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고교의 대안교육 이야기④

<편집자 주> 인천 최초의 인가 대안고등학교인 청담고교(교장 김경언)의 대안교육 이야기를 월 1회 연재합니다.

익숙하지 않던 교무실 풍경

▲ 공태웅(3학년) 학생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를 끝까지 다니지 못했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입학 자격과 대학 입학 자격을 모두 취득했다. 이후 할 것도, 갈 곳도 없어 방황하고 있을 무렵 부모님은 대안학교에 대해 말씀해주셨고, 그때 처음으로 대안학교와 만났다. 내 인생에 최고의 행운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 나이는 중학교 3학년과 같았기에 고등학교로 바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인천청담고등학교 안에 있었던 비인가 중학교에 들어갔다.

등교 첫날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은, 일반학교와 다르게 학생들이 교무실에 들어가 선생님들과 얘기하고 장난을 치기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해할 수 있었다.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던 나에게 선생님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 주셨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이 교무실에 와있는 이유를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17세가 돼 청담고교에 입학했다.

마음에 드는 특별한 활동들

우리 학교의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하교시간이 오후 3시 30분인 것이다. 이후 학교에 남아서 선생님들과 진로이야기와 미래에 대한 고민거리 혹은 이성이야기 등을 나누기도 하고, 친구들과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방과후학교를 신청해 대학생 멘토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 학교에는 일반학교와 다르게 특별한 활동이 많다. 철학, 가치관 세우기, 세상 바로보기, 공동체 회의 등을 하고 뒷산에 산책을 하러 가기도 한다. ‘진로의 날’에는 여러 가지 직업체험과 적성 찾기를 하고, ‘스포츠 데이’인 월요일엔 각자 좋아하는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한 주를 시작한다. 매주 금요일엔 ‘활력 비타민’이라는 활동을 하는데, 1주차는 공동체 활동, 2주차는 진로의 날, 3주차는 테마의 날, 4주차는 활동의 날을 진행한다. 그 중 4주차는 각종 캠프나 공연, 봉사활동을 한다.

“여기 사방이 다 화장실이지”

처음으로 농촌봉사활동을 갈 때였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굉장히 괴로웠다. 농촌, 봉사활동 등, 모든 단어가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모두 힘들게 했다. 밖에 나가는 것도 가끔 귀찮아하는 나인데, 더군다나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첫 농촌봉사활동을 강화도로 갔다. 아침에 눈 뜨고 세수 하고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갈 때까지만 해도 ‘오늘도 무난하게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버스에서 내린 후 나의 오늘이 매우 험난하다는 걸 알았다.

전날 종례 시간에 선생님이 인천지하철 1호선 ‘동막역’에서 모인다고 했는데, 혼자 잘못 알아듣고 동막역과 비슷한 이름인 경인전철역 ‘동암역’에 간 것이다. 다급하게 담임선생님에게 전화해 현 상황을 설명했더니,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오면 함께 갈 수 있다고 해, 다행히 농촌봉사활동을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강화도로 이동하는 1시간 내내 혼나기도 하고 잡담도 하면서 비교적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오늘 일할 장소에 도착했고, 점심을 먹었다. 오늘 작업할 밭을 미리 보았는데 또 한 번 ‘멘붕(=멘탈 붕괴)’이 왔다. 한 사람이 한 고랑씩만 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고랑의 길이가 매우 길었다. ‘저걸 언제 하지’라는 생각에 긴 한숨만 나왔다.

난 마른 몸의 소유자다. 평소에도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햇볕을 쬐면 몸이 마를 수 있으니 피해가라고 할 정도다. 또한 선천적으로 몸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고구마를 캐다가 쓰러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다. 그런데 더 큰 시련이 나에게 닥쳤다. 한 친구가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답하신 것이었다.

“이 시골에 화장실이 어디 있겠어? 여기 사방이 다 화장실이지. 너희가 생각하는 화장실다운 곳을 가려면 걸어서 꽤 가야해”

지금까지 들은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다. 농촌, 봉사활동, 화장실 등, 어려운 단어가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고구마, 고구마, 또 고구마

▲ 청담고교 학생들이 강화도로 농촌봉사활동을 가서 고구마를 캐고 있다.
드디어 작업 시작. 우리는 장갑을 끼고 호미를 들었다. 제법 농부다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캤다. 그리고 또 고구마를 캤다. 그런데 고구마가 또 있었다. 계속 고구마였다. 온종일 고구마였다.

할머니가 고구마를 캐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주셨고, 우리는 어려운 작업과정 하나하나를 익혔다. 생각보다는 단순해보였지만 막상 작업하다 보니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무렵, 할머니는 일흔 살이 넘었다고 당신의 나이를 밝히셨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인 손자가 있다고 말씀하기면 우리를 보고 웃으셨다. 당신이 이 마을에서 제일 젊다고, 농촌에서 일손 구하기가 너무 어려운 나머지 가끔은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작업한다고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어딘가 모르게 아려왔다. 젊은 우리도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을 일흔이 넘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하신다는 생각을 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고구마들이 한 줄기에 얽혀 있었고, 그 줄기를 따라가면 고구마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나왔기에 신기했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나오는 벌레들을 보며 땅 속에 많은 벌레가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그 벌레들이 무서워 일을 하기 싫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고구마를 캐기 시작한 지 20분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허리가 아팠다. 아직 한 고랑의 반의 반도 안 캤는데도 이렇게 허리가 아픈데 넓은 밭의 고구마를 다 캐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새삼 존경스러웠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작업 도중 화장실에 간 친구가 휴지가 없어서 못나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후, 내가 휴지를 가져다주는 일도 있었다. 2시간 정도 열심히 하다 보니 끝이 보였다.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음악 덕분이었다. 물론 봉사를 열심히 하고자하는 마음도 많았지만, 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하다보니 지루해졌다. 그때 누군가가 켜놓은 핸드폰 음악소리에 지루함을 잠시 잊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노동요가 많이 발달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일을 모두 마칠 무렵, 한 명 한 명이 “끝났다”를 외치며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고구마를 캐는 작업을 끝내고 찐 고구마를 할머니가 직접 담그신 강화 순무김치랑 음료수와 함께 먹으니 정말 꿀맛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흙을 만지고 밟을 기회조차 없었는데 도시를 벗어나 이렇게 땀을 흘리니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개운함이 지친 마음을 달래줬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잠시나마 풀 수 있었다. 마음이 홀가분해진 느낌이었다.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은데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 선생님들께 감사하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즐거움을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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