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시인 한하운 타계 41년, 인천에서 그를 재조명하다’ 3)
‘문둥병 시인’ 한하운, 소록도에서 그의 흔적을 찾다.
| <편집자 주> ‘문둥병 시인’으로 유명한 한하운은 1975년 2월 28일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산39번지의 자택에서 간경화로 사망했다. 당시 56세였다. 그가 인천에 정착한 지 25년만이다. 짧은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인천과 부평에서 살았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한센병으로 불운의 삶을 살았던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나이 40세인 1959년 음성으로 판명돼 성혜원을 떠나 사회에 복귀했지만, 한센병 환우들을 잊지 않고 부평에 거주하며 죽는 날까지 한센인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계속 했다. 인천시는 올해 ‘인천 가치 재창조’ 선도 사업의 하나로 부평구가 제출한 ‘한하운 재조명 사업’을 선정했다. 사업으로 한하운 시비와 사이버문학관 건립, 한하운 백일장 개최 등, 여러 가지를 구상하고 있다. <인천투데이>은 한하운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고 그의 삶과 문학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자 기획취재를 준비했다. 한하운 시인이 남긴 흔적을 찾아 그의 고뇌와 인생이 문학예술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5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호에는 ‘시인 한하운을 역사에 남기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실을 계획이다. |
격리수용하기 위해 섬에 갇힌 사람들
[기획취재] ‘시인 한하운 타계 41년, 인천에서 그를 재조명하다’ 1) 25년 살았던 인천에서 그의 흔적을 찾다. |
사방이 옥색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과 사람의 거친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보이는 소나무 숲은 섬의 역사를 알기 전에는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낭만의 섬으로 인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일본이 지배하던 초기, 조선에는 광주ㆍ부산ㆍ대구 등, 세 곳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사립 한센병 요양원이 있었으나 규모가 작아 수용인원이 적었고, 환자 대부분은 다리 밑이나 움막에서 살거나 유랑하며 걸식했다.
조선총독부는 한센병 환자들이 국가 위상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해 이들을 일정한 장소에 격리수용할 방침을 세웠다. 격리하기에 용이한 전국의 섬을 답사한 후 기후가 온화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이 많으며, 육지와 가까워 물자를 나르기가 쉽다는 이유로 소록도로 정했다.
원주민들의 강렬한 저항에도 조선총독부는 섬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30여만 평의 집과 땅을 강제로 매수해 환자들을 이주시키고, 1916년 2월 24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로 관제를 공포해 ‘소록도 자혜의원’을 설립했다. 전국에 자혜의원이란 이름의 일반 병원이 18개가 있었는데, 19번째로 개설된 소록도 자혜의원은 한센병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병원이었다. 1916년 환자 99명을 수용했는데, 이듬해인 1917년 연말 기록에는 사망자가 발생해 73명이 생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소록도 자혜의원은 ‘소록도 갱생원’과 ‘국립나병원’의 이름을 거쳐 지금의 ‘국립소록도병원’으로 거듭났다. 그 후 부평의 국립부평나병원을 포함해 전국에 산재해있던 나병원 9곳을 국립소록도병원으로 통합했다.
세 번의 죽음을 겪는 한센인
박물관엔 한센병에 대한 기초자료부터 질병 극복의 역사와 한센인과 소록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감금실과 단종, 낙태 등 인권유린이 이뤄졌던 아픈 과거와 마주하니 소록도의 천혜의 자연환경이 더욱 안타까웠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소록도갱생원의 검시실은 한센병 환자들의 정관수술과 시체 해부를 했던 곳이다. 사망자는 가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검시 절차를 마친 뒤 장례식을 했다. 시신은 소록도 구북리 뒤편의 화장터에서 화장했다.
100주년기념사업단 관계자 A씨는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기록하는 거였다. 이름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소록도에는 무덤이 없다. 모두 화장했기 때문이다. 없는 게 또 하나 있는데 아이들이다. 소록도에서는 무차별하게 단종(斷種: 수술에 의해 생식기능을 없애는 일)과 낙태가 이뤄졌다”
소록도에서는 남녀가 부부가 되려면 정관수술을 받게 했는데 이것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절차라고 해 ‘가정수술’이라고 불렀다. 또한 일제강점기 일본정부는 한센병 확산 방지와 한센병 환자들의 평생격리를 위해 우생학을 빌미로 수용시설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단종과 낙태를 실시했다.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었다.
단종 수술을 받은 ‘이동’이라는 이름의 환자는 수술 후 ‘단종대’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이 시는 예전 소록도 갱생원 검시실에 걸려 있다. 아래는 시의 전문이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을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소록도 사람들, 소통을 시작하다
채규태 국립소록도병원 피부과 과장은 “한센병에 걸릴 확률은 1000만분의 1이다. 국민의 대부분은 한센병에 걸리지 않는다. 전염될 확률도 1000만분의 1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5000만명이니까 우리나라 한센병 환자는 10명 내외다”라고 했다. ‘인천에 한센인이 200여명 있다’는 부평농장 관계자의 말을 전했더니, 채 과장은 “그들은 완치된 병력자다. 세계보건기구에서 한국의 활동성 한센인을 250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A씨는 “과거 한센병의 부정적 이미지나 차별이 지금도 존재한다. 박물관을 만들면서 이걸 없애고 싶었다. 관광객들이 소록도에 오면 자연과 공원만 구경하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소록도와 병원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박물관을 만들어 이 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진 삶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현재 소록도에는 주민 500여명이 산다. 현재 활동성 환자는 없지만 평균 연령이 74세이고 예전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대부분 장애가 있거나 몸이 불구인 병력자다.
“기본적으로 손발이 없고 사지가 절단된 분들이 많다. 소록도에는 마을 7개가 있는데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으면 마을에 살고 거동이 불가능한 사람은 병동에 입원해있다. 병원은, 병원 본관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마을을 포함해 섬 전체를 병원이라 한다”
전염과 유전이 안 된다는 걸 확인하고 이곳에서 가족들과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질문하자, A씨는 “2012년 국회에서 쟁점이 된 적이 있다. 관련법과 병원 운영규칙을 개정해, 지금은 원하면 가족이 같이 살 수 있고 국가 예산으로 의식주 전액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령의 환자들이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고민이 많은 거 같다. 현실적으로 가족과 살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답했다.
일제강점기에 붉은 벽돌 공장에 환자들을 강제 동원해 소록도에 있는 건물을 지었다는 역사적 사건을 담아 박물관을 붉은 벽돌로 지었다. 내부는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센인의 일생’이란 코너에는 한센병으로 자식과 강제로 이별하고 살아 온 어느 할머니의 일생을 다룬 실화를 샌드아트 영상으로 만들었다. 또한 한하운 시인의 시와 그의 일생을 기록한 것을 박물관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100주년기념사업단은 박물관을 준비하면서 소록도 자치회 임원들과 22년 전 건설된 일본국립한센병자료관에 다녀왔다. 콘텐츠와 운영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한센병 병력자들이 관람객을 상대로 자신의 생애를 구술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도 박물관이 전시를 하는 공간은 기본이고 관람객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써 역할을 하려는 게 핵심이다. 소록도 주민을 대상으로 구술사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자신의 생애를 관람객들에게 전하자는 거다. 이젠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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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장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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