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오면>

나도 음악대학을 나왔다. 피아노 전공이었다. ‘전공’이란 걸 하려고 지겹게 피아노를 칠 때는, 당연히 나중에 내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쳇!
영화의 한 장면. 도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수현(장신영 분)이 현우(최민식 분)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음악 왜 하게 되셨어요?”
현우가 그 질문을 받는데 왜 나는 내가 왜 음악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했을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처럼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예뻤다던가 친절했다던가, 혹은 어떤 이의 연주가 감동적이었다던가, 하는 그런 이유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질문을 받고 현우는 아주 머뭇머뭇 바보처럼 대답한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질 않아요”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계기 때문에, 현재의 현우는 몇 번이나 떨어지면서도 오케스트라의 트럼펫 연주자가 되려고 오디션을 치르고, 순수한 음악을 하겠다며 밤무대에 서는 것은 거부하면서도 결국은 돈 때문에 구청에서 동네 아줌마들을 가르친다.
계속 연주를 하며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아무도 그에게 ‘연주자’라는 공식적인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는다. 그는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걸 증명할 사회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그를 사랑하는 애인 연희(김호정 분)마저도.
사실…… 꿈대로, 희망대로, 계획대로 다 이루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현우도 그랬다. 밤무대서 섹소폰을 연주하는 것보다는 아줌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늙어가는 엄마를 위해 탄광촌에라도 가서 선생질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제자의 할머니의 병원비를 위해서는 밤무대에서 섹소폰을 부는 게 낫다고 생각해 그렇게 했다. 그는 매번 그렇게 선택해왔다.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라든지 “꽃피는 봄은 반드시 온다”라는 말은 현우에게 오히려 그저 ‘헛웃음’이나 나오게 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비교적 최선을 다해 선택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나는, 아직도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신경이 곤두서며 나도 모르게 시선이 소리나는 쪽으로 따라가는 걸 느낀다. 아직도 피아노 앞에 않아 멘델스존의 곡을 치노라면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을 만큼의 짜릿한 흥분이 밀려오곤 한다.
그렇다고 술에 취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울먹이는 현우처럼 내 인생을 다시 생각하고 싶은 맘은 없다. 그러나 때때로,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맘이 아주 강렬하게 솟아오르는 게 우리네 평범한 이들의 인생이 아닌가.
아, 현우는 알까? 당신의 트럼펫 연주를 당신의 제자가 똑같이 불고 있다는 걸. 그 아이에게 그게 자랑스러움이란 걸. 그리고 나도 그 곡이 무지 좋아졌다는 걸.

 

* 필자 최경숙씨는 다음 카페 ‘우리영화를사랑하는인천사람들’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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