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비상(飛上, 2006)>


이 영화가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도 시큰둥했다. 왜냐고? 축구영화라잖아.
난 스포츠를 안 좋아한다. 더구나 축구는 더더욱 안 좋아한다. 이유는? 재미없으니까. 그나마 A매치 경기 정도 돼야 관심 조금 생기긴 하지만, 그마저도 승부를 못 견뎌하는 성격 탓에 정신건강에 해로운 경기관람은 아예 내 유희목록에서 제외다. 2002 월드컵, 사람들에 묻혀 한 경기 정도 봤고, 2006 월드컵은 한 경기도 안(못) 봤다.

아무튼 축구비호감인 내가 어느 축구 구단의 다큐멘터리라는 이 영화를, 더구나 소수 극장에서만 개봉한다는 이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됐다. 물론 아무런 기대도 없이. 축구 알레르기 비슷한 증세가 있는 내가 도대체 영화를 즐길 수나 있을까 의심까지 하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축구에 대한 호불호와는 전혀 상관없이 몰입 100% 가능한 영화다. 고작 K리그의 최하위 팀인 인천유나이티드FC의 1년을 담은 영화일 뿐인데, 어느 영화보다도 완벽한 드라마가 완성된다. 아니, 꼴찌들의 합창이어서 더더욱 감동적인 드라마가 연출됐는지도 모르겠다. 초반의 의구심이 중반의 응원으로 바뀌고 후반에는 안타까움이 환희와 열정으로 변화하면서 마지막 감동 어린 눈물의 대장정을 맞는 드라마.

찌질이, 쓰레기, 패자, 이 모든 마이너리티 요소를 다 안고 있는 '인유(인천유나이티드FC)'는 하나의 축구팀이 아니라 어느새 나와 동일한 인격체가 된다. 그의 좌절은 나의 좌절이고 그의 승리는 나의 승리다. 인유 안에서 벌어지는 삐걱거림은 내가 숨기고 싶은 치부가 발가벗겨져 드러나는 것이다. 그 한계를 딛고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성공드라마는 패배의 연속이었던 내 인생에 희망의 씨앗을 남긴다. 나를 다독인다.

축구경기는 한 편의 드라마라고 누가 그랬던가.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인유의 2005년은 어느 드라마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스펙터클과 감동을 안겨준다. 거기다 인생의 대부분을 좌절과 낭패감 속에 보내야 하는 범인들의 삶을 위로하기까지 한다.

감동의 눈물 ‘백만스물한 바가지’ 정도를 흘리며 극장을 나오다가 문득,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축구에 관심이 없다지만 인천에 살면서 인유라는 팀이 있었는지도, 거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구단에 맞서야 하는 가난한 시민구단이 어떤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불굴의 투혼으로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며 이제부터라도 축구를 좋아해볼까, 잠시 생각했다. 물론 쉽지않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선수들을 그라운드를 바라볼 것 같다.
그라운드 파란 잔디밭에 밴 그들의 눈물과 원망과 오기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박주영이나 이천수 같은 스타선수들만이 아니라, 이름 없이 그라운드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는 숱한 무명선수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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