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팝페라 가수 문지훈씨

“공연장에 가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VIP석에 앉잖아요. 좋은 좌석은 부자들만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돈이 없어도 고급스런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문화소외계층이 경험하게 하고 싶어 초대했습니다”

광주광역시에서 나고 자란 팝페라 가수 문지훈(27)씨는 열일곱에 인천으로 와 10년째 살고 있다. 제2의 고향인 인천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펼쳤다. 오는 12일을 시작으로 네 차례 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문씨를 지난 6일 남동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공연을 혼자서 준비하느라 바빠 보여 인터뷰를 짧게 하려했으나 그의 얘기를 듣다보니 계속 묻고 싶은 게 생겨 예상시간보다 길어졌다.

음악이 주는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싶어

▲ 팝페라 가수 문지훈씨.
이번 공연 제목은 ‘파리넬리에게 가요를 듣는다’이다. 제목을 이렇게 지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팝페라는 오페라와 팝이 섞인 크로스오버음악(=어떤 장르에 이질적인 다른 장르의 요소를 합해 만든 음악)이잖아요. 가요를 성악가가 부르면 기존 가요와 달라요. 그런데 저는 ‘가요는 가요답게, 성악은 성악답게, 팝은 팝답게 불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보여주고 싶어요”

문씨는 카운터테너다. 카운터테너란 가성(假聲)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을 구사하는 남성 성악가를 말하는데 여자 음역인 알토나 메조소프라노 음역을 노래할 수 있다. 여성 음역대인 소프라노를 부를 수 있는 카운터테너는 세계에 많지 않다. 그 중 한 명이 문씨다.

“전 세계적으로 20여명밖에 없다고 해요. 전문가들이 제 고음이 정말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선택받은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저는 노력하면 누구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느 정도인지를 궁금해 하자, 문씨는 휴대폰에 담긴 자신의 공연 장면을 보여줬다. 오페라에 문외한이지만 소리가 곱고 시원했다.

몇 년 전 제라르 꼬르비오 감독의 영화 ‘파리넬리’가 개봉됐다. 18세기에 큰 인기를 누렸던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 파리넬리를 영화한 것이다. 파리넬리는 까를로 브로스키라는 한 카스트라토(=변성기가 되기 전에 거세해 소년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남자 가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인데 파리넬리는 그의 예명이다.

영화 ‘파리넬리’에는 주인공이 ‘울게 하소서’라는 곡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컴퓨터 합성이다. 문씨는 올해 1월 <SBS>의 ‘스타킹’에 출연해 영화의 장면과 비교해 이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에게 음악이 주는 희망과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그 기운을 받은 사람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리라는 마음에서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문씨가 준비하고 있는 공연은 여러 노래와 함께 토크쇼를 진행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꿈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전하고 싶단다.

축구선수였던 한국의 파리넬리, 음악으로 인생을 승화하다

문씨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축구선수였다. 그런데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무리한 나머지 꼬리뼈가 닳았다.

“그때는 잠도 자지 않고 공을 찰 정도였어요. 의사가 ‘몸을 너무 혹사시켜 운동을 계속하면 못 걷거나 불구가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볼보이로 시작해 축구 유망주까지 올랐는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 후 2년간 방황하다 광주에서 소녀합창단을 지휘했던 음악교사를 만나 음악에 심취했다. 그러나 집안 사정으로 열일곱에 인천에 왔고, 방황하며 1년을 휴학해 또래보다 한 학년 늦은 나이로 청학중학교 3학년으로 전학했다.

광주에서 한 경험으로 음악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레슨을 포기했다. 그런데 전국장학학생콩쿠르에 참가해 3위에 올랐다. 당시 예술고교를 준비하던 학생들이 많았는데 레슨 한 번 받지 않은 문씨가 상을 탄 것이다.

“내 실력이 이 정도였나, 저도 깜짝 놀랐어요. 학교 축제 때도 ‘울게 하소서’라는 곡을 불러 ‘우리 동네’ 스타가 됐죠. 학생뿐만 아니라 교장 선생님도 제 노래를 좋아했고, 동네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제 ‘싸이월드’에 하루 300명 이상 방문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문씨는 예고에 진학할 수 없었다. 예고는 내신이 중요했는데 운동을 하고 방황하느라 성적이 안 좋아 공고를 선택했고, 음악을 하고 싶어도 한동안 기회가 없었다. 고교 3학년 때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 성가대 단원의 도움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고(古)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대건챔버콰이어’를 만났고, 음대에 진학해 드디어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울 수 있었다.

김연아가 용기 줘, 시각장애 고백할 수 있어

▲ ‘연아 합창단’에서 활동하며 김연아 선수와 다정한 한 컷.
예중ㆍ예고를 다닌 친구들보다 많이 늦어 조바심이 난 문씨는 연습을 더 하려했다. 그러나 노래를 부를수록 눈이 아팠다.

“고교 3학년 때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왼쪽 눈의 시력이 측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원추각막증이라는 희소병인데 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오른쪽 눈도 실명할 수도 있대요”

충격이었다. 문씨는 고음을 내야 하는데 그럴수록 눈에 열과 압력이 높아져 오른쪽 눈까지 위험했다. 그러나 노래를 멈출 수는 없었다.

“정말 힘들 때 친구가 돼주고 살아가는 힘을 준 게 음악이었어요. 나를 살게 해준 탈출구였고 상처를 치유하게 한 것도 음악이라 포기할 수 없었어요. 축구는 포기했지만 음악은 포기하지 않기로 작정했죠”

그러나 사람들한테 말할 수는 없었다. 불편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도, 남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싫어서였다. 눈에 좋다는 건 다 먹고 여러 종류의 약도 챙겨먹고 햇빛을 보지 않으려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기도 했다. 스스로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극복하려 했다. 물론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 편할 수도 있고 남들이 보기엔 멍청한 짓일 수도 있겠지만 혼자 이겨내고 싶었다. 그러다 지난해 처음으로 말할 용기가 생겼다.

“작년에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대국민합창을 했는데 20대 청춘으로 구성된 ‘연아합창단’과 여야 정치인들과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로 구성된 ‘아침합창단’ 등, 합창단 몇 개가 있었어요. 저는 연아합창단 모집에 참가해 뽑혔어요. 동갑이기도 한 김연아 선수를 어릴 때부터 좋아해 팬클럽에도 가입하고 김연아 선수 경기를 보러 학교도 결석한 적이 있었죠. 김연아 선수 앞에서 ‘카르멘’에 나오는 노래를 불렀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라고 하면서 저를 알아봐 주더라고요. 연습을 하면서 가까이 있을 기회가 많았는데 자신이 선수생활을 하면서 어려웠던 경험을 얘기해주고 사람들한테 용기를 많이 줬어요. 그때 ‘내 눈이 안 보인다’고 솔직히 고백했는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더라고요”

그 후 여러 방송에서 연락이 와 TV에 출연했고 나름 유명해졌다. 첫 출연이 <KBS>의 케이블 방송인 <KBSN>에서 진행한 ‘청춘하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시각장애를 공식적으로 처음 고백했다. 힘들었던 순간이 떠올라 방송에서 많이 울었다. 문씨는 “김연아 선수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고백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규모 도시 돌며 전국 콘서트 이어갈 수 있길

▲ 지난해 11월 ‘아침마당’에 출연해 장애를 극복하고 노래를 부른 사연을 말했다.
문씨는 아리랑TVㆍ복지TVㆍKTV 등에도 출연했다. 지난해 11월 <KBS>의 ‘아침마당’에 출연하고 나서는 지역 공연을 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올해 1월엔 <SBS>의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스타킹’에 나온 후로는 아리랑TV에서 ‘나는 대한민국 20대다’라는 공익캠페인의 주인공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참여했는데, 현재 그 캠페인 광고가 나오고 있다.

“제 프로필이 독특하잖아요. 유학을 다녀온 것도, 음악을 제대로 공부한 것도 아니고 장애까지 있으니 사람들이 좋게 봐주시는 거 같아요. 다른 지역에서 공연하면 극빈 대접을 해 주기도 하고 기획사나 관공서의 협조로 매진될 때가 많아요. 제가 사는 인천에서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이번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한 인천 공연의 성적은 부진했다. 지난해 8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행복나눔 콘서트’를 열었는데 관객이 20여명뿐이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이번 공연은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곡으로 기획했다. 영화나 드라마 OST, 귀에 익은 팝송이나 가요들을 들려줄 계획이다. 이 공연 전체를 <EBS>와 복지TV에서 촬영한다.

오는 12일(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 오후 7시 30분), 23일(인천학생문화회관 싸리재홀, 오후 5시 30분), 29일(인천중구문화회관 공연장, 오후 7시 30분), 8월 6일(인천서구문화회관 대공연장 오후 3시)에 공연하며, 관람료는 모두 없다. 이 공연은 지역 협력형 공연 사업으로 선정돼 인천시, 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이번 콘서트가 끝나면 5만명 이하의 소규모 도시를 방문해 문화소외계층한테 찾아가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그런 분들한테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소속사 문제로 앨범 제작이 늦어지고 있다는 문씨는 늦어도 올해 안에 앨범을 낼 계획이란다. 장애인 가수라는 이미지가 부각했지만 내공을 쌓고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실력 있는 가수로 팬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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