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보선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학교 행사가 있어서 부랴부랴 출근하던 중이었다. 지하주차장을 지나 정문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윤아 아빠, 노란리본이 집에 있네”

옷을 갈아입느라 노란리본을 깜박하고 나온 것이다. 아내가 내려와 건네줬다. 아내 덕에 오늘도 나는 노란리본을 달고 출근한다. 노란리본은 내게 일종의 맹세와 같다.

지난해 12월, 전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분이 ‘나쁜 나라’라는 다큐영화를 상영하고 싶다고 어렵게 전화했다. 흔쾌히 학교 시청각실에서 상영하게 허락했다. 예닐곱 살 아이들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까지 100여명이 관람료 5000원씩을 내고 영화를 봤다. 우리 부부도 함께 관람했다.

영화의 내용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자식을 잃은 단원고 학생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법’을 통과시키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었다. 국가가, 정부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 생때같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럴 수는 없겠다, 싶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나는 줄곧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참으로 ‘나쁜 나라’라는 탄식이 가시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노란리본을 달고 외출한다. 하늘의 별이 된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당신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두 자녀의 아버지이기에, 무엇보다 유가족들의 애끓는 마음을 함께하고 그들과 동행하고 싶었다.

2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1996년 5월, 나는 고3 담임을 맡아 분주한 중에도 후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계신 아버지를 뵙기 위해 매일 같이 병실을 찾았다. 늘 피곤이 절어 살았던지라 병실 보호자석에 기대어 스르르 잠에 빠져 들었나보다. 새벽 2시께, 잠에서 깬 나는 침상에 앉아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버지의 눈가가 눈물에 젖어 있었다.

“아버지, 왜 주무시지 않고 계세요”

“나 때문에 많이 피곤하지? 내가 지금 눈을 감으면 너를 다시 볼 수 없을 거 아니냐. 그래서 네가 잠자는 걸 보고 있었다”

그렇게 아련한 눈빛으로 웃으시던 아버지는 한 달 후 하늘나라로 가셨다. 한평생 가난한 섬마을 농부이셨던 아버지, 암으로 고통 받는 자신보다 자식의 피곤을 더 걱정하는 것이 세상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아버지가 돼 자식들을 키워 보니 말로 다 못하신 아버지의 속 깊은 정을 절로 읽어내게 된다.

그런데도 이런 마음을 알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이들이 있다. 죽음 앞에서 절규하며 쇠문을 긁다가 손톱이 다 빠져버린 자식들, 그 아이들을 떠올리며 함께 천 길 물속에 가라앉아 헤어나지 못하는 부모들의 고통과 슬픔을,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아픔과 절망을 그들은 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일까.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법’ 제정을 요구하며 무려 46일간을 단식한 아버지의 심정을 그들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나를 비롯한 그 누구도 극단적 단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 없으리라. 또한 그 아버지가 느끼는 심장의 고통을 대신해줄 수도, 그 지극한 분노를 풀어줄 수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한 아버지가 쓴 글을 보았다.

“참사가 일어난 지 800일이 지나도록 유가족들은 여전히 노숙을 하는 세상입니다. 어떻게 하면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진상 규명을 포기하고 안전사회를 포기하면 돌아갈 수 있겠죠. 그러나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포기하기엔 너무도 억울해서…. 무엇보다 안전한 사회를 우리 아이들이 원하니까요”

나는 교사다. 교사는 학생들이 바른 길로 가게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교사는 학생들에게 정직과 정의를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는 진실함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그 이정표를 곧게 세울 수 있는 지조와 신념이 있어야한다.

무한경쟁, 입시지옥, 학벌천국에서 살아남은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호가 위태롭다. 거짓과 막말,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이 팽배해있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국민은 본업에 충실하라고 한다. 점점 기울어지는 세월호에서 “조용히 기다리라”는 방송에 순응하며 검은 바닷물에 잠겨간 아이들, 대한민국호도 그렇게 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대한민국호가 순조롭고 안전하게 순항하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교실로, 정의를 말할 수 있는 민주적인 학교로 변화해야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땅은 진실과 기본원칙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민주정의사회가 돼야한다. 서두르자.

그리고 지금부터 학교가 중심이 돼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나라’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자. 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새로운 도전의 중심에는 바로 우리 교사들이 서야한다. 그것이 노란리본의 맹세를 잊지 않는 길이다. 살아남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우리들의 슬픔을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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