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고교의 대안교육 이야기②

<편집자 주> 인천 최초의 인가 대안고등학교인 청담고교(교장 김경언)의 대안교육 이야기를 월 1회 연재합니다.

▲ 고가영(3학년) 학생
3학년 첫 등교를 청담고등학교에서 했다. 편입이라는 특별한 선택을 한 결과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춤을 춰왔고, 진로 또한 춤에 관련한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해 서울 소재 예술고교로 진학했다. 예고를 다니면서 처음 1년은 정말 재밌고 좋았다.

학교에 가면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춤을 출 수 있고 시간 제약 없이 얼마든지 연습을 할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나와 공통점을 가진 친구가 많기에 소통도 잘됐다.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친구들이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만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춤을 추는 것도 재미가 없어지고 뭘 해도 잘 안 되고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학교에 가기 점점 싫어졌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많이 빠졌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모님과 심하게 다투는 일이었다.

그렇게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부모님과 나는 춤을 정말 그만둘 것인지, 그렇다면 학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이야기했고, 춤을 전공이 아닌 취미로만 하고 예고가 아닌 다른 학교로 편입하기로 결정했다.

그 뒤 이곳저곳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인천청담고교라는 대안학교가 눈에 띄었다. 많은 학교를 알아봤는데도 이런 저런 조건이 맞지 않아 ‘예고를 계속 다녀야하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청담고교는 내가 갈 수 있고 나에게 맞는 학교였다. 그래서 면접을 봐 편입한 것이다.

편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대안학교에 대한 내 선입견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청담고고에 다닌다는 걸 알리기 싫었다. 그런데 다니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학교에 다닌다는 걸 자랑스러워했고, 예고 친구들한테도 자랑했다.

청담고교에 와서 좋은 건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전에 다닌 예고에서는 교과 수업과 전공 실기 수업으로만 나뉘어있었는데, 청담고교에서는 특별한 활동을 많이 했다.

금요일마다 ‘활력 비타민’이라는 수업이 있는데, 매달 첫째 주는 공동체의 날, 둘째 주는 진로의 날, 셋째 주는 테마의 날, 넷째 주는 활동의 날로 구성돼있다.

이밖에도 캠프가 특화돼있다. 가족캠프ㆍ학년별 캠프ㆍ인권캠프ㆍ수학여행ㆍ졸업캠프 등, 여러 캠프에서 학교서 배우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한다.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캠프는 가족캠프다. 가족캠프는 가족들이 모여 운동회처럼 게임을 하고 노래와 요리 경연도 하며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는 캠프다.

난 가족캠프를 가기 전까지만 해도 가족캠프가 굉장히 부담스럽고 가기 싫었다. 가족캠프에서 가장 먼저 한 활동은 팀별 사진 콘테스트였다. 몇 가족이 모여 팀을 구성했는데, 그 팀끼리 정해진 포즈로 사진을 찍어 제출하는 것이다. 첫 활동이라 그런지 어색하기만 했다.

점심을 먹은 후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오늘 진행할 행사의 일정을 전달받은 후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미니게임이었다. 첫 미니게임은 팀마다 폐활량이 가장 좋은 팀원을 선발해 콜라를 빨대로 가장 빨리 마시는 게임이었다. 콜라를 마시다 트림을 참지 못하고 내뱉는 사람도 있었고, 콜라의 탄산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두 번째는 팀마다 아버지 한 명을 선발해 식혜와 소금식혜를 무작위로 골라 마시게 한 뒤, 진짜 소금식혜를 마신 사람을 찾는 게임이었다. 겉보기에는 그냥 식혜로 보이는 잔을 들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마셨기에, 누가 소금식혜를 마셨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소금식혜를 마셨다. 그냥 식혜는 없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며 소금식혜를 마신 아버지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론 참 짓궂다는 생각도 했다.

▲ 가족캠프에서 사진콘테스트를 위해 촬영 중인 청담고교 학생과 가족들.
세 번째는 초코파이를 빨리 먹고 휘파람을 부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에는 각 팀에서 가장 내성적인 여학생이 나왔는데, 우리 팀에선 내가 나갔다. 내가 앞으로 나가자, 친구들은 “왜 내성적이지 않은 네가 나오느냐?”고 항의했다. 하지만 “우리 팀에는 여자가 나뿐이야”라고 하니, 모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긍했다.

여학생들은 대게 휘파람을 불 줄 몰라, 초코파이를 다 먹은 후 선생님에게 입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게임규칙을 바꿨다. 나는 열심히 먹은 후 선생님에게 입 속을 보여줬는데, 선생님은 ‘앞니에 초코가 묻어있다’며 다시 하라고 했다. ‘그 정도는 봐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팀을 위해 다시 입 속을 비웠고, 결국 3등을 차지했다.

네 번째는 각 팀의 엄마들이 구구단을 맞추며 돈을 세는 게임이었다. 진행자인 선생님이 ‘이 게임에 사용하는 돈은 거짓 없이 내 사비이니 제발 소중하게 다루고 몰래 빼 가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해,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렇게 게임을 시작하고 난 뒤 어떤 엄마는 구구단을 무시한 채 돈만 열심히 셌고, 어떤 엄마는 구구단 답은 계속 잘 맞추는데 돈은 처음부터 다시 세기도 했다. 또 어떤 엄마는 돈을 처음부터 다시 세기를 반복하고 구구단 답도 계속 틀렸다. 게임들 중 이 게임이 가장 재밌고 웃겼다.

이렇게 모든 미니게임을 끝낸 후 옆 장소로 자리를 옮겨 이번엔 포스트 게임을 진행했다. 포스트 게임은 게임 여덟 가지를 팀원들이 돌아다니며 수행해나가는 게임이다. 단어 맞추기, 방과 방 사이, 왕제기, 단체줄넘기, 파이프 홀인원, 야구 후크 볼, 탁구공 릴레이, 공굴리기가 있었다. 나는 단체줄넘기가 가장 재미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경품을 받고 휴식시간엔 졸업생 선배들이 노래경연대회를 진행했다. 부부조합, 학생과 부모 조합, 학생과 조부모 조합으로 팀을 구성해 노래를 불러 85점 이상이 나오면 코인볼을 주고, 우승자에겐 경품으로 자전거를 줬다.

노래방은 늘 친구들끼리만 가서 어른들의 노래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캠프에서는 다양한 어른들의 노래를 들었다. 신기하면서도 나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전거는 할아버지와 함께 ‘안동역에서’를 열창한 1학년 학생에게 돌아갔다. 나는 다른 가족의 조카아이와 함께 노느라 이 경연에 참가하지 못했다.

다음 게임으로 ‘우리 부모가 확실합니다’를 진행했다. 부모들이 사전에 자신의 자녀에게 쓴 편지를 학교에 전달했는데, 그 편지 내용이 자신의 얘기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무대 앞으로 나가 그동안 부모와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마음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부모님들의 편지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편지라고 생각한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나와 눈물을 흘렸다.

굉장히 싫어할 법도 했지만 의외로 사연의 주인공은 차분히 받아들였다. 나도 이런 저런 사연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했다. 한 학생은 지금까지 너무 사고만 쳐서 죄송하고, 앞으로 진심으로 효도하겠다며 어머니를 꽉 끌어안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떤 편지 사연을 듣다가 ‘아, 나와 같은 고민으로 힘들었던 친구가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듣다보니 내 엄마 편지 같았다. 엄마가 썼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난 무대 앞으로 나갔다.

엄마가 그렇게 반대한 예고에 입학했고, 그것도 끝까지 버티지 못했는데, 그런 나를 이해해준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청담고교에 보내준 것에도 감사했다. 내 꿈을 이뤄 엄마에게 꼭 효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누구나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최근 유행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도 있지만, 이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어른들은 우리를 향해 ‘문제야, 문제’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평소에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있긴 하지만, 가끔은 이런 진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고 좋았다. 이런 진심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음식 만들기 콘테스트를 진행했다. 우리 팀은 김치전을 만들었는데 원래 집에서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 만드는 과정이 힘들진 않았지만, 날씨가 너무 더운데 불 앞에서 요리하려니 쉽지 않았다. 팀마다 만든 음식을 야외 농구장 중앙에 뷔페처럼 차려놓고 모든 참가자가 접시에 담아가 먹었다. 그동안 등수를 매겼다. 우리 팀은 아쉽게도 좋은 등수에 오르지 못했지만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처음에 가족캠프를 한다며 가족과 함께 오라고 했을 때는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었다. 가족과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것이 좀 어색하고 불편했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대다수 학생도 그러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아빠, 엄마와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과 행복했던 추억의 장면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가족캠프를 하고 나서 마음이 많이 달라졌다. 엄마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점점 늙어가는 부모님에게 행복한 장면 하나를 남겨줬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또한 가족과 함께한다는 것이 즐겁다는 것도 알았다. 학교는 가르치는 것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을 깨닫는 곳이라는 것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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