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44. 2016 시베리아 바이칼 인문기행(1편)

사단법인 희망래일과 고 성유보 선생님

▲ 고려인문화센터에서 아리랑무용단이 부채춤을 공연하고 있다.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9일 새벽까지 8박 10일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에 다녀왔다. 1년 전, 사단법인 희망래일에서 주최하는 ‘시베리아 철도 인문기행’에 참가해보겠다는 뜻을 품고 함께 갈 사람을 모으고 준비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무려 1년 전부터 준비했고, 떠나는 날이 다음 날로 다가왔는데도, 여행을 앞둔 설렘은 눈곱만치도 없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인솔자는 아니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사람을 모았으니,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부담스러웠기 때문인가? 아니면 가겠다고 약속한 사람들 중에서 10여명이나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웠을까? 이번 여행을 시ㆍ사진집으로 써보겠다고 강봉구 작은숲 출판사 사장과 덜컥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인가? 잘 모르겠다. 그냥 인솔자 이지상 선생을 잘 도와 참가자 모두 행복한 여행이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사단법인 희망래일은 ‘남북 철도를 연결해 끊어진 남북을 잇고 광활한 대륙과 길을 열어 한반도가 대륙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찾고, 부산에서 런던까지 한 번에 내다를 수 있는 그 날까지 사회적 공감대와 토양을 만드는 일’을 하는 시민단체다. 돌아가신 성유보 선생님이 주도해 만들었다. 이 세상에 황망하지 않은 죽음이 없지만, 2년 전 성 선생님 서거 소식은 더욱 황망했다.

야만의 시대에 믿고 기대고 의지할 어른을 또 한 분 잃어서였을 것이다. 이지상이 공연 하던 날, ‘신 선생이 보내준 시집 잘 읽었다’며 ‘언제 저녁식사나 하자’시더니, 그게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나는 선생님과 함께할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았는데, 내게 기회를 안 주시고 서둘러 떠나셨다. 어른이 한 분 두 분 표표히 떠나신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데. 성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 블라디보스토크

▲ 우수리스크 거리 풍경.
드디어 출발하는 날, 공항에 약속시간보다 무려 30분 이상 일찍 도착했다. 역시 책임감이란 무서운 것이다. 여행자 32명과 인사를 나눴다. 해외여행 20여년 이래 오늘이 가장 붐비는 것 같다. 어쨌든 무사히 짐을 부치고 수속을 밟은 후 면세구역으로 나갔다. ‘아리랑’ 담배는 처음 봤다. 면세점에서만 파는 담배란다. 게이트 앞으로 갔다. 새벽 5시 반쯤 집에서 나와 처음 여유 있게 의자에 앉았다.

나와 한 방을 쓸 천영기 인천남구평화복지연대 대표와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다녀와서 사이가 더 좋아져야할 텐데. 그리고 이 지상에서 만난 최고의 인연, 내가 이번 여행의 인솔자로 억지로 등 떠민 아우 지상이와도 더 친해져야할 텐데.

탑승해 지상이랑 나란히 앉아 기내식과 함께 청도 맥주를 한 캔 먹고 나니 비로소 기분이 조금 편해졌다. 비행시간에 관한 기내 안내방송이 나오니, 지상이가 말했다. 중국 쪽으로 돌아가느라 두 시간 넘게 걸리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는 30분 이상 단축됐단다. 그렇구나. 통일문제는 비행시간에도 들어와 있구나.

내가 첫손가락으로 꼽는 사랑과 혁명의 영화, ‘닥터 지바고’를 다시 봤다. 영화가 끝나기 전에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입국 수속을 밟는데 증명서 같은 걸 줬다. 러시아에선 비자는 없어도 되지만 이거 없으면 못 돌아간단다. 그런데 러시아 도착 액땜인지, 일행 중 한 명이 여권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잘 해결돼 천만다행이었다. 만일 여권을 잃어버렸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가이드 선생과 인사를 나눴다. 버스 타자마자 러시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기억에 남은 것만 몇 가지 소개하면, 러시아에서는 아이 한 명을 낳으면 500루블, 둘 낳으면 1500루블, 셋 낳으면 땅 3000평을 준단다. 사실인가? 역시 러시아도 저출산 문제는 예외가 아닌가 보다. 또, 일본한테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한 중국에는 안중근ㆍ이봉창 의사 같은 분이 없단다. 맞는 말이다.

항일독립운동 주요 거점이었던 우수리스크

▲ 우수리스크 시민공원에 있는 귀부.
러시아 첫 번째 행선지인 우수리스크로 가다 휴게소에 들렀다. 러시아의 맨 얼굴을 처음 만나는 곳이다. 슈퍼마켓에서 물고기를 다 파네? 신기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전초기지였던 우수리스크에 도착했다. 시민공원에 있는 귀부(거북이 모양의 비석 받침돌)로 갔다. 귀부 때문에 ‘거북이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우수리스크 인근에서 발견된 것을 이곳에 옮겨놓았다. 비석과 이수가 없어 불확실하지만, 발해의 귀부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여기도 우리 땅이었던 말인가?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2㎞ 정도 떨어진 연해주 제2의 도시다. 과거 발해의 5경 12부 중 한 부인 솔빈부가 있던 곳이다. 발해 멸망 뒤 중국 영토였다가 1860년 베이징조약 체결로 러시아 영토가 됐다. 그 후 한인의 이주가 시작돼 항일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 됐다.

우수리스크는 ‘늪지대’란 뜻이다. 현재 고려인 1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 북한ㆍ중국과 연결된 횡단철도(TSR)가 지나가는 물류 중심지다. 조선시대 말 두만강을 넘어온 유ㆍ이민들은 추운 지역이라 벼농사가 가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이푼 강물을 이용해 벼농사를 지었다.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위로 끌어올렸다. 대단한 우리 민족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가보지 못했지만 고려인들의 정착촌인 우정마을이 있고, 고려 아리랑가무단과 같은 우리 문화가 비교적 많이 남아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고려인들

▲ 고려인역사관 내부 일부 모습.
고려인문화센터(140주년 기념관)로 갔다. 이 문화센터는 우리 민족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고려인들을 기억하고, 독립운동의 산실인 연해주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2004년 착공해 2010년 준공했다. 우수리스크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주역사관ㆍ병원ㆍ학교ㆍ한글교실ㆍ도서실ㆍ멀티미디어실ㆍ다목적공연장ㆍ사무실ㆍ회의실 등의 시설이 있는데 고려인뿐만 아니라 러시아 여러 민족의 다문화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인문화센터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은 이주역사관이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7년 가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의 고려인 지도자 2500여명이 학살당했다. 또, 고려인 18만여명이 대부분 시베리아행 열차에 태워져 가는 곳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그로부터 70년, 1991년 옛 소련의 해체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이슬람민족주의에 기초한 이 국가들에서 고려인들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언어와 문화가 바뀌고 민족감정이 심해지면서 그곳에서 더 이상 살기 어려워진 고려인들은 정든 땅, 집과 일자리를 버리고 그들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제2의 고향, 연해주로 돌아왔다. 도대체 몇 번의 이주인가?

주로 학생들로 구성된 아리랑무용단의 부채춤ㆍ북춤 등의 공연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고려인들은 ‘아리랑’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피눈물 나는 고생을 했을까?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고려인들. 아직도 이런 공연이 남아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역사관까지 관람하고 나왔는데 우리나라 고등학생 한 무리가 들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이름표를 확인해보니 전남교육청 소속 학교 1학년 학생들이다. 전남교육감도 함께 왔다는데 얼굴은 못 봤다. 아이들을 보니 몹시 반가웠다. 천생 교사인가보다.

인문기행을 함께 하는 사람들

▲ 인문기행 일행이 아리랑무용단의 공연을 보고 있다.
식당으로 가서 처음으로 러시아식 저녁식사를 했다. 보르시치인지 숄란카인지 러시아식 스프가 나왔는데 내 입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이들은 나와 전생의 무슨 인연이 닿아 이승에서 열흘이나 함께 여행을 하는가?

먼저 이 여행의 인솔자인 이지상 선생. 몇 년 전 일이다. 그의 콘서트에 갔다가 그가 쓴 책 ‘스파시바, 시베리아’를 받았다. 러시아 여행기다. 책 제목이 욕 같은데,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러시아어다. 이지상은 2010년 여름부터 해마다 시베리아로 떠났다. 여행 책이 나왔으니, 이제 명실 공히 여행 작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는 재주가 아주 많다. 음반을 여러 개 낸 가수지, 수많은 노래를 만든 작곡가지, 이미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라는 책을 낸 작가지, 성공회대에서 강의하는 교수지, 시민운동가지, <은평시민신문> 발행인이지, 이번 책은 사진도 전부 그가 찍었다.

만일 여행기가 작가가 다녀온 곳을 꼭 가보고 싶게 만드는 게 일차적 목표라면, ‘스파시바, 시베리아’는 여행기로서 확실히 성공한 책이다. 400km가 넘지 않으면 거리도 아니라는 곳, 친구를 만나려면 400km는 가줘야 하는 곳, 영하 40도가 아니면 추위가 아니라는 곳, 40도는 돼야 비로소 술로 쳐준다는 곳,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시베리아를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여행기에 더해 “그때 바다 같은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알혼섬의 끝자락 어디쯤에서 손톱 같은 달이 떠오른다. 나의 생살보다 더 붉은 달빛 사이로 소금을 흩뿌리듯 별똥별이 떨어진다. 달빛은 흠칫 놀라며 점점 더 가까이 내게로 오고 나는 수평선이 되어 달빛을 한참 동안이나 올려다본다”(42쪽)와 같은 유려한 문장이 곳곳에 널려 있는 아름다운 산문집이며, 그 어느 시인의 시보다 훌륭한 그의 노래 가사가 들어 있는 시집이며,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이 겪은 질곡의 역사서이며, 세계 음악에 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이 곳곳에서 빛나는 음악책이다. 또한 한사코 이 세상의 소외되고 약하고 그늘진 사람들의 편에 서려는 이지상의 사상서이며, 심지어 빼어난 사진집이기도 하다.

이 한스런 시대의 강을 이지상과 같은 참으로 진정성 있는 가수와 함께 건넌다는 건 얼마나 큰 복인가. 이번 여행에는 특히, 박일환 시인을 비롯해 후배시인이 세 명이나 왔으니, 여행 내내 시가 별처럼 쏟아지겠다.
통역을 담당한, 생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공부한 최기훈군은 내 둘째아들과 나이가 같아 더 친근했다. 헬스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운동도 열심히 한단다.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공부해 한반도와 러시아 대륙을 잇는 이 나라의 동량이 됐으면 좋겠다.

옛날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학사국장을 오래했던, 지금은 명퇴한 김융희형 부부. 융희형이 필리핀 가서 한 달 동안 영어공부를 하고 왔다기에, 그 나이에 영어를 배워 무엇 하냐고 물었더니, 필리핀의 청소년정책을 연구하려고 다녀왔단다. 필리핀은 청소년도 선거를 한단다. 선거 결과를 정책에 반영한단다. 우리도 당장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국민은행노동조합 부위원장 출신인 조룡상 선생 부부. 허수영 <민플러스> 기자, 그리고 태안여자중학교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으로 헤어지지 않고 모임을 계속 하는데 이번 여행에 대학 후배인 임혜옥 선생 등 10여명이 함께 했다. 숙소에 짐을 풀었다. 러시아에서 첫날인데 그냥 잘 수 없어 맥주 한잔하기 위해 숙소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마침 숙소 바로 옆에 맥주집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누웠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데 머리에 찬물을 부은 것처럼 정신은 맑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우수리스크의 잠 못 이루는 밤. 이번 여행이 무사히 끝나기를 간절히 빌었다.

글ㆍ사진/신현수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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