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준호 건축가의 공간(空間) 이야기 ④

우리는 지금

▲ 이준호 건축가.
최근 충격적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신안 학부모 성폭행 사건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과관계에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했고, 점점 더 각박해져가는 사회에 대한 걱정과 내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의미의 ‘헬조선’이 돼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인간이 가진 이성이라는 도구에 주목하게 된 것은 철학에서는 데카르트, 과학에서는 뉴턴을 기점으로 한다. 그 중 뉴턴에 의해 정립된 가설의 설정과 증명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추론과정은 인류의 문명이 지금에 이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위의 두 사건은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도저히 합리적 사고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없다. 만약 이 결과가 합리적 판단의 결과라고 하면, 인간의 이성은 데카르트 이후 큰 위기를 맞이한 셈이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에 충분한 여러 사건과 신자유주의에 의해 각박해질 대로 각박해져버린 사회를 살아가야하는 우리 보통 사람들의 피로감은 어느덧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 영화 ‘블레이드 러너’ 스틸컷.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복제인간이라는 존재로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SF영화다. 인조인간 - 로봇이 아닌 생물학적으로 만든 인간 - 리플리컨트는 인간과 같은 지적능력과 인간을 뛰어 넘는 신체능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인간사회와 철저히 격리된 채 전투원ㆍ우주개발ㆍ섹스인형 등과 같이 인류의 노예로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의 수명은 4년으로 아주 짧다.

이 영화의 설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두 가지 있다. 리플리컨트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만들어져 인간이 꺼려하는 이른바 3D업종에서 ‘사용’된다. 혹여 인간과 같은 지적능력으로 인해 자신들의 처지에 불만을 갖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구로 잠입한 리플리컨트들은 리플리컨트 담당 경찰인 블레이드 러너에게 발각되면 즉시 사살되는데, 이는 처형이 아니라 ‘폐기’이다.

‘사용’과 ‘폐기’는 도구에나 적용시킬 수 있는 말이다. 도구는 인간의 삶을 안락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일종의 수단인데, 인간이 만들어낸 수명 4년짜리 리플리컨트는 단순한 도구인 셈이다. 인간이 필요해 만들긴 했지만, 보통의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리플리컨트는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와 지구로 잠입한 리플리컨트 로이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이클 베이 감독의 2005년 영화 ‘아일랜드’는 좀 더 대놓고 복제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평단과 흥행에서 참패했고, 블록버스터와 진지함을 저울질했던 마이클 베이에게 흑역사를 안겨준 영화이기는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깔려있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블레이드 러너’처럼 2019년이다. 지구에 큰 재앙이 발생해 인간의 일부만 살아남는다.

자신들을 지구 종말의 생존자라고 믿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통제된 사회에서 유일한 희망은 지구의 종말을 견뎌낸 오염되지 않는 땅 ‘아일랜드’에 가는 추첨에 뽑히는 것이다. 눈 뜨자마자 몸 상태를 점검받고, 철저하게 계획된 음식물만 섭취하며, 일과 운동 또한 각자의 몸 상태에 철저하게 맞춰진 말 그대로 철저하게 격리되고 통제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곳을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아일랜드로 가는 추첨에 뽑힌 임신부가 출산한 후 죽임을 당하고 장기를 적출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주인공 링컨6-에코는 강력하게 통제된 사회에 강한 의문을 품고 조던2-델타와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자신들이 생활하던 공간 밖의 세계를 상상조차 못했던 두 주인공은 무의식에 남아있던 이미지를 좇아 다다른 곳에서 엄청난 현실을 마주하고 혼란을 겪는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외부세계에 사는 스폰서들의 사고나 치료(노화에 따른 장기 교체 등) 등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복제인간들은 리플리컨트보다는 더 자신을 인간으로 여길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도 결국은 본체에게 건강한 장기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계의 수명 연장을 위해 여유 부품을 만들어내듯이 본체의 건강한 삶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인 이들을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이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부품으로써 사육되는 존재인가?

링컨6-에코와 조던2-델타에 의해 모든 복제인간이 탈출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지만, 그들이 맞이할 앞날은 순탄하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 영화 ‘아일랜드’ 스틸컷.
위의 두 영화가 복제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면,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1999년 영화 ‘매트릭스’는 인간의 의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당시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낸 독특한 영상과 의상, 공중에서 잠시 정지한 것 같은 액션 장면 등은 화제를 넘어 파격적이었지만, ‘매트릭스’는 이런 물리적인 것들이 전부가 아니다.

1999년을 살아가는 앤더슨은 두 가지 삶을 산다. 낮에는 회사원 앤더슨의 삶, 밤에는 세계적 해커 네오의 삶이 그것이다. 네오는 해커세계에서 유명한 모피어스를 통해 매트릭스라는 단서를 추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로 찾아온 FBI 요원들로부터 도망치던 중 트리니티의 도움을 받고, 자신에게 매트릭스라는 단서를 흘리던 모피어스와 대면한다. 그에게서 1999년의 세상은 기계가 만든 가상현실이고, 실제는 2199년으로 인간은 기계의 에너지원(배터리)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그 유명한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의 선택지 앞에 놓인다. 하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기억을 지워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199년 기계의 에너지원이 돼버린 인류의 현실을 볼 수 있게 되는, 즉 매트릭스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네오의 선택은 2199년의 현실이고, 이후 기계와 싸움의 전면에 나선다. 파격적 영상과 더불어 우리가 살고 있고, 인식하고 있는 현실세계가 과연 실제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생각하는 것을 포함한)이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 하는 굉장히 철학적인 물음을 던진다.

마치 장자의 ‘나비의 꿈-내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나비인 나의 꿈속에서 사람이 된 내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라는 이야기를 영화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영화가 순식간에 논쟁에 불을 붙였고, 다양한 해석과 이론을 접목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가히 ‘매트릭스 신드롬’이라 불릴 수 있을 법한 상황이 연출됐다.

그렇다면, 매트릭스가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면, 그렇지 않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과연 있는가? 매트릭스의 현실을 가져오면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도 단지 매트릭스 안에서의 인식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1999년의 회사원인 앤더슨이 인간인가, 아니면 기계의 에너지원이 된 2199년 현실 속의 네오가 인간인가? 선택이 어렵다면, 어느 것이 더 인간다운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모든 것을 수치로 바꿨다. 그것에 기반을 둔 이른바 사업성이라는 것이 어떤 분야에서든 절대적 선택기준이 됐다. 정부의 공식적 실업률 통계에서 청년(15-29세) 실업률이 2016년 2월 12%를 넘었지만, 12% 안에는 청년 56만명 개개인의 고단한 삶은 드러나지 않는다. 2015년 주택 전세가격 상승률은 전국 4.85%, 수도권 7.14%로 집계되지만, 그 안에는 2년마다 수천만원씩 오르는 전세금 때문에 의ㆍ식ㆍ주 이외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제활동은 사라지는 한 가족의 팍팍한 삶도 드러나지 않는다.

2014년 기준 자살률은 10만명당 27.3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라며 심각하다는 보도가 쏟아지지만,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 1만 3000여명의 삶은 역시 주목받지 못한다. 점점 각박해져가는 사회를 성토하기 이전에, 나부터라도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서 데이터화 된 숫자가 아닌,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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