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인천지역 공연예술단체, 뭘 먹고 사나? 5
타 지역 예술경영 우수 사례<2> 강원도 춘천의 문화프로덕션 도모

강원도에서 서로 다른 극단 활동을 하던 다섯 명이 2000년에 춘천에서 뭉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춘천에선 직장을 다니면서 연극을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다섯 명은 연극을 전업으로 하는 삶을 도모하자며 극단 ‘도모’를 만들었다.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기만의 공간이 없고, 이렇다 할 수익도 없다보니 다른 극단에 얹혀살면서 다른 단체의 공연기획 대행이나 공연홍보 대행, 축제 운영 등으로 연명해야했다. 그렇게 3년을 버틴 끝에야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극단들이 대부분 연출자 한 명과 배우 여러 명으로 움직인 것에 비해, 극단 도모는 기획과 연출에 중심을 뒀다. 창단 멤버들이 기획과 스텝, 연출, 배우 등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았고, 지역 극단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 ‘기획력 부재’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3년간 준비해 2006년, 일본 북해도부터 큐슈까지 한 달간 투어공연을 했다. 일본의 네트워크를 집대성한 이 일본 전국 투어공연은 구성원들의 자긍심을 고취했고, 사단법인 문화프로덕션 도모로 전환한 계기가 됐다.

‘극단, 사단법인, 사회적기업, 사회적기업 지원 종료, 그리고 지금은 5단계’라고 구분하는 문화프로덕션 도모의 황운기(43) 대표를 지난달 16일 춘천에서 만났다.

사단법인으로, 그리고 사회적기업으로

▲ 극단 도모의 ‘처우’ 공연 장면.<사진제공·문화프로덕션 도모>
“2008년에 사단법인 ‘문화프로덕션 도모’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전까지 만해도 전업 극단을 표방했기에 포스터를 붙이든, 스텝 일을 하든, 기획 일을 하든, 축제에 파견을 나가든, 수익 공동분배 원칙 즉, 사회적경제의 기본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면 활동을 확장하고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약간은 주먹구구식으로 해오던 일들을 조직적으로 구조화한 것이다”

문화프로덕션 도모는 2009년에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다. 사단법인 때 10명이던 직원이 27명으로 늘었다. 조직 확대의 여파는 컸고, 몸살을 앓아야했다.

“기업이냐, 예술단체냐?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인건비를 지원받아 조건에 맞는 고용을 창출하려다보니 문화 예술적 마인드가 없는 사람도 채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출퇴근 점검, 주40시간 근무 등도 생소했다”

황운기 대표는 두 가지, 즉 기업과 예술단체 성격을 모두 가지고 가자고 마음먹었다. 주40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되 ‘탄력적 근무시간제’를 도입했다. 배우는 일찍 출근해도 할 일 없고 늦게까지 일하는데, 굳이 다른 직군들과 동일하게 적용할 필요가 없었다. 3개월 인턴제를 원칙으로 하되, 배우는 6개월 무급인턴제를 거쳐 채용했다. 배우는 다른 직군들에 비해 검증할 시간이 더 요구된 것이다.

올해는 사회적기업 지원이 종료된 지 3년째다. 지원이 끊기면 어려움에 처하기 마련인데, 어려움을 체감하지 못한다.

“극단, 사단법인, 사회적기업, 사회적기업 지원 종료, 그리고 지금은 5단계라 할 수 있다. 지원을 많이 받으면, 수익창출에 신경을 쓰다보면, 콘텐츠가 약해지고 예술정신이 사라질 수 있다.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사업 등, 지원 중심으로 가다보면 새 작품 만드는 걸 등한시할 수 있다. 상주단체 기한이 지난해 만료됐기도 했고, 스스로 끊기도 했다. 자립성장에 제약이 될 수 있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도모는 2~3단계 때만 하더라도 전체 수입액의 80% 정도(연간 약 2억원)를 공공기금 지원에 의존했다. 그만큼 자립을 갈구했다.

‘적은 급여, but 착한 복지’와 ‘우물 안 마케팅’

문화프로덕션 도모는 여성가족부의 ‘2013 가족친화 인증기업’에 선정됐다. 그에 앞서 201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예술경영 우수사례’ 컨퍼런스에서 ‘적은 급여, but 착한 복지 도모’라는 주제로 으뜸상을 받았다. ‘착한 복지’는 거창하지 않지만, 잔잔한 배려와 감동이 있다.

“2003년에 결혼해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는 데 힘들었다. 직원들이 출산과 육아의 힘듦을 겪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급여를 많이 줄 수는 없지만, 복지는 할 수 있다. 처음에 한 것은 당사자를 제외하고 이촌 이상 친척 생일 챙기기였다. 생일 축하카드로 시작했다. 그리고 3년 이상 근무한 자에 한해 매해 한 달간 유급휴가를 쓸 수 있는 안식월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순이익에서 5% 정도를 직원 교육에 쓰고 있다”

문화프로덕션 도모의 임금체계는 일반 회사와 유사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팀장급 이상은 다른 직원과 만나는 활동비 즉, 술 먹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당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연봉 협상제도’라는 게 있다. ‘내가 앞으로 이걸 할 테니 연봉을 이만큼 더 달라’고 제안하면 이사회에서 심사한다. 지금까지 3명이 이 제도를 활용했다. 이사회를 상임이사 6명과 비상임이사(=초창기 멤버 중 나가 있는 사람) 3명으로 구성했는데, 매해 ‘아름다운 도모인’을 선정해 이듬해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것도 특이점이다.

문화프로덕션 도모는 ‘2013 예술경영 우수사례 컨퍼런스’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주제는 ‘우물 안 마케팅’이었다.

“춘천이라는 우물 안에서 공연티켓을 누구에게 팔까 고민했다. 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누굴까? 막연하게 대학생, 주부를 생각했지, 정확한 타깃이 없었다. 첫째가 동종 업계였다. 무용이나 국악은 사사 개념이 강하다. 찾아가서 이야기했다. ‘우리 공연을 학생(제자)들이 보게 해 달라. 우리는 어떻게 하겠다’는 식이었다. 그 다음에 생활협동조합을 찾아가 생각을 나눴다. 조합원 명단을 받는 게 아니라 정보를 공유했다. 병의원, 로터리클럽, 라이온스클럽도 적중했다. 한동안 잘 됐다. 그런데 문제는 꾸준하게 관리하는 게 어렵다는 거였다. 지금은 주춤한 상태다. 게다가 2013년부터 작품 ‘처우’를 주로 다른 도시에서 공연하다 보니 관리가 더욱 소홀해졌다”

모범은 지속가능해야하는데, 황 대표가 아쉬워하는 지점이다.

최근 3년간 평균매출액 16억원 … 올해 공공지원금 1400만원

▲ 2015년에 찍은 문화프로덕션 도모 직원 단체사진.<사진제공·문화프로덕션 도모>
문화프로덕션 도모가 올해 지원받는 공공기금은 1400만원이다. 반면에 최근 3년간 평균매출액은 16억원 가량이다.

연극 공연이 투자 대비 적자인 상태에서 수익을 어디서 창출할 것이냐를 고민하고 방안을 마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문화예술사업 대행 입찰에 신경을 많이 써왔다. 올해는 제주 해비치 아트페스티벌을 대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립에 성공했다 할 수 없다고 황 대표는 단언했다.

문화프로덕션 도모는 작년 말과 올해 상반기에 경영상 어려움을 겪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사태의 여파가 누적된 결과다.

황 대표는 예술 산업 형태를 띠면서 새 콘텐츠를 생산하고, 직원들에게 급여를 안정적으로 주는 형태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공연이라는 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기획과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프랑스의 ‘사회적기업 네트워킹’에 관심을 두고 있다. 사회적경제 안에서 수입구조와 지출구조를 공유해야하는데, 우리는 답을 못 찾고 있다. 수익구조가 안 나오게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제작비를 많이 투여해야 흥행한다. 그럴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극단은 밑 빠진 독과 같다. 그걸 깨트릴 수 없다면 다른 수익구조를 만들어야한다. 하나의 방편으로 ‘좋은 여행 도모’라는 법인을 만들었다. 문화예술상품만 취급한다. 국내 축제에 참가하는 해외 팀이나 국내 팀의 해외 축제 참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의 경우 규모가 커, 문화예술 여행사가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매출실적은 연간 3억원대다. 별도의 수익구조를 가지면서 문화프로덕션 도모를 지원하는 것이다. 수익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지속가능은 어렵다”

수익창출과 새 콘텐츠 생산은 지속가능의 전제조건

요즘 국내 문화예술계는 ‘공급 과잉’ 상태라 한다. 그래서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고, 많은 예술단체가 중국으로 가고 있다.

황 대표는 “동남아시아도 또 다른 시장이다. 우리는 필리핀 세부에 3년째 투자하고 있다. 세부에 사무실을 두고 직원이 왕래하고 있다”고 한 뒤 “아울러 우리가 기지고 있는 콘텐츠를 재해석하는 게 필요하다. 연극만이 콘텐츠가 아니다. 연극을 기반으로 영상, 책, 재밌는 여행상품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지금 급여 수준을 보면 기획팀의 경우 입사 3년 이상이 170만~200만원 정도인데, 채용 경쟁률이 10대 1가량이다. 지금 수준의 급여를 주면서 단체를 연명하기보다는 지역, 나아가 국내에서 문화예술계를 리드하는, 문화예술 산업을 리드하는 혁신적인 기업으로 나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새 성장 동력을 만들어한다”고 강조했다.

문화프로덕션 도모는 조직 개편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전체 직원이 참여하는 설명회와 워크숍, 시뮬레이션을 거쳐 새 틀을 짤 계획이다. 현재 기획팀(5명)과 극단(배우 4명), 스텝(극장 운영), 사업팀 해서 총16명이 있는데, 극단과 기획팀을 파괴하고 창조(=창작)팀과 서포터즈, 크게 두 개로 분할하는 게 황 대표의 구상이다.

황 대표는 “기본적으로 다른 단체와 다른 우리의 생각 중 하나는 엄청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작과 지원을 재미있게 하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일이었으면 하고, 그 가치가 인정받았으면 한다. 어떤 논문을 보니 ‘대기업에서 인센티브를 많이 준다고 일을 더 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콘텐츠 공급 과잉상태서 살아남기 위해선

흔히, 춘천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연극, 인형극, 마임 등의 국제 축제가 연중 열리는 곳이기에 그렇다. 이러한 국제 축제들은 문화프로덕션 도모가 해외 예술단체들과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고, 그 과정에서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춘천의 문화 예술적 환경은 변하고 있고, 거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하기 마련이다.

황 대표는 “인천과 경기도 의정부에 이어 최근엔 춘천도 서울에서 쭉 빨아가는 ‘빨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경춘선 ITX-청춘열차 개통으로 춘천에서 용산까지 1시간 10분에서 20분이면 간다”며 “이는 단체 입장에서 장단점이 있다. 공급 과잉상태로 경쟁이 치열해지지만, 한편으론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좋은 배우를 데려올 수도 있다. 배우는 ‘우리 극단이 어떻게 빛나나’보다, ‘좋은 연출, 좋은 작품, 공동체’보다 ‘내가 무대에서 어떻게 빛나나’를 우선하는 속성이 있다. 배우들도 변해야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황 대표는 춘천역으로 향했다. 전주에 가기 위해서다. 문화프로덕션 도모처럼 극장(100~150석)과 극단을 가지고 있는 단체 8개가 모여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대한민국 소극장 열전(함께 모여 한 달간 시연 후 공연)’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것과 관련한 모임에 가는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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