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총회 무산 후 분신

자살한 전씨, 임금관련 노사 잠정협정(안)에 비판적


지난 23일 밤 9시 55분경 인천시 서구의 한 택시회사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 이 회사의 전 노조 부위원장인 전아무개(42)씨가 몸에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분신자살했다. 이를 회사 경비원과 인근 슈퍼마켓 주인이 경찰에 신고해, 시신은 서구 성민병원에 안치됐다.

분신한 전씨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지난달 해고된 직장 선배에게 “형 미안해요. 도와주지 못해…”가 전부이다. 전씨는 이날 조합 총회가 무산된 뒤 해고된 선배와 현 노조 부위원장인 우아무개씨 등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 자리에서 마지막 말을 남긴 전씨는 이들과 헤어진 뒤 분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유서가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전씨가 평소 내성적이고 술을 많이 마셨다는 주변 진술 등을 확보하고 가정불화가 있었는지, 노사문제와 관계있는지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개인면허 준비하던 성실한 40대 전씨

24일 새벽 장례식장에서 만난 전씨의 동료들은 전씨가 1996년경 입사해 지금까지 11년 무사고 운전을 했고, 올해 ‘운송사업면허’를 취득해 개인면허를 준비 중이었으며, 성실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전씨의 동료들에 따르면, 전씨는 2005년 노조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위원장과의 의견 차이 등으로 부위원장직을 그만뒀지만, 평조합원으로서 조합 일에 열심히 임했다는 평이다. 전씨는 또, 현재 택시노동자들이 겪는 노동 착취를 매우 안타까워했으며, 지난달 해고된 동료 대의원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매번 미안하다고 말해왔다. 이와 함께 전씨는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역본부(인천민주택시연맹)가 지난해 12월 1일 인천지역 택시 사측과 체결한 임금관련 잠정협정(안)에 대해 ‘택시노조의 피와 땀을 송두리째 갖다 바치는 비민주적인 밀실야합’이라고 비판했으며, 23일 총회 무산에 대해서도 매우 안타까워했다.

23일 총회의 주요 안건은 지난해 12월 1일 인천민주택시연맹과 사측이 산별교섭에서 합의한 잠정협정(안)에 대해 조합원 투표를 통해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 노조 위원장 등이 찬반투표를 거부해 결국 총회가 무산됐다. 이 회사 노조 위원장은 노사 잠정협정(안)을 체결한 지난해 산별교섭에 교섭위원으로 참석했다. 


▶노조 위원장이 찬반투표 거부한 이유

전씨의 장례식장을 찾은 인천민주택시연맹 조합원들은 한목소리로, 이번 잠정협정(안)이 2002년 65일간의 파업투쟁을 통해 얻은 최소한의 성과물인 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재정서’보다 훨씬 후퇴했다고 평가하고, 그동안 이를 폐기할 것을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또한 변화된 근로기준법·최저임금·요금인상·유류비 등을 감안해 완전월급제를 지향하는 임금 재협상을 진행할 것과, 이를 위해 각 단위사업장의 임시총회를 즉각 소집할 것을 주장해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러한 흐름 속에서 23일 전씨가 속한 기업의 노조도 조합 총회를 통해 잠정협정(안)을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묻는 조합원 투표를 진행하려 했던 것이고, 노조원들이 잠정협정(안)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택시노동자들이 잠정협정(안)을 거부하는 이유

문제의 잠정협정(안)은 연월차 휴가 등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대신에 무사고 장려수당 5만원을 성실수당 11만원으로 교체하는 방안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많은 조합원들은 잠정협정(안)이 인천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재정서’보다 임금과 노동조건을 훨씬 후퇴시켰다고 반발하고 있다.

2002년 10월 인천민주택시연맹과 27개 택시회사가 제출한 중재신청에 따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월평균 운송수입금 230만원 중 48%인 110만4천원을 임금으로 정하는 ‘중재재정서’를 내놓았다.
‘중재재정서’에는 월 임금 중 80%인 88만3200원을 정액급여로 하고 나머지 20%인 22만800원을 성과수당으로 하되, 성과수당은 운송수입금 실적에 따라 별도의 산정방식을 적용, 차등 지급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성실근무를 유도하기 위해 월 최저 운송수입금을 200만원으로 정하는 한편 성과수당 비율의 가·감산제 도입한다. 이에 따라 운송수입금이 200만원 미만일 경우 임금총액은 월 운송수입금의 40%를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단계적인 감산율이 적용돼 산출된다. 하지만 260만원 이상인 경우 최고 3%까지 성과수당 비율이 높아지도록 규정돼 있다. 이밖에도 상여금은 1년 이상 근속자의 경우 기본급의 450%, 6개월 이상 근속자의 경우 200%를 지급하고, 노동일수는 월별로 24∼26일이며, 노동시간은 하루에 7시간 20분, 1주일에 44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결국 인천지역 택시노동자들의 다수는 잠정협정(안)이 성과성 월급제·업적금제·정액제·도급제 등 현재 적용되고 있는 임금체계나 인천지방노동위의 중재재정서보다 불리하다고 평가,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정황을 살펴볼 때 현재 인천민주택시연맹이 안고 있는 갈등과 노사문제가 전씨의 분신자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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