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인천지역 공연예술단체, 뭘 먹고 사나? 4
타 지역 예술경영 우수 사례<1> 강원도 화천의 문화공간예술텃밭

7월 2일 정오 무렵,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신읍리에 위치한 ‘문화공간예술텃밭’에 도착했다. 너른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폐교를 리모델링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큰 마당을 중심으로 산 쪽으로 건물이 하나 있는데 옛 분교 교무실과 교실 두 칸을 개조해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고, 마을 쪽 마당엔 신축한 실내공연장과 펜션, 그리고 야외무대가 있다.

실내공연장 안에선 청소년과 군인, 어른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관계자의 안내로 잠시 마을로 내려가 마을회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김민후(44) ‘문화공간예술텃밭’ 대표를 만났다.

식당에선 김복기 신읍리 이장을 비롯해 마을 주민 서너 명이 호박전 부치기를 비롯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곧이어 좀 전에 실내공연장에서 본 듯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내려와 식사를 하고 다시 올라갔다. 7월 23일부터 8월 7일까지 화천군 붕어섬 일원에서 ‘물의 나라 화천 쪽배축제’가 열리는데, 개막 퍼레이드와 개막 공연 때 쓸 인형들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식사 후 문화공간예술텃밭으로 자리를 옮겨 김민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2010년, 서울에서 화천으로 이주하다

▲ 문화공간예술텃밭 실내공연장에서 ‘물의 나라 화천 쪽배축제’ 개막 퍼레이드와 공연에 사용할 인형 등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을 배운 이들이 주축이 돼 2001년 창단한 극단 ‘뛰다’가 이곳으로 이주한 때는 2010년이다. 화천군의 지원으로 폐교 후 오랫동안 방치된 공간을 고쳐 지금의 문화공간예술텃밭을 만들었다.

“2010년 6월 1일에 왔는데 처음에 땅을 파면 콘크리트랑 깨진 유리조각 등이 엄청 많이 나왔다. 녹슨 못이나 철사에 찔려 병원에 가 파상풍 예방주사를 맞기도 했다. 두 달 내내 노동을 했다. 증개축 비용이 1억원 필요했는데 5000만원은 화천군에서 지원했고, 5000만원은 우리가 마련했다. 그런데 공사를 하다 보니 비용이 2000만원 초과했다. 별수 없이 몸으로 때웠다”

고생을 예상했을 텐데, 서울을 떠나 시골로 온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1993년)는 극단이 여러 개 있었고, 그 중엔 큰 극단도 몇 개 존재했다. 큰 극단의 배우를 하려면 그 극단에 들어가 짐을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고, 단계를 거쳐 배우로 성장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 그런 연극계의 틀이 깨졌다. 연극계는 원래 자본이 잘 굴러가는 곳이 아니다.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기획자가 양성됐다. 저처럼 연기를 못하면 ‘너 기획해라’고 했고, 그때 기획자는 전문성이 없는 심부름꾼에 가까웠다. 2000년대에 뮤지컬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뮤지컬이 돈이 되니, 연극계로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극배우 중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이 뮤지컬배우가 됐다. 그 영향이 다른 배우들한테도 미치면서 굳이 한 극단에 오래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로 인해 극단들이 힘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옛날부터 유명했던 극단 이름만 남아있고, 그 극단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소속 배우는 사라졌다. 이는 극단 고유의 색깔을 찾아볼 수 없게 했다”

‘뛰다’는 소속 배우가 있는, 고유의 색깔을 간직한 극단을 유지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자본의 영향력에서 조금 벗어나기로 했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을 택한 것이다.

‘뛰다’는 창단 이후 지금까지 배우의 몸과 소리를 탐구하고, 광대와 오브제 연기를 연구하고,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연극을 실험하고 있다.

마을 주민 속으로 들어가다

보통 시골엔 텃새가 심하다고 하는데, 이들이 정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이곳에 오자마자 마을 주민들에게 잘 했다. 아까 마을식당에서 본 결혼사진들도 우리가 2012년에 기획해 촬영해드린 거다. 그 전 해에는 사진작가를 불러 영정사진을 찍어 액자로 선물했다. 바로 그해 겨울에 김장김치를 드럼통으로 가져다주시더라. 제철마다 호박과 오이 등은 물론이고. 제가 마을회 사무장인데, 마을회에서 쓴 돈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젊은 사람이 오면 그것부터 하라고 시키는 거다.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주민들을 인터뷰해봤는데 한국전쟁 이후에 결혼한 분들의 집에 가서 보니 손자랑 자식이랑 찍은 가족사진은 있는데, 본인들 사진은 없었다. 그래서 웨딩드레스를 의상디자이너한테 빌리고 사진작가 불러다 사진을 찍어드렸다. 그 때까지도 그게 뭔지 잘 모르고 재밌으니까 했다. 몇 년 후에 한 주민이 ‘웨딩드레스 한 번 못 입어보고 죽는 게 한이었는데, 너희는 진짜 좋은 일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연극을 보여준다고 얼마나 좋아하시겠나. 결혼사진을 찍어 집에 보내드린 게 가장 잘했던 일인 것 같다”

‘뛰다’는 마을회와 함께 2012년엔 행정안전부가 진행한 생태마을 조성 사업 공모에 참여했다.

“도서지역이나 산간지역 마을을 지원하는 사업인데, 그런 마을 중에 예술단체가 있는 마을이 우리 마을밖에 없으니까 선정돼 지원금이 나와 야외무대와 실내공연장, 펜션과 같은 공간을 구축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진흙탕이 돼버리는 마당에 흙과 마사를 깔고 배수로도 만들었다. 공간 이름을 ‘문화공간예술텃밭’으로 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경제적으론 서울보다 더 좋아져

▲ 강원도 화천의 ‘문화공간예술텃밭’.
화천 이주를 기점으로 극단 ‘뛰다’를 그만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함께 왔다. 2년 정도 지나 ‘시골에서 사는 게 도저히 아니다’ 해서 떠난 사람도 있고, 또 그 사이에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평균 15명 정도가 함께하고 있다. 구성원이 적지 않은데, 경제적으로 생활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여기 와서 더 좋아진 부분이 있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월급이 더 올랐다. 140명 정도가 출연한 대형 프로젝트도 했고, 지역 축제도 맡아 할 수 있었고, 국제 교류로 작품 창작도 하면서 자금을 만들었다”

물론 공공기금 지원 사업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역 문화재단에 기금을 뿌려주고, 지역 문화재단은 그 기금에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더해 예술단체에 지원해주는, 그런 지원금이 있다. 우리가 서울에 있으면서 실력 있는 단체로 인정을 받고 있을 때 이곳에 내려오니까, 처음엔 지역 예술단체들이 견제했다. 그런데 몇 년 지나 우리가 다른 단체들이 하기 어려운 활동들을 하니까 평가 받을 때 점수를 높게 받았다. 우리는 국제교류로 공동창작을 하는데, 그런 단체가 거의 없다. 재단에선 그런 항목들을 평가기준으로 삼는데, 우리는 그런 자료를 제출하면 되니, 기금을 지원받는 것에서 서울보다는 수월해진 부분이 있다. 그리고 타 지역 또는 해외공연을 하는 데도 서울에 있을 때와 별 차이가 없다. 강원도에 있다고 해서 타 지역에서 부르는 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벌고,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도 서울보다는 적으니, 소득이 더 올라갔다”

화천에는 문화예술회관이 있는데, 극단 ‘뛰다’는 이 문화예술회관의 상주단체(공연장 상주단체 육성 지원 사업)로 3년 정도 있었다. 올해부턴 ‘문화공간예술텃밭’에서 이 지원 사업을 수행한다. ‘문화공간예술텃밭’이 화천군 소유이기에 공공극장에 속한다. 극단 ‘뛰다’는 이곳에 들어올 때 화천군과 10년 무상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문화공간예술텃밭’의 수입구조를 보면, 수입원은 공공기금과 공연료다. 기금이 약 80% 차지한다. 공연료도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예산이니 기금으로 봐야한다. 지출구조를 보면, 수익이 생기면 다 모아가지고 분배한다. 월 고정 급여가 있다. 대부분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인데 아주 조금씩 올리고 있다. 4대 보험 모두 보장한다. 문화공간예술텃밭은 공간 사업자, ‘뛰다’는 극단 사업자로 등록돼있다.

예술교육 사업은 또 하나의 축

이 단체는 공연뿐 아니라 예술교육도 한다. 예술교육은 지역 청소년과 주민을 대상으로 한다.

“처음에는 극단 ‘뛰다’로 왔다. 이곳 공간이 넓고 지역에서 욕구도 있어 교육사업도 했다. 필요한 예산을 따와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화천군 안에서 교육사업은 기금 없이는 사실 불가능하다. ‘뜀뛰기’라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2011년부터 진행했다. 연극동아리로 시작해 중간에 한 2년은 기금 없이 무료로 수업했고, 여기저기서 예산 구해서 운영하고, 올해는 ‘꿈다락’으로 강원도 기획 사업으로 진행한다. ‘친구 그리고 평화’라는 제목으로 신청했다. 교류하고 있는 일본 극단과 협력해 거기 청소년과 우리 청소년의 공동캠프를 한다. 소재는 식민지배와 태평양전쟁이다. 일본 청소년들이 8월에 화천에 와 우리 청소년들하고 캠프를 연다. 작품을 만들어 공연한다. 이어서 11월엔 일본 도토리현에서 열리는 축제에 우리 청소년들이 가 공연한다”

김 대표의 말은 더 이어졌다.

“그런데 교육사업도 하다 보니 구성원 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연극배우 입장에선 교육사업을 가치 없는 일로 느낄 수 있다. 본인은 힘들게 갈고닦아 연기하고 있는데, 교육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데 그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분야를 나눴다. ‘뛰다’는 창작팀으로 작품을 창작하고 공연하는 팀이고, ‘이랑’은 예술교육을 하고 예술교육 관련 공연을 제작한다.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공연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그다음에 ‘텃밭’이라고 기획팀이 있다. 기획팀은 마을 일을 하거나 행정기관, 군부대와 연관한 일을 맡는다. 이 ‘문화공간예술텃밭’ 안에 세 개 팀이 있는 것이다”

김 대표에게 화천으로 이주한 후 성과도 물었다.

“여기에 터를 잡은 지 6년차인데, 6년간 미래를 준비했다는 것이 성과다. 6년간 여기 있으면서 여기서 존재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작업하면서 다른 단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노하우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인형이라든지 오브제라든지 그런 메소드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해왔기에 ‘뛰다’의 공연을 보면 ‘뛰다’만의 무엇이 분명히 있다라고 인정받는 것 같다”

김 대표는 기초예술분야 지원 정책에 대한 의견도 밝혔는데, 지면 관계상 이 기획연재의 마지막에 함께 다룰 예정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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