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고교의 대안교육 이야기③

<편집자 주> 인천 최초의 인가 대안고등학교인 청담고교(교장 김경언)의 대안교육 이야기를 월 1회 연재합니다.

▲ 지근범(3학년) 학생
인천청담고등학교를 친형 덕분에 알았다. 형이 먼저 청담고교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일반 고교와 달리 정말 자유로운 학교규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제일 부러웠던 건 중간고사가 없다는 점이다. 등교시간이 다른 학교보다 늦기 때문에 형은 나보다 더 많은 잠을 자곤 했다. 그런 형을 보며 얄밉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일반 고교와 청담고교를 놓고 몇날며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나는 청담고교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잘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처음 청담고교를 마주한 느낌은 허전함 그 자체였다. 일반 고교와 교육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황도 많이 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내가 생각하는 우리 학교는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을 실천하는 학교다. 대학에 가면 자유는 많겠지만 지금과 같은 재미와 편안함은 없을 거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다.

우리 학교에서 진로 찾기

누구나 청소년기엔 자신의 진로를 고민한다. 나도 진로 때문에 방황을 많이 했다. 몇몇 친구는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으라’고 쉽게 말했지만, 난 내 꿈이 확실했기에 가업을 물려받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가고 싶었고, 청담고교를 다니기 전부터 그 진로를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다.

바로 곤충사육사라는 직업이다. 어릴 때부터 곤충을 좋아해 자연스레 장수풍뎅이를 키웠고, 점차 호기심이 늘어나 사슴벌레, 타란툴라, 심지어는 엄마 몰래 파충류인 뱀까지 키웠다.

중학교 2학년 때 볼파이톤이라는 뱀을 9만원에 입양했다. 엄마가 알면 기절할까봐 침대 사이에 몰래 넣고 키웠다. 길이는 30~40cm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내 방 청소를 하다가 뭔가 걸리는 느낌이 나 살펴보니 뱀이 혀를 날름날름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란 엄마는 당장 팔아치우라고 했고, 결국 헐값(?)에 뱀을 보냈다.

오기가 생긴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뱀 한 마리를 몰래 들여왔는데 넉 달 키우다가 들켜 혼났다. 그때는 무려 길이가 1m까지 성장했다. 그렇게 동물들과 지내는 것을 좋아한 나는 진로도 그쪽으로 정했다.

청담고교는 매달 1회 이상 ‘진로의 날’을 운영한다. 1~2학년 때는 직업군 20개 체험 활동을 하고, 3학년 때는 인턴십 활동을 한다. 나는 쇼콜라티에ㆍ공무원ㆍ마술사ㆍ사회복지사ㆍ바리스타ㆍ게임개발자ㆍ큐레이터 등, 다양한 직업을 체험했다. 직업 체험을 하면 할수록 내가 선택한 분야에 내 취향이나 성격이 더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로담당 선생님, 담임선생님과 함께 진로를 찾기 위해 애니어그램ㆍ엠비티아이(MBTI)ㆍ스트롱 등으로 검사를 했다. 직업흥미검사에서 R유형이 나왔는데, 이 유형은 현실감각ㆍ자연친화성ㆍ손재주 등이 함께 있는 유형이다. 또한 MBTI는 ISFP(성인군자)형이 나왔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볼 때, 곤충사육사의 길을 걷기에 좋은 조건이라는 상담을 받았고, 내가 이 길을 계속 걸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곤충사육사라는 진로가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 분야를 직업으로 고민한다면 할 수 있는 게 기껏해야 곤충가게 운영자였다. 그래서 해외로 나갈 생각도 해봤다. 결국 국내에서 곤충과 절지류 분야의 권위자가 되는 것으로 정했다.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진로 확신

▲ 지근범 학생이 사슴벌레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 학교는 3학년 때 진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턴십에 참여해야한다. 드디어 지금까지 고민한 내 진로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기뻤다. 진로담당 선생님의 소개로 인천의 한 곤충가게에서 인턴십을 하기로 했다.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곤충(절지류)이 많기에 재밌을 것 같았고, 30평(약 99m²)가량의 가게에는 실제로 많은 곤충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곤충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을 보살피는 일과는 좀 달라서 힘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때마다 먹이 주는 일과 산란 해체(사슴벌레의 산란목을 해체해 애벌레를 한 마리씩 분리)였다.

어떨 때는 인턴십을 하러온 게 아니라 청소부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청소를 많이 했다. 톱밥 버리기, 거북이 통 씻어오기…. 원하는 것과는 다른 일을 시켜서 좀 서운했다. 유통기한이 2년 지난 우유를 버리고 오라는 말에 구역질을 하면서까지 우유를 버렸던 일이 기억난다. 나중에 더 훌륭한 곤충사육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나름 힘든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사장님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에 그동안 쌓였던 감정도 풀리고 열심히 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이 인생이란 생각도 했다.

인턴십 기간 중 가장 재밌었던 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곤충(절지류)을 마음껏 만지고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표본제작(곤충의 시체를 냉동시켜 놓았다가 뜨거운 물에 불린 후 나무판에 올려두고 핀을 박는 작업)이었는데, 아끼던 곤충이 죽으면 표본으로 만들어 간직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예전에 인터넷을 보며 여러 번 시도했다가 매번 실패한 균사(대형 성충을 뽑기 위해 먹이는 버섯)를 배양하는 기술도 배웠다. 전문가인 사장님에게 몇 가지 요령을 배웠고, 그동안 실패로 끝났던 배양작업을 끝내 성공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는데, 내가 배양한 균사로 대형 개체를 뽑아보는 것이다.

인턴십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사슴벌레 산란해체를 했다. 분리한 애벌레를 한 마리씩 균사에 투입했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물건 나르는 일과 매장 청소를 했다. 일곱째 날은 표본제작과 균사 배양하는 기술을 배웠고, 마지막 날은 인턴십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수피(산란목에 붙어있는 나무껍질을 칼로 벗겨내는)작업을 했다.

인턴십 마지막 날에는 사장님이 고생했다며 사슴벌레 세 마리와 장수풍뎅이의 유충을 줬다. 사장님은 “네가 내 가게로 배우러 오는 게 기뻐서 모든 걸 가르쳐줄 생각이었고, 나중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모든 걸 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턴십을 하면서 멘토를 얻었고, 내가 가려고 하는 이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 사장님과 얘기를 했는데, 이쪽 분야는 점점 더 발전해나갈 것이고 지금처럼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내 목표인 국내 최고의 곤충(절지류)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사장님은 우스갯소리로 본인이 공부를 했다면 아마 곤충박사를 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 진로는 더욱 확고해졌고, 대학 역시 곤충학과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엔 곤충학과가 없기 때문에 생물학과로 진학하려고 준비 중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곤충 관련 분야가 더욱 발전한 독일로 가고 싶다. 다른 학교에는 없는 인턴십 프로그램이 우리 학교에 있는 게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 5년 혹은 10년 뒤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친구가 찾아온다면 내가 배운 지식과 노하우를 모두 알려줄 것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