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고교의 대안교육 이야기⑤

<편집자 주> 인천 최초의 인가 대안고등학교인 청담고교(교장 김경언)의 대안교육 이야기를 월 1회 연재합니다.

명절 때면 늘 갔던 곳, 이번에는 수학여행으로

▲ 박성은(2학년) 학생
수학여행.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때부터 기억에 담아두고 있었던 수학여행에 관한 추억을 적어볼까 한다. 2학년 초창기에는 수학여행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수학여행을 가려면 7개월이나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지난 1주일만 돌이켜봐도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번 수학여행도 언제 가나 싶었지만 어느덧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막상 수학여행 당일이 됐을 때, 설레던 마음은 어디가고 귀찮고 피곤하다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수학여행 첫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전날 밤 준비해놨던 짐들을 갖고 공항으로 나섰다. 수학여행 장소는 제주도. 제주도는 추억과 낭만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내가 처음 가보는 곳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고향이 제주도이다 보니 추석이나 설 연휴면 늘 갔던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수학여행이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추석이나 설 연휴에는 가족이랑 같이 갔던 거고, 이번에는 친구들이랑 같이 가는 거니 즐거운 마음으로 가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한 후,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모인 인원수가 맞는지 꼼꼼히 확인하느라 바쁘셨고,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간다는 것이 들떴는지 떠들기 바빴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비행기 탑승시간과 숙지해야할 주의사항을 알려주셨고, 수학여행 일정도 자세히 알려주셨다.

우리는 탑승시간이 되자 서둘러 이동했다.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꽤 많지만,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한다는 것은 늘 지치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시간이 가장 떨릴 수도 있다. 바로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아이들이 그러했다.

이륙할 시간이 되자 비행기는 서서히 움직였고 속도가 점점 올라갔다. 그리고 갑자기 속도가 한꺼번에 올라가더니 이륙했다. 비행기는 하늘로 떠올랐고 창밖을 보니 구름이 보였다. 잠깐 창밖을 구경하던 중 갑자기 난기류로 인해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림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됐고 몸의 피로도 점점 쌓여갔다. 그렇게 몇 십 분이 지나서야 안정됐다.

인천에서 제주도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사실 우리 학교에서 부평까지 차가 막히면 걸리는 정도의 시간이다. 그리고 얼마 걸리지 않아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왔고, 착륙한 다음 짐을 갖고 버스로 이동했다. 3박 4일간 타고 다닐 버스 안은 참 좁았다. 점심은 공항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먹었다. 제주도에서 유명한 고기국수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점심식사는 참 평범했다. 국수 위에 고기 몇 점 올려놓은 게 끝. 기대는 안 했지만 허기가 졌기에 일단 먹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바쁜 일정 속 좋았던 순간들

▲ 제주도 한라산 윗세오름에 올라 기념촬영을 한 청담고교 2학년생들과 교사.
수학여행 1일차부터 이곳저곳 다닐 곳이 많아 쉴 틈이 없었다. 이동할 장소는 산굼부리라고 불리는 작은 분화구. 산굼부리의 특징은 백록담보다 17미터나 더 깊다는 것이다. 주변에 은빛 억새들이 줄지어 있고, 좋은 추억을 남기기 좋은 장소였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하늘이 참 맑았고, 바람도 선선히 불어왔다. 힘들어하던 아이들도 이 멋진 광경을 본 후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외돌개라는 곳이었다. 바다 위에 홀로 서있는 높이 20미터 정도 되는 바위가 외돌개다. 화산 분출로 생긴 바위라고 한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도 하는데, 그 외에는 별 다른 특징은 없었다. 외돌개에서 보내는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허기질 무렵, 저녁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수학여행 1일차의 밤이 점점 다가왔고,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다. 1일차부터 일정이 너무 빡빡했는지 피곤했다. 씻고 취침해야할 시간이 다가왔음에도 몸이 영 움직이질 않았다. 마음은 그러고 싶으면서도 몸이 따라주질 않는 상황, 이대로 그냥 잠에 빠지고 싶었다. 그렇게 1일차 밤이 지났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부터 모두 씻기 바빴고, 배를 타야하는 시간이 촉박해 빨리빨리 움직여야했다. 아침부터 바쁜 것은 참 싫다. 학교 갈 때도 항상 느끼는 마음은 수학여행에 와서도 똑같았다.

2일차 첫 번째 일정은 선상낚시였다. 아침부터 배 멀미를 할까봐 걱정스러웠다. 버스에서 내리자 비릿한 바다냄새가 났고, 시원한 바닷바람도 불어왔다. 바다를 보니 제주도에 왔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갈매기 소리도 들리고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좋은 느낌이었다. 바다를 감상하고 나니 배에 탑승할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학교 말고도 다른 여행객들이 많았다.

배가 움직이자 파도가 출렁거렸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파도가 워낙 거세다보니 많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바다에 고정돼있는 배로 갈아탄 후, 바로 낚시를 시작했다. 낚시는 무엇보다 인내심이 중요하기에 참을성 없는 사람이 하기에는 좀 어려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몇몇 아이가 물고기를 낚기 시작했다. 잡을 때는 좋지만 잡히지 않을 때는 지루하기만 한 낚시는 인내심 기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잡은 물고기를 배에서 즉석으로 손질해 회를 떠줬다. 오전 일정을 마친 후, 오후에는 다음 행선지인 우도로 이동했다. 우도에서 일정은 2일차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기자전거를 타고 우도 일대를 탐방하는 것이었다. 여러 안전수칙을 듣고 기대한 라이딩을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바다를 보는 것은 꽤나 유쾌한 일이었고, 중간에 우도의 명물인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다.

2시간 정도 우도를 탐방했고, 탐방 중 한 식당에 들러 해물라면을 먹었다. 그렇게 좋았던 기억들 남겨두고 다시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향했다. 해는 점점 저물어갔다. 버스 안에 탑승하자마자 피로가 쏟아졌다. 숙소까지 1시간 정도 거리였는데, 선생님도 애들도 저마다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숙면에 빠졌다.

2일차는 모두 만족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숙소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유시간에는 삼삼오오 모여 떠들거나 카드게임을 했다. 나는 3일차 일정은 무엇인지 일정표를 봤다. 3일차에 제일 중요한 일정은 한라산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멘붕’이었다. 정말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도 생각해보면 정말로 힘들었던 일정이었다.

한라산 오르기, 내 끈기에 도전하다

▲ 해변에서 신난 학생들.
수학여행 3일차가 시작됐다. 아침부터 바빴다. 한라산을 오르는 일정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다음 일정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한라산의 목적지는 정상이 아니라 윗세오름까지만 가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중간까지만 가면 되는데, 거기까지 가는 것도 힘들었다.

버스를 타고 한라산으로 이동했다. 윗세오름까지 올라가는 데 2시간, 내려오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지치는 일정이라고 생각했다. 한라산에 올라가는 것은 처음이다. 한라산에 올라가기 시작하자마자 눈앞이 캄캄했다. 언제 저기까지 올라가지, 그냥 포기할까, 하고 생각했다. 쉬는 곳이 더러 있었지만 쉬면 쉴수록 더 힘들어졌다. 가을 경치와 멋진 단풍과 깊은 하늘을 감상한다는 선생님들의 말은 다 거짓이었다. 그런 것들은 보지도 듣지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올라가보니 평지에 나무 데크(deck)로 잘 꾸며놓은 길이 놓여 있었다. 힘들었지만, 주변 경치는 정말로 좋았다. 제주도가 육지보다 더 따뜻하기에 단풍이 그리 물들지는 않는다. 사실 한라산은 가을보다 봄에 오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윗세오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니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점심은 윗세오름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때웠다. 휴식을 취하고 나니 한결 나았다. 이제 내려가는 게 남았다. 윗세오름에서 영실코스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그런데 한 가지 괜찮았던 것은 올라오면서 본 경치와 내려가면서 보는 경치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단풍이 아직 절정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멋을 간직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산을 내려가는 것은 별로 어렵진 않다고 했지만, 올라오는 거랑 똑같았다. 계단이 워낙 많아서 내려가는 것도 고된 일이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목적지가 보였다. 그런데 목적지에서 우리 버스가 있는 곳까지 3km를 걸어야했다. 갑자기 주저앉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마지막 힘을 더 내게 해준 것은 바로 벌이었다. 말벌 한 마리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동행한 선생님이 두르고 계셨던 수건으로 그 말벌을 공격하자, 보란 듯이 우리 주위를 맴돌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벌은 주변에 있던 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는 피해야한다는 몸부림을 치며 3km를 순식간에 내려왔다.

저녁은 고생했다는 의미로 고기뷔페에서 먹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추억 쌓기. 방법보단 누구와

▲ 기념촬영을 한 학생들.
3일차의 일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밤이 다가왔다. 일정이 완전히 끝난 줄 알았지만 수학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일정이 남아있었다. 바로 소통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수학여행 와서 어땠는지, 각자의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좋은 시간들이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2학년 수학여행의 목표는 도전이었고 그 도전을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감격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 좋았다.

상대방의 진심을 서로 알아가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친구는 이 학교에 와서 아주 행복했다고 했고, 내년에 졸업이라는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모든 감정들이 하나의 완성된 퍼즐로 맞춰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일차의 밤은 깊어갔다.

4일차 아침이 왔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각자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에서는 간단한 점심을 먹었고, 비행기 탑승시간이 임박했다. 1일차와 똑같이 말이다. 4일차는 다른 일정보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여러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여러모로 피곤했던 점도 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있었다. 추억을 쌓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누구와 추억을 쌓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있었다.

자주 와본 제주도이지만 같이 와보지 않았던 사람들이랑 왔다는 것, 친구들과 선생님들이랑 온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4일차 일정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에는 어떤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학교는 미래의 행복을 준비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행복을 느껴야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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