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행정심판위, “연수구 위법”
연수구, “조건 충족해야 건축허가”

가스공사 ‘세 번째 행정심판’ 8월 말로 연기

한국가스공사가 송도 LNG생산기지 증설 건축허가를 반려해온 연수구(구청장 이재호)를 상대로 제기한 세 번째 행정심판이 연기됐다.

인천시(시장 유정복)는 지난 25일 열린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안건 ‘건축허가 의무이행 심판 인용 재결 이행 신청’을 다음 위원회 때 다시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 위원회는 8월 29일 열릴 예정이다.

송도 LNG생산기지 증설 사업은 연수구 송도동 348번지 일원(25만 5353.4㎡)에 20만㎘ 규모의 LNG 저장탱크 3기와 기화송출설비, 변전소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계획안이 2014년 8월 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연수구는 건축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LNG 저장탱크 건축허가 신청과 공작물 축조 신고를 연수구가 반려하자, 가스공사는 지난 4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그 이후 두 번에 걸친 행정심판에서 시 행정심판위원회는 연수구에 행정행위를 이행하라고 판결했으나, 연수구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4월에 열린 첫 행정심판 때 시 행정심판위원회는 ‘주민의견 수렴 보완을 이유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은 연수구의 행정행위는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연수구는 ‘승인’이나 ‘불허’ 대신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이에 가스공사는 지난 6월 9일 시에 ‘LNG생산기지 증설 관련 건축허가 의무이행 청구’ 행정심판을 다시 청구했다. 시 행정심판위원회는 ‘보류는 위법하다’고 판결했지만, 연수구는 다시 ‘심의 무기한 연기’를 선택했다.

가스공사는 다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시 행정심판위원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연수구가 심의를 보류하거나 무기한 연기하자, 이번 행정심판위원회 때는 시가 연수구를 건너뛰어 직권 처분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시는 결론을 내지 않고 다음으로 연기했다. 시 행점심판위원회 판결로 행정행위를 강제할 수는 없는 데다, 행정심판위원회가 나서서 건축허가를 직접 처리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이재호 구청장은 물론 연수구민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시가 직권 처분할 경우, ‘유정복 시장이 자치구의 행정권한과 주민여론을 강제로 진압했다’는 정치적 부담을 떠안아야하는 상황도 부담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호 구청장, “조건 충족할 때까지 불허”

▲ 연수구 송도에 있는 한국가스공사 인천생산기지.
송도 LNG생산기지 증설 사업은 수도권매립지 사용기간 연장, 영흥화력발전소 증설과 함께 정부의 대표적인 ‘인천 홀대’ 정책으로 지목된 현안이다.

시는 행정심판위원회를 열어 국책 사업이라며 연수구를 압박하고 있지만, 이재호 구청장의 입장은 단호하다. 가스공사가 지난 2014년 8월 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조건부 허가를 받을 때의 그 조건을 충족해야 건축을 허가할 수 있다는 게 이재호 구청장의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1992년 송도 LNG생산기지를 건설할 때 10만㎘ 규모의 LNG 저장탱크 3기만을 건설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10만㎘급 탱크 10기, 14만㎘급 탱크 2기, 20만㎘급 탱크 8기가 가동 중이다. 여기다 20만㎘급 저장탱크 3기를 증설하겠다는 것이다.

3기를 증설할 경우 송도 LNG생산기지의 LNG 저장 규모는 288만㎘에서 348만㎘로 늘어, 세계 최대 규모가 된다. 송도국제도시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위험시설을 증설하는 것을 주민들은 반대하는 것이다.

게다가 2005년에 LNG 저장탱크 20기 중 4기에서 발생한 가스누출 사고가 2007년이 돼서야 세상에 알려져, 위험성이 크게 부각했다. 당시 가스누출 사고는 탱크 천장의 균열이 아니라 LNG 유입 파이프와 저장탱크 사이에 하자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컸다.

특히, 연수구민들은 가스공사가 이 사고를 숨겨왔다는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가스공사는 2005년 9월에 가스누출을 발견하고, 이를 2006년 2월에 감사원에 보고했다. 그 뒤 같은 해 9월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다음 해인 2007년 2월, 사고 발생 후 1년 반이 지나 공개됐다.

그 뒤 LNG생산기지의 안전성과 증설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그치질 않았다. 2014년 지방선거 때도 쟁점이었고, 유정복 시장은 당시 ‘합리적 해결’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시는 2014년 8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LNG생산기지 4지구 건설 사업을 위한 개발행위(토지 형질 변경) 허가안’을 조건부 승인했다.

이 조건부 승인의 골자는 기존 안전성 평가 용역 결과보다 강화한 안전기준 적용,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라 LNG생산기지 주변지역 충분한 보상, 지역주민 의견수렴 등이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축을 허가할 수 없다는 게 이재호 구청장의 의사다.

이재호 구청장은 “연수구의 건축허가는 마지막 행정절차다. 사실 명확한 기준도 근거도 없는 애매모호한 조건을 내걸고 시가 승인해줬다. 연수구에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 뒤 “시 행정심판위원회가 가스공사에 ‘의견수렴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라’고 한 것 자체가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 연수구에 위법하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재호 구청장은 또, “1992년 3기에 불과했던 저장탱크는 20기로 늘어났고, (LNG생산기지에서 송도국제도시까지의) 거리도 이젠 2㎞에 불과하다.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과연 안전한가? 주민들이 납득할 만한 안전기준을 제시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며, 조건을 충족하기 전까지 허가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인천시 스스로 시민권리 귀하게 여겨야”

송도 LNG생산기지에서 인천과 서울ㆍ경기에 송출하는 LNG 양은 연간(2013년 기준) 각각 881만 6000톤(62.7%)과 525만 5000톤(37.7%)이다. 인천에 송출하는 LNG의 86%는 발전소 발전용으로 사용된다.

즉, 인천시민이 사용하는 LNG 양은 연간 123만 4240톤으로 전체 송출량의 8.8%에 불과하다. 게다가 인천에서 생산하는 전기 중 20% 정도만을 인천시민이 사용한다. 하지만 도시가스 단가를 비교해보면, 인천시민은 서울시민에 비해 더 비싼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위험시설을 껴안고 있으면서도 합당한 대우를 못 받는 것이다.

아울러 인천시민은 팔당댐의 수돗물을 서울시민보다 비싸게 사용하고 있다. 인천에 강이 없다보니 수돗물 원수를 사와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싸다.

같은 공공재인 전기와 가스의 경우 통합채산제로 운영하다보니 인천에서 생산하더라도 사용료가 서울과 경기와 큰 차이가 없는데, 수돗물의 경우 인천은 원수장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광호 인천평화복지연대 사무처장은 “인천이 언제까지 변방 취급과 홀대를 받아야하나? LNG생산기지 증설 논란은 인천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자, 인천시민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다루는 문제다. 인천시 스스로 인천과 인천시민의 권리를 귀하게 여겨야한다”고 강조했다.

송도 LNG생산기지 증설 논란은 이제 주민 안전 대책과 보상을 둘러싼 가스공사와 연수구의 갈등에서 시와 연수구의 갈등으로 대체됐다. 시가 행정심판위원회를 열어 연수구를 압박했지만, 이재호 구청장이 끝까지 거부하면서 유정복 시장은 난처해지고 말았다.

사실 지난 2014년 8월 시 도시계획위원회가 ‘개발행위 허가안’을 조건부 승인할 때, 시는 LNG생산기지 증설을 이미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조건부 승인 후 남은 행정절차는 연수구의 건축허가다.

그런데 이재호 구청장은 2014년 지방선거 때 당선되기 전에 인천시의회 의원을 지내며 ‘송도 LNG생산기지 안전 협의체’ 위원장을 맡았다. 또 가스누출 사고 때는 시의회 ‘송도 LNG생산기지 가스누출 사고 관련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이 구청장이 건축허가를 내주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광호 사무처장은 “정부를 상대로 인천 홀대에 항의하고, 산업통상자원부나 가스공사에 보다 무거운 책임과 안전대책, 보상 등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구청장보다 시장이다. 그런데 시 스스로 2014년에 빗장을 풀어줬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사무처장은 “정부와 시가 밀어붙이면 연수구청장은 끝까지 반대하다 장렬히 전사한 구청장으로 남을 수 있다. 연수구청장은 정치인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고, 시장은 행정가의 한계에 갇힌 모습이다. 결국 시가 연수구에 떠넘긴 폭탄이 다시 시로 넘어온 형국이다.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 논란에 이어 유 시장의 정치력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