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회의원들 ‘만년필 구입 사건’

▲ 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지난 2009년 독일에서는 ‘국회의원들의 몽블랑 만년필 과다 구입’이 논란이었다. 국회의원 115명이 임기 말에 만년필 396개를 구입했는데, 약 6만 8800유로,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8950만원가량이다. 논란의 요지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년필을 구입한 국회의원들의 비도덕적 행태가 정치적 신뢰를 파괴한 것으로 평가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3월 독일 연방행정법원은 이들의 명단 공개 여부를 판시했는데, 판결문을 보면 ‘대중들이 갖고 있는 정보의 관심보다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결정이었다.

이른바 ‘만년필 사건’에서 독일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는데, 먼저 만년필 구입 하나로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신뢰를 물을 만큼 공과 사가 구분됨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선 만년필 구입이 뭐 그리 큰 잘못인가,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논란의 핵심은, 만년필의 가격이 아닌 공직자의 정치ㆍ도덕적 자질에 있다. 최소한의 부정부패를 용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 연방 대통령이 휴가 기간에 기업인 친구한테서 호텔 이용을 제공받은 게 논란이 되고, 연방 장관들이 업무용 차량을 타고 휴가를 갔다가 국회에서 문책을 당한 일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연방행정법원이 만년필 구입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보다 이들의 정치적 신뢰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번 사건의 경과가 유사한 해프닝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또, 만년필 구입에 대한 대중들의 일회성 헐뜯기나 웃음거리의 제공은, 굳이 법원이 의도하는 처벌이 긍정적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미 독일 사회에 형성된 부정부패에 대한 보편적 양식과 판단 능력을 신뢰하고 있으며, 만년필 구입 의원들의 명단 공개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김영란법’ 논란과 한국사회의 윤리

이 만년필 사건이 독일의 사회적 윤리상을 엿보게 한다면, 한국 사회의 윤리와,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어떠한가?

요즘 한국은 9월부터 시행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2013년 국회에 제출된 ‘김영란법’은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더욱 화제가 됐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국민 담화에서 ‘전ㆍ현직 관료들의 유착 고리를 끊기 위한 부정청탁 금지법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국회는 여론에 밀려 지난해 3월 관련 법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법률 시행 2개월을 앞둔 지금, 정부와 국회는 물론 언론과 민간단체들이 이 법률의 시행을 방해하고 있다.

이들의 방해 논리는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의 제한이 내수경제 위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공직자 반부패 법안이 언론인과 교직원에 대한 규제까지 포함하고 있고, 오히려 정치인의 예외 조항은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근절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언론은 요식업계의 치명적 타격과 농ㆍ수ㆍ축산물 업계의 불황을 연일 보도하고 있고, 심지어 이 법률의 위헌 여부까지 언급하고 있다.

외식업중앙회나 자영업자총연대로 불리는 민간단체들은 관련 법률 시행 저지를 위한 성명 발표와 거리시위를 하고 있다. 아울러 각 정당은 이러한 볼멘소리에 발맞춰 법률 개정을 제기하는데, 언론인과 교직원은 제외하고 대신 국회의원을 넣자는 주장에서 3만ㆍ5만ㆍ10만원을 내수경제를 고려한 액수로 증액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부정부패로 인한 피해액 산출
능력도 의지도 없는 한국사회

독일에서는 1997년에 공무원 반부패법이 제정됐는데,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공직자의 뇌물 수수와 특혜 시비가 잦았고, 부패로 인해 매해 약 200억 마르크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실제로 1960년대 이후, 뮌헨의 하수도 건설에서 카르텔 결성이 묵인돼 시장가격보다 약 30% 높게 가격이 형성됐는데, 뮌헨시가 약 2억 5000만에서 7억 5000만 마르크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국민들의 행정 불신, 공직자 불신으로 심화됐고, 각 주정부에서는 이러한 부패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공무원과 기업 간 결탁으로 부지 매입이나 계약 수주에서 뇌물수수를 넘어 배임이나 문서위조가 증가했고, 이러한 사회적 환경은 독일과 유럽연합 차원에서 반부패법 제정 논의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지금 ‘김영란법’ 시행에서 증폭되는 논란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게 한다. 세월호 참사와 4대강 사업의 환경파괴가 전체 사회에 가져다준 혼란과 피해를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김영란법’과 같은 반부패법이 왜 필요한지, 어느 누구도 직설하지 않고 있다. 공교육이 무너져도 사교육시장의 침체를 논리화했고, 조폭들의 막대한 지하경제가 자명해도 외면했다. 마치 마약시장에 정부가 소극적이며, 무기시장에서 전쟁을 외면하는 논리와 같다.

부정부패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는 국가마다 상이하다. 부정부패가 전체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으로 가하는 피해가 얼마인지 산출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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