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문 닫게 한 동네 빵집, 25년 가업 잇는다
프랜차이즈 문 닫게 한 동네 빵집, 25년 가업 잇는다
  • 김갑봉 기자
  • 승인 2016.02.2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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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부평구 산곡동 ‘쉐라메르’ 홍순기·홍준표 부자

한 자리에서만 동네 빵집 25년

▲ 쉐라메르 홍순기 대표(오른쪽)와 홍준표 매니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으로 인해 동네 슈퍼마켓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동네 빵집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1991년 인천제과협회에 등록된 제과점은 980여개에 달했으나, 25년이 지난 지금은 400여개에 불과하다. 150개가 넘었던 부평구에서도 그 절반이하로 줄었다. 그사이 파리바게트와 뜌레주르가 동네를 대부분 장악했다. 그리고 이제는 대기업의 과당경쟁 진출로 프랜차이즈 빵집마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에서 25년 넘게 동네 빵집을 지키며 굴지의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을 문 닫게 한 제과점이 있다. 바로 부평구 산곡2동우체국 앞에 있는 제과점 ‘쉐라메르’다. 쉐라메르는 1991년 11월 산곡2동우체국 맞은편에 문을 열었다. 올해 11월이 되면 꼬박 25주년이다.

홍순기(60) 쉐라메르 대표는 20대 때 서울의 한 제과업계에 몸을 담았다. 그는 제과점에서 공장장(=제과업계 주방장)으로 일하던 중 자기 빵집을 차리기 위해 1988년 봄 전 재산을 털어 경기도 안산으로 향했다.

당시 제과업계는 크라운베이커리와 고려당, 뉴욕제과가 대세였다. 홍 대표는 안산에 와 일부러 뉴욕제과와 고려당이 있는 지역을 택했다. 그리고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20만원 짜리 점포를 구해 ‘케익타운’을 열었다.

당시 그 월세면 서울에서도 점포를 구할 수 있는데다,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점 앞에 차린다고 하니, 주변에선 모두 그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홍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프랜차이즈 제과점도 반제품 상태로 본사에서 납품받아 판매했다. 홍 대표는 그 반제품에 맞서 자신이 갓 구워낸 빵을 판매하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는 아침 7시에 가게 문을 열어 밤 12시까지 빵을 구웠다. 또, 직원들이 퇴근한 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따로 빵을 만들었다. 잠은 낮에 청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매일매일 갓 구은 빵은 입소문으로 번지기 시작했고, ‘케익타운’은 금세 유명해졌다.

40년 숨결과 25년 명성, 이젠 가업으로 잇는다

그 뒤 홍 대표는 1991년 부평구 산곡동에 정착했다. 그가 산곡동에 들어설 때도 안산에서처럼 그의 빵집 맞은편에 제과업계 프랜차이즈 강자였던 크라운베이커리가 있었고, 이듬해에는 파리바게트까지 입점했다. 산곡2동우체국 사거리 귀퉁이 세 곳에 빵집이 들어서면서 ‘제빵왕’ 쟁탈전이 시작됐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즈 제품은 대부분 반제품이었다. 홍 대표는 이 조그만 우체국 사거리에서 전개된 ‘제빵왕 쟁탈전’에서 크라운베이커리와 파리바게트, 뚜레쥬르를 모두 다 문 닫게 했다.

홍 대표의 영업방식은 안산에서 했던 것과 동일했다. 프랜차이즈의 반제품 빵에 맞서, 새벽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며 산곡동 주민들이 갓 구은 빵을 맛볼 수 있게 했다.

제일 먼저 크라운베이커리가 자리를 떴다. 그리고 2년 뒤 파리바게트도 문을 닫았다. 그 뒤 크라운베이커리 자리에 다시 파리바게트가 들어섰지만 10년을 버티다 결국 문을 닫았다. 이듬해 2004년 다시 그 자리에 크라운베이커리가 들어섰지만, 1년도 채 안 돼 문을 닫았다. 뒤를 이는 뚜레쥬르도 별 수 없었다.

여간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지만, 쉐라메르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세를 다섯 차례나 막아내며 동네 빵집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이젠 홍 대표의 40년 제빵인생을 그의 아들 홍준표(32) 매니저가 잇고자한다.

홍 대표가 산곡동에 빵집을 낼 때 준표씨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이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매니저로서 일을 배우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25년 넘게 지킨 동네 빵집을 잘 지킬 수 있을까?

“100일 정도 일했을 때, 내 맘대로 안 되구나 느껴”

▲ 홍준표씨는 매니저로 일하며 일을 배우고 있다.
준표씨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땐 지금 산곡2동우체국 근처에 있는 부곡초등학교가 없었다. 준표씨는 산곡남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아버지가 빵집을 하고 있던 터라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준표씨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만든 빵을 많이 나눠줬다. 그 때는 더욱 귀한 빵이었다. 팥빙수도 나눠주곤 했는데, 친구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

준표씨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업을 잇기로 마음을 먹긴 했지만 부담이 컸다. 아버지처럼 제과 기술을 익힌 것도, 사람을 오래 대한 것도 아니다 보니, 지금보다 제품의 질이나 가게 이미지가 혹여 떨어지는 건 아닌지, 부담이 컸다.

그래도 산곡동에서 사랑 받은 빵집을, 부평에서, 인천에서 사랑 받는 빵집으로 키우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머릿속에 천안의 ‘뚜쥬르’와 대전의 ‘성심당’을 떠올리며, 자신도 멋지게 대를 잇겠다는 포부를 키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준표씨는 “한 100일 정도 일을 해보니, 정말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려운 게 많았다. 당장, 빵을 굽는 직원들과 소통이 제일 어려웠다. 나는 배운 제과기술이 없으니 더욱 그랬다. 아버지는 지켜보시기만 했다. 예전엔 몰랐지만 아버지가 옆에 계신 것만으로 큰 힘이 됐다. 스스로 터득하게 하려는 교육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름 생각해보니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수평적인 높이에서 소통하는 것이었다. 먼저 지는 게 이기는 거고, 서로 화를 내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을 배웠다. 먼저 사과하고, 미안하다 말하면 된다. 진실 된 한마디면 녹는데 그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준표씨는 매장 직원들과 같이 일하며 일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제과기술도 익히기로 했다.

이런 준표씨를 두고 홍 대표는 “열린 사고와 직원과 상생이 중요하다. 사실 우리 세대는 수직적인 조직문화에 익숙한데, 아들 세대는 우리와 다르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일구겠다는 의지가 고맙다”며 “다만 아직 사회적 자산이 구축 안 돼 있어서 사람과 물자를 구하고 조달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은 하다보면 늘 게 돼있다”고 말했다.

“남녀노소 다 좋아가 아니라, 입맛 따라 좋아하는 빵을”

준표씨는 일을 배우는 동시에 국제 제과 경향을 분석하면서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열정적이다. 빵도 국제 경향이 있는 만큼, 소비자 기호 변화에 맞는 제품을 꾸준히 개발해야한다는 것이다. 준표씨는 특히 여성의 눈과 입을 사로잡을 신제품 개발에 신경을 쓴다.

준표씨가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웹상에서 손님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제과를 제작하는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는 “머리에 카메라를 장착해 빵 제작 과정을 1인칭 시점에서 촬영한 뒤, 동영상을 제작해 이를 SNS에 업로드할 계획이다. 보다 생생한 제빵 과정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 뒤 “특별한 기념일에 손님이 직접 케이크 제작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케이크에 자신만의 문구를 새기거나, 뭔가를 얹게 되면 특별한 케이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준표씨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동네 빵집 전략은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심지어 시간대별로 다양한 입맛을 고려한 빵을 만들겠다는 게 준표씨의 포부다.

그는 “아버지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빵을 열심히 만들면 된다고 했지만, 이젠 다르다. 좋은 재료는 기본이지만 남녀노소 기호가 다르고, 또 20대와 10대가 좋아하는 빵이 서로 다르다. 심지어 오전에 먹고 싶은 게 있고, 저녁에 먹고 싶은 게 있으며, 날씨에 따라 생각나는 빵이 다르다. 동네 빵집은 그런 게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