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취재] 섬 생태ㆍ문화관광의 현재와 미래 2. 유럽 문명의 발원지 크레타

<편집자 주> 인천의 섬은 168개로 섬마다 고유한 자연과 역사,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인천 섬은 수도권과 가까운데도, 인천 앞 바다에 그 아름다운 섬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많다. 이에 인천시는 섬 활성화를 위해 각 섬의 특성을 살린 관광콘텐츠를 발굴하고, 이를 인천 관광의 핵심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아울러 관광객의 섬 접근성을 개선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섬에 주목하자,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섬 생태ㆍ문화 관광’을 주제로 한 공동기획취재를 기획했고, <인천투데이> 또한 같이 참여해 섬 관광이 활성화돼있는 국내ㆍ외 지역을 취재했다. 이 공동기획취재 보도가 ‘인천 섬 활성화 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서구문명의 발원지 크레타, 유럽 어원도 여기서 유래

▲ 크레타 이라클리오 항구와 베네치아 요새.(사진 가운데)

[공동기획취재] 섬 생태ㆍ문화관광의 현재와 미래

1. ‘섬 관광 1번지’ 통영의 고민
2. 유럽 문명의 발원지 크레타
3. 유럽이 사랑한 산토리니
4. 그리스 정부의 섬 관광 정책
5. 지속가능한 인천 ‘섬 관광’
그리스(그리스어 헬라스)의 주 13개 중 하나인 크레타(Crete) 섬은 유럽문명이 시작된 곳으로,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8336㎢로 제주도의 약 4.5배다. 크레타 관광객은 연간 약 500만명으로 주로 유럽에서 많이 오는 편이다.

크레타는 그리스 신화에 제우스가 성장했던 섬으로 등장하는데, 섬에는 제우스 산이 있다. 크레타주의 주도인 이라클리오(그리스어 헤라클레이온) 또한 헤라클레스 신화와 관련이 깊은데, 그리스 지명과 언어, 일상생활 곳곳에 신화가 배어있어 그리스 신화를 알고가면 섬 여행이 훨씬 즐겁다.

크레타가 서양문명이 시작된 곳으로 꼽히는 이유는 이곳 크레타문명(=미노아문명) 때문이다. 유럽의 어원이 되는 ‘에브로파(에브로페)’ 신화도 이곳에 깃들어 있다.

미노아문명은 고대 크레타 섬의 전설적인 군주 미노스에서 딴 것이다. 이들은 고대에 인도ㆍ유럽어족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으리라 추정되며, 선형문자 A를 남겼다. 미노아문명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해양을 넘나들며 활발한 무역을 벌였고, 훗날 미케네문명으로 이어진다.

크레타문명은 에게해 키클라데스문명과 교류하며 발달해 다시 그리스 본토까지 영향을 미쳐 미케네문명으로 이어졌다. 미케네문명은 다시 또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아테네, 스파르타 등)의 문명을 낳고, 이는 훗날 헬레니즘시대와 로마제국시대, 서로마와 동로마 제국 등으로 이어지며 유럽문명의 뿌리가 됐다.

크레타는 고대 미노아시대 유적인 크노소스궁전으로 유명하다. 크노소스궁전은 청동기 시대 도시국가 유적으로, 유럽 최초의 문명인 미노아문명을 엿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왕궁 유적지로 꼽힌다.

크레타는 이밖에도 베네치아의 옛 도시 흔적, 레팀노의 베네치아 성과 사마리아 협곡 등, 다양한 유적이 있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라클리오(헤라클레이온) 고고학 박물관은 신석기 시대부터 로마제국 시대까지의 유물을 갖추고 있는데, ‘파이스토스 원반’에 새겨진 문자는 여전히 해독 과제로 남아 있다.

조상과 하늘이 선물한 천혜의 관광자원

▲ 미노아문명 크노소스 왕궁.

크레타는 역사와 신화만 유명한 게 아니다.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두 기후지역에 속하는데 기후가 무척 따뜻하고 맑다. 지중해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겨울에도 10~15도를 유지할 정도로 따뜻하다.

크레타에서 미노아문명이 탄생해 오늘날 유럽문명을 낳게 하고 찬란한 역사문화유적을 선물했다면, 하늘은 천혜의 관광자원을 선물했다.

크레타의 해변 성수기는 5월에서 9월인데, 10월 초에도 해수욕을 즐기는 이가 많고, 심지어 겨울에도 따뜻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크레타 이라클리오 항구에서 동쪽으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코키니하니 해변도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다.

이곳 아리나샌드리조트 스테리오스 바커리스(Stelios Bagkeris) 매니저는 “호텔 이용객 중 내국인(그리스인)은 전체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99%는 유럽인이다. 호텔에 객실 362개가 있는데, 6~8월 시즌 예약율은 96%이고, 5월이나 10월에는 85% 정도 된다”고 말했다.

크레타는 섬이라 여름에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등산을 하고 스키도 즐길 수 있다. 또한 산에서 내려오면 바다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모든 것을 30분 간격에 소화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그야말로 천혜의 관광자원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섬이 크다보니 높은 산이 장관을 이루고, 또 산이 크다보니 계곡이 깊다. 2000미터 이상에 달하는 산이 60여개이고, 크레타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의 종류가 약 150개에 달한다. 같은 섬 안에서도 지역마다 기후와 경관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리스 정부와 크레타주는 이 자원을 토대로 생태관광을 펼치고 있다.

스테리오스 바커리스 매니저는 “생태관광은 주로 봄이나 가을에 진행한다. 4~5월, 10~11월이 제격이다. 이때는 호텔도 저렴하다. 산책과 트래킹을 하기에 적절한 기간이다. 봄에는 주로 트래킹을 하거나 계곡을 방문하러 온다”며 “보통 호텔은 성수기에 문을 여는데, 이라클리오에 있는 (우리) 호텔은 생태관광객을 위해 3월에 오픈한다”고 말했다.

작가 한 사람이 그리스를 알리고, 마을을 살렸다

▲ 에피 케팔라키 카잔차키스박물관 관장.

세계적인 음악가인 고(故) 윤이상 선생이 통영의 보배라면, 그리스 크레타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Kazantzakis)가 있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번역가이자 사상가다. 크레타 섬 이라클리로에서 태어났으며 ‘인간의 참된 자유’를 평생 탐구했다. ‘오디세이아’와 ‘그리스인 조르바’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세계 50개 언어로 번역돼 출간됐고, 이 책은 그리스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크레타 주도 이라클리오 시내에서 남쪽으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미르티야(Myrtia)마을에는 카잔차키스 박물관(Kazantzakis Museum)이 있다. 마을은 카잔차키스의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박물관은 카잔차키스의 아버지가 자란 곳에 건립됐다. 박물관 건립 당시인 1983년에는 소규모로 시작했지만 2009년에 리모델링해 2층으로 커졌다.

이 박물관에는 카잔차키스와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찾아오고 있으며, 한국인이 가장 많은 방문객으로 꼽힌다. 또한 한국인이 후원(기부나 기념품 구입 등)도 가장 많이 하고, 카잔차키스의 책도 가장 많이 읽는 독자다. 그래서 한국인을 고맙게 여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카잔차키스와 박물관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연간 1만명 안팎의 관광객이 200여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는 조그만 마을을 찾는다. 작가 한 사람이 책 한 권으로 그리스를 세계에 알렸고, 한 마을을 살리고 있는 셈이다.

박물관 입장료는 2유로다.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이라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없어, 입장료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 그래서 후원과 기념품 판매로 운영비를 보태고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는 바로 마을사람들이다.

에피 케팔라키 박물관장은 “올해 여름에 큰 축제를 열었는데, 마을사람들 도움이 없었더라면 치를 수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박물관을 지날 때마다 들러서 ‘밥은 먹었어? 청소해줄까? 몇 명 왔어?’라고 인사하고 간다. 마을주민들은 카잔차키스의 뿌리가 이 마을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마을 전체를 카잔차키스 박물관으로 조성하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가장 중요한 건 공동체정신이다. 마을사람들은 후원금을 기부하기도 하고, 책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박물관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고 가는데, 마을 부녀회와 청년회 등에서 벽화도 그리고 청소도 하는 등, 마을을 더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며 “크레타 사람들은 금전적으로 따지지 않는다. 우리는 다 같은 둥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공동체정신을 중요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골 마을도 지속할 수 있게 계획 세우는 중”

▲ 스타브로스 아르나오타키스 크레타 주지사.
스타브로스 아르나오타키스(Stavros Arnaoutakis) 크레타 주지사는 크레타를 “1000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섬”이라며 “태양과 바다를 만끽하고 가라”고 자랑했다. 찬란한 역사문화 유적에 자연경관까지 “섬 전체가 열린 박물관”이라고 했다.

다만, 크레타 관광에서 생태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크레타 주지사는 “여행객 대부분은 역사유적과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다. 생태관광 비중은 3%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대신 크레타도 시골 소득 감소와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시골마을이 지속할 수 있게, 또 활성화 될 수 있게 생태관광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주지사는 “크레타에 방문객이 오면 유적지만 아니라 시골 마을이나 자연경관을 찾아갈 수 있게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관광협회에 홍보하고 있다”며 “크레타 올리브 오일과 치즈가 유명하다. 마을에서 생산하는 치즈나 올리브 오일이 여행객에게 판매될 수 있게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크레타에선 관광산업(30%)이 농업(50%)과 함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크레타는 관광객 방문에 따른 민원은 거의 없다고 했다. 손님 접대를 잘해야 한다고 여기는 게 그리스 사람들의 문화인 것도 민원 발생이 적은 요인으로 꼽힌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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