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고교의 대안교육 이야기①

<편집자주> 인천 최초의 인가 대안고등학교인 청담고교(교장 김경언)의 대안교육이야기를 이번 달부터 월 1회 연재합니다.

▲ 박창민(3학년)
우리 인천청담고등학교는 다른 학교와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

그 첫 번째는 학생들이 교무실에 들어가 선생님들과 마음껏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장난을 하는 등, 화목한 장면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자연스러운 소통으로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친밀도는 높아진다.

두 번째는 매주 금요일 공동체의 날, 진로의 날, 테마의 날, 활동의 날이라는 창의체험활동 즉, 외부 활동을 한다. 학생 전체가 모여 전통놀이를 하거나 외부 초청 강사의 강의를 듣거나 캠핑을 하는 등, 특별한 활동을 하는 날이다.

세 번째는 학생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가창력을 뽐낼 수 있는 노래방과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실, 마지막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당구장이 있다. 또한 교무실에는 여러 가지 보드게임이 있어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즐긴다.

기존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더 새로운 것은 ‘학생생활규정’을 학생들 스스로 의견을 제시하고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의 전체 투표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아마 기존 학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라고 누구나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 학생들이 주인처럼 생활하고 있을까’ 하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학생이 ‘No(아니오)’를 외칠 것이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뽑은 국회의원들을 통해 법을 만들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법기관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다는 이유로 혹은 생각이 짧다는 이유로, 심지어 ‘너희가 무슨 규칙을 정하냐?’라며 무시당하곤 한다.

우리는 어떤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또한 우리의 생각을 펼쳐볼 기회조차 없이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그 틀에 모든 것을 맞춰가며 살아가고 있다. 여기엔 우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이번에 처음이자 개교 6년 만에 학교생활규정 제ㆍ개정이라는 권리를 학생들에게 돌려줬다.

다음은 학생생활규정위원회 관련 규정이다.

제3조 학생생활규정위원회의 운영
① 학생생활규정의 제ㆍ개정은 반드시 다음의 단계를 거쳐 진행한다.
1. 공청회
2. 반별 토론회
3. 학생생활규정위원회 회의(가안 작성)
4. 전체 투표
② 공청회와 반별 토론회를 통해 반드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③ 학생생활규정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회하고,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④ 전체 투표는 교직원과 전교생 과반수의 출석, 총투표자의 과반수의 찬성으로 가결한다.

제ㆍ개정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처음으로 하는 일은 공청회를 여는 것이었다. 공청회에선 학생회장인 내가 사회를 보고 전교생들이 모여 학교생활규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나눴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학생생활규정을 없애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학생에게 불리한 규정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학생들은 반박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학생의 반박을 들은 선생님들의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공청회는 진행됐다. 공청회에서 크게 제기된 의견 중 하나가 있었는데, 학생들의 지각 문제였다. 우리 학교는 지각하면 한자를 쓰게 돼있다. 9시 30분이 등교시간인데, 그때부터 30분 단위로 지각할 때마다 한자를 공책 1장씩 쓰게 돼있다. 만약 9시 32분에 오는 학생이 있다면 한자 1장을 써야한다. 그러나 9시 59분에 오는 학생도 한자 1장을 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9시 40분에 오더라도 9시 59분까지 기다리다가 등교하는 학생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이 오갔다.

두 번째 절차는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가지고 반별 토론을 거쳐 각 반의 대표의견을 만드는 것이었다.

3학년 반에서는 주로 오토바이가 문제가 됐다.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토바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교통수단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학생들이 오토바이를 타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부 학생은 오토바이가 왜 안 되는가라는 반론을 제기했는데 ‘자전거는 이동수단이라 생각하면서 오토바이는 왜 이동수단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어떤 학생들은 오토바이는 이동수단이지만 헬멧 등 안전장비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을 폈다.

각자의 의견이 너무 달라 어려운 점이 많았다. 결국 다수결로 우리 반은 오토바이는 이동수단으로 인정하지만 안전장비를 하지 않으면 벌점을 부여하기로 최종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각 학년 반별로 의견을 모아 학생생활규정위원회에서 집중 논의하는 것이 세 번째 절차였다. 반별로 선출된 회장과 부회장 총6명이 모여 회의를 했는데 이때 선생님 3명이 함께 참여해 논의했다.

평소 같았으면 웃으면서 얘기했겠지만 학생생활규정을 논의하는 시간이니 만큼 사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토의를 진행했다. 여기서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듣고 열띤 토의를 한 후 투표를 거쳐 최종적으로 개정안을 만들어야했다. 하지만, 개정안이 만들어지지 않아 며칠을 모여 토론했다.

▲ 학생생활규정 개정안 전체 투표를 진행 중인 청담고교 학생들.
토론을 하던 중 한 학생은 벌점제도를 없애자는 의견을 냈다. 그것은 반별 토의에서 나온 결과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놀랐다. 왜냐하면 벌점제도를 없애자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생뚱맞은 소리일 수도 있지만 반별 토의에서 나온 의견이기에, 이 의견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들보다 학생들의 반대 의견이 오히려 거셌던 것이다. 벌점제도가 없어지는 것을 많은 학생이 바랄 수 있지만 벌점제도가 없어지면 학교 자체가 흔들릴 것 같은 불안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결국 학교는 이러한 생활규칙을 배우는 곳이라는 데 의견을 모아, 이 의견은 부결됐다.

이 의견을 제안한 학생은 다른 학생들도 전부 찬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했다. 그러나 토의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놀랐다고 했다. 또한 개정안을 만들기 위한 토론에서 선생님들의 표가 3표밖에 안 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마음만 먹으면 학교생활규정을 없앨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교무부장 선생님도 이런 걱정으로 전날 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긴 토론 끝에 개정안을 만들었다. 개정안은 ▲학생 지각, 조퇴, 결석에 관련한 벌점 기준을 좀 더 세분화하는 것 ▲수업 중 핸드폰 사용 금지 조항 중 매 수업 전 학급 반장이 핸드폰을 수거하는 것과 미제출자나 사용자는 종례시간까지 압수 후 반환하는 것 ▲오토바이 교내 이용 금지와 헬멧 미착용 시 벌점을 주고 관련 교육을 이수하게 하는 것 등, 세 가지를 수정하거나 신설했다.

개정안을 만든 후 현행안과 개정안을 두고 전체 투표를 했다. 학생증을 지참해야 투표를 할 수 있었고, 투표함과 기표소는 실제 투표장과 동일하게 만들어 운영했다. 개표 결과 총 43표 중 31표가 개정안 찬성으로 나와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렇게 실제 투표장과 똑같이 만든 이유에 대해 교무부장 선생님은 “나도 처음 투표장에 갔을 때 아무도 어떻게 하라고 알려준 사람이 없어서 당황했다”며 “우리 학교의 학생만큼은 민주시민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경험들을 학교에서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만든 개정안은 학생들끼리 정한 의견이기에 그 파급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전에는 선생님들의 일방적 의견으로 규정을 정했기 때문에 규칙을 지키지 않으려는 학생이 많았다. 그러나 학생 스스로 제ㆍ개정한 규칙은 스스로 잘 지켜야한다는 주인의식이 생겼다. 이후 규정과 관련한 학생들과 선생님들과의 마찰은 현저하게 줄었다.

학교생활규정 제ㆍ개정 권한을 학생들에게 돌려주면 학교가 마비될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민주적으로 의견을 밝히고 의사결정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와 같은 사례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 좋겠다. 학교생활규정을 만들기 위한 이러한 과정은 모든 학교에서 당연히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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