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개관 70주년 기념 특별전 연 인천시립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을 설명할 때 꼭 따라붙는 말이다. 인천을 소개하는 데 ‘최초’라는 말이 자주 등장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개관 70주년 기념 특별전을 관람하고 나니, 인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우러나왔다.

지난 11일 오전, 시립박물관을 찾아가 조우성 관장과 이번 특별전을 총괄한 신은영 학예사를 만났다. 특별전의 의미와 내용, 인간으로 치면 고희(古稀)가 된 시립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일 시작한 특별전은 6월 9일까지 이어진다. 인천시민이라면 한번 시간 내어 시립박물관 기획전시실을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신은영 학예사의 설명과 도움말을 정리했다.

기억의 저장소인 박물관에서 역사와 대화하다

▲ 인천시립박물관 조우성 관장(오른쪽)과 신은영 학예사.
“보통의 경우 박물관을 옛날 물품을 전시하는 정적인 공간으로 생각한다. 단지 전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 어떤 의미를 갖느냐가 중요하다. 과거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역사와 대화해야한다”

조우성 관장은 E.H.카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역사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구절을 인용해 과거 역사나 유품을 현재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립박물관(=본관) 산하에는 한국이민사박물관ㆍ송암미술관ㆍ검단선사박물관ㆍ컴팩스마트시티 등, 분관 4개가 있다.

조 관장은 “인천은 1883년 개항지답게 한국의 근대문화를 이끈 선진 지역이자, 다양한 인구가 유입되기도 이민을 가기도 한 개척정신이 녹아있는 역사의 고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서 “21세기에 경쟁력 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박물관이 살아 숨 쉬는 역사를 기억하는 저장소가 되려면 지역의 정통성을 갖고 이것을 시민들에게 인식시키는 사회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관장은 “적은 예산으로 전시 도록과 특별전을 준비한 직원들한테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석남 이경성 선생 흉상 제막식 열어

▲ 개관 70주년 특별전 1부 코너에는 이경성 초대 관장의 ‘석남서실’을 축소 재현했다.
지난 1일에는 시립박물관 개관 70주년을 맞아 초대 관장을 지낸 석남(石南) 이경성 선생 흉상 제막식을 개최했다. 흉상은 새얼문화재단이 제작해 인천시에 헌정했으며, 시립박물관 중앙로비에 세워졌다.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지 3개월이 지난 1945년 10월 31일, 석남 선생은 초대 관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맥아더 동상이 있는 자리에 한국 최초의 서양인 회사인 세창양행의 사택이 있었다. 19세기 말 독일인이 지은 이 사택은 1차 세계대전 후 인천시가 매입해 도서관과 향토관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1946년 4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이 됐다.

국립중앙박물관(1909), 부여박물관(1929), 개성부립박물관(1931)이 해방 전에 세워졌고, 국립경주박물관(1945)도 인천시립박물관에 앞서 세워졌다. 그러나 이 박물관들은 나라에서 세웠거나 민간이 만들거나 유지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세우고 관리한 박물관으로는 인천시립박물관이 처음이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라고 한다.

석남 선생은 해방 후 일본인들로부터 몰수한 물건들과 부평 조병창에서 옮겨온 물건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국립민속박물관 민속품 등을 모아 전시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 전쟁은 박물관을 포함해 많은 것을 파괴했지만, 석남 선생은 소장 유물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그의 노력으로 1953년 옛 제물포구락부 건물을 시립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업적을 남긴 석남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6년 시립박물관 건물을 보수하면서 만든 강당에 ‘석남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번 개관 70주년 특별전에서도 ‘석남서실’ 코너를 마련했다. 서실에는 선생이 생전에 사용한 협탁이나 책상, 관장 시절 방에 있던 것을 재현했다. 선생의 저서도 한쪽에 전시했다.

시립박물관 70년, 기억의 문을 열다

▲ 러일전쟁 때 침몰한 러시아 전함 바리야크호의 깃발.
이번 특별전은 시기와 장소로 구분, 크게 3부로 구성했다. 1부는 1946년부터 1950년까지로 세창양행 사택 시절이다. 2부는 1953년부터 1989년까지 제물포구락부 시절이고, 3부는 1990년부터 현재까지로 지금의 시립박물관이 있는 옥련동 시대의 특징을 전시했다.

개관 초창기인 1부에 전시된 유물 중에는 지역 향토 소장품보다는 선사시대나 개화기 시절의 유물,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약탈한 철제로 만든 거대한 종들, 골동상인에게 얻은 도자기 등이 있다. 뚜렷한 성격이 없는 유물들의 뒤섞임이다. 향토성의 결핍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석남 선생은 박물관과 지역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고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47년 경주 고적 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문학동, 동춘동, 계양산 인근, 주안, 덕적도 등을 조사하며 인천 향토사 연구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1부 전시물 중 눈여겨 볼 게 있다. 러일전쟁 때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전함 바리야크호의 깃발이다. 바리야크호는 제물포 해전에서 일본 군함에 의해 피복됐지만 항복하지 않고 자폭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에서는 국민적 영웅 신화가 만들어졌다.

2부 제물포구락부 시절은 한국전쟁으로 2년 10개월간 폐관됐다가 1953년 4월 1일 송학동 제물포구락부 건물(현재 인천문화원)로 이전ㆍ개관한 때부터다. 1884년 건축돼 70여년의 역사를 가진 세창양행 사택이 전란으로 소실됐기 때문이다.

1901년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해 지은 제물포구락부는 2층 양옥구조의 벽돌 건물로 건물 내부에는 사교실ㆍ도서실ㆍ당구대 등, 가교 모임에 적합한 시설을 꾸몄다. 전쟁 중에는 북한군 대대본부와 미군 사병 클럽으로 쓰였고, 1952년에는 의회와 교육청, 박물관이 함께 사용하다 1954년 4월 1일 박물관 건물이 됐다. 1990년 시립박물간이 송도로 이전한 후에는 중구문화원으로 사용하다 지금은 인천문화원이 사용한다. 인천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7호다.

36년간 사용했던 제물포구락부 시절의 2부 대표 전시물로는 해진도(통수영수군조련도)ㆍ청화백자ㆍ청동향로 등이 있다. 이밖에 서화류, 도자기와 토기도 함께 전시돼있다. 특히 1965년에 진행한 서구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 발굴조사는 역사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인천지역 문화를 선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박물관의 침체기였다. 6대 우문국 관장은 ‘자유당 정권 말엽부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국가와 향토의 자랑이 될 수 있는 박물관의 존립 가치를 충분히 고려 못한 시의 관심 부족 때문’이라고 했다.

1980년에 이전 논의를 시작한 시립박물관은 옥련동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부지 일부에 건물을 짓고 1990년 5월 개관했다. 학익 고인돌의 형태에서 착안한 이 건물은 1991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관 당시 인천직할시립박물관이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로 승격하면서 지금의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이 됐다.

옥련동 시대는 지방자치의 시대라 지역의 고유성을 찾아 정체성을 창출하는 향토가 전면에 등장했다. 그 전의 전시는 대관 전시가 대부분이었다면 1990년대부터는 기획전시가 주를 이뤘고 향토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다.

1990년대에는 ‘지나간 것’이나 ‘유물’에 초점을 맞췄다면, 2000년대에는 인천이라는 지역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야구ㆍ커피ㆍ화교 등이 주제로 등장했다. 인천과 역사적 배경이 비슷한 중국 상하이와 일본 요코하마를 주제로 한 전시도 열렸다. 또한 배다리나 월미도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회도 진행했다. 현재진행형이라 주민들 간 이견도 있고 사람마다 역사적 관점이 다르기도 하지만, 시립박물관 관계자들은 ‘이 또한 인천 역사의 일부’라 생각해 전시 했고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구석기시대 유물인 맘모스 상아

인천시립박물관을 찾은 많은 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로 꼽는 것은 지름이 2미터가 넘는 맘모스 상아다. 이 상아는 일제강점기 북만주 지역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됐다. 발굴단은 이 상아를 인천까지 기차로 옮긴 다음 일본까지 배로 운송할 계획이었는데, 인천에 도착했을 무렵 광복이 돼, 유물 운송을 맡았던 중국 운송회사가 창고에 숨겨뒀다. 1945년 중구 북성동 창고에 화재가 발생했고, 경찰이 잿더미에 묻혀있는 상아를 발견해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겼다.

시립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맘모스 상아는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수장고에서 휴식을 취하다 이번 70주년 특별전을 맞아 붕대를 감은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신은영 학예사는 마지막으로 “이경성 초대 관장부터 지금 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사까지 인천의 정체성과 색깔을 보여주는 게 공립박물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박물관 7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향토색을 찾는 여정인 것 같다”며 “그것이 박물관의 동기이자 숙명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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