾아간 날 오전 11시, 이에 대한 심리가 대전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철도노조 조합원은 물론 노동계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돼, 법정은 빈자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서서 방청하는 사람도 많았다. 가처분 신청 결과는 25일께 나올 예정이다.

“지부장을 하면서 조합원들한테 가장 많이 한 말이 있다. ‘노동조합은 미워도 버리지 마라. 왜냐면 그 조직이 마지막까지 여러분과 함께할 조직이고 여러분의 생존권을 지켜줄 조직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다. 현재 조합원들은 가처분 신청 결과를 기다리며 차분히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에서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시 파업한다는 게 중앙의 방침이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