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이순희 한국국악협회 인천지회장

‘어린나이에 여러 큰 선생님도 하기 어려운 12좌창(잡가)을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완창하고 녹음을 수차례 하는 제자를 보며 선생으로서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는구나. 나의 제자 규희야 축하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지난 1월, 인천시 무형문화재 21호 경기12잡가 예능보유자인 이순희(61) 한국국악협회 인천시지회장은 그의 제자 박규희(22)씨의 첫 음반에 위와 같은 소감을 적었다.

지난 7일 남구 문학동 인천무형문화재전수관 경기12잡가 사무실에서 이 지회장을 만났다. 인터뷰 내내 제자들과 후학 양성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그녀를 보면서 부모와 같은 마음을 엿보았다. 하지만 국악의 세계는, 이 지회장이 1시간 동안 열강(=인터뷰)을 했음에도,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국악은 우리의 뿌리

▲ 이순희 한국국악협회 인천지회장
“큰 틀로 국악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는 소리(판소리ㆍ민요ㆍ병창ㆍ정가 등)뿐 아니라 기악(가야금ㆍ거문고ㆍ아쟁ㆍ해금 등), 무용(한국무용ㆍ현대무용 등), 풍물(꽹과리ㆍ징ㆍ장구ㆍ북 등) 등이 있어요. 국악은 우리의 뿌리죠”

국악을 쉽게 풀어 달라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이 지회장은 그중 소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줬다. 옛날 일하면서 불렀던 ‘노동요’에는 한이 서려있다는 해설과 더불어 지역별로는 지금의 경기ㆍ인천 일대에서 부른 경기민요, 황해도나 평안도 등 이북지역에서 불린 서도민요, 강원도의 동부민요, 전라도의 판소리와 제주민요 등이 있다고 했다.

판소리와 민요의 차이를 물으니, “판소리는 통목(=가식 없이 쓰는 육성)을 써서 굵은 소리를 내요. 그밖에 경기민요ㆍ동부민요ㆍ제주민요는 깨끗하고 맑은 소리를 내죠. 그래서 경기민요를 배우는 사람들이 제주민요와 동부민요는 배우지만 판소리는 배우지 않아요”라고 설명했다.

경기12잡가는 앉아서 부른다 해서 좌창, 사설이 길다는 뜻으로 잡가라고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소리지만 경기12잡가는 서민의 희로애락이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돼있어, 전통음악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경기12잡가에는 유산가ㆍ적벽가ㆍ제비가ㆍ소춘향가ㆍ집장가ㆍ형장가ㆍ평양가ㆍ선유가ㆍ출인가ㆍ십장가ㆍ방물가ㆍ달거리가 있다. 그중 유산가는 산천 경치를 노래하고 있고, 소춘향가ㆍ집장가ㆍ형장가ㆍ평양가는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을 따서 사설을 지은 것이고, 적벽가는 판소리의 적벽가와 비슷하고, 제비가는 판소리 흥보가와 내용이 통한다고 설명했다.

평양가ㆍ출인가ㆍ십장가ㆍ방물가ㆍ달거리는 서민적인 인정과 사랑 등을 노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지회장은 “경기민요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고 듣기에 다소 힘이 들지만 높고 낮은 음과 중간 음 등, 소리의 모든 요소가 다 들어있어 소리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소리꾼인 어머니가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대를 잇고자 노력

“어머니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데, 외증조부께서 피리를 부셨대요. 외할아버지는 대금을 부셨고요. 어머니와 이모는 경기민요를 하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가난해서 보릿고개 넘기기가 힘들었는데 그나마 소리꾼은 소리 한 자락하고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어서, 어머니는 제가 소리를 하기 바랐어요. 다섯 살 때부터 배웠는데 그때는 정말 하기 싫었죠. 떼를 쓰다 울며 잠든 기억밖에 없습니다”

이 지회장의 어머니인 박일심 여사는 장타령을 했다. 장타령이란 장터를 무대로 활동한 소리꾼들이 시장을 흥청거리게 하고 물건을 팔기 위해 부르던 노래로, 품바나 각설이타령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장타령을 하면, 그게 창피해 숨어 다녔단다.

“그때는 엄마가 무서워서 억지로 배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철없던 거죠. 그걸 배웠기에 제가 무형문화재까지 된 거니까요”

박일심 여사는 운명하기 7년 전, 이 지회장에게 장타령을 제대로 가르치려했다. 그러나 그 때도 ‘철이 없던’ 그녀는 어머니의 뜻을 멀리했고, 어머니가 세상에 없자 뒤늦게 장타령의 가치와 어머니의 예술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지회장은 어머니의 장타령을 복원해 2008년에 장타령과 경기민요 발표회를 열었다.

그녀는 소리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자식만은 소리꾼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길 바랐다. 그러나 인력으로는 막을 수 없었던 것일까.

“아들이 태안에 있는 절이 좋다고 해, 지난해 다녀왔는데 마침 큰스님이 계시다기에 만나 뵈었어요. 큰스님 말씀이 ‘이어야하는데… 끊겨서는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을 끝으로 소리꾼 4대를 마무리하겠다는 생각했던 이 지회장은 아들에게만은 국악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은 대기업을 비롯해 여러 직장을 다녔지만 오래 못 다니고 방황했다. 이 지회장은 큰스님의 말씀을 듣고 천륜이라 생각해 더 이상 막지 않았다. 아들 나이 36세였다. 아들은 현재 경기12잡가 보존회 사무국장으로 함께하고 있다.

국악협회 인천시지회장에 인천예총 부회장까지

▲ 2015년 무형문화재 정기공연에서 경기12잡가 중 ‘유산가’를 부르고 있다.<사진제공·경기12잡가 보존회>
그녀는 한국국악협회 인천시지회장을 2006년 21대 지회장에서부터 24대인 지금까지 12년간 맡고 있다. 2006년, 지회장이었던 스승 이영열님이 암으로 별세하자, 그녀가 급하게 지회장을 맡았다. 2010년에는 인천예총 부회장으로 당선돼, 현재까지 그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 지회장은 국내 공연은 물론, 일본ㆍ캐나다ㆍ중국ㆍ호주ㆍ필리핀 등 해외에서도 공연했다. 인천시장상ㆍ인천시의회의장상ㆍ문화부장관상 등 여러 상을 받았고 다양한 감사패도 받았지만, 그녀는 2008년에 수상한 인천시 문화상과 2011년에 받은 한국예총 문화상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문화예술인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국악의 매력이요? 글쎄, 마약 같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것 같다는 분도 계시잖아요. 우리도 며칠만 목을 풀지 않으면 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올해로 58년째 소리를 하고 있는데 날마다 하지 않으면 목이 굳어요. 나이도 드는데 연습을 게을리 하면 소리가 배에서 우렁차게 나오지 않고 목에서만 나와 답답하고,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똑’소리 나게 잘 하는 걸 보면 눈물이 날 만큼 뿌듯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평생의 숙원, 인천시립국악단 설립

이 지회장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다. 그중 박규희씨는 독보적이다. 중앙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이 지회장을 찾아왔다.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박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경기12잡가를 5시간 동안 완창 했고, 올해 초 국악방송에서 음반을 제작했다.

“2013년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에 규희가 나갔어요. 저는 심사위원으로 참가했죠. 규희가 워낙 잘했는데 저는 내 제자라 ‘심사회피제도’를 썼어요. 그런데 다른 심사위원들이 만점 가까운 점수를 줘, 장원을 했어요. 가슴이 뭉클 하더라고요”

이 지회장은 제자 박규희씨 말고도 계민영ㆍ손누리빛ㆍ양진수씨 등, 제자 자랑에 한참을 보냈다. “욕심일지 모르지만 우리 규희가 대통령상 탔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한 이 지회장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소리를 하겠다고 했다.

“인천시 재정이 매우 어렵잖아요. 제일 힘든 게 전통예술과 체육 분야라고 생각해요. 가까운 경기도 안산에도 시립국악단이 있는데, 동북아 허브 도시라는 인천에 시립국악단이 없어요. 지회장 임기 안에 만들고 싶지만 그때까지가 아니더라도 만들 때까지 도울 겁니다. 인천의 국악 수준은 다른 시ㆍ도에 비해 높은 편이에요. 이들(=제자들을 비롯한 지역 국악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게 저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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