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주교님 면담만 하기로 했는데, 주최 쪽에서 갑자기 요청”

천주교 인천교구(이하 인천교구) 사제ㆍ부제 서품식때 묵주기도가 유정복 인천시장의 인사말로 중단된 일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유 시장이 인사말을 하겠다고 요청한 게 아니라, 시 또한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인천교구는 지난 5일 남동체육관에서 사제ㆍ부제 서품식을 개최했다. 사제와 부제는 신부를 일컫는 것으로, 부제는 신학대학 졸업 후 성당에서 사제를 보좌하며, 일정기간이 지나면 사제 서품을 받는다.

인천교구는 이날 사제 11명과 부제 19명에게 서품을 수여했다. 서품식은 인천교구가 개최하는 여러 행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남동체육관은 서품식을 축복하기 위해 각 성당에서 참석한 신자로 가득 찼다.

신자들은 서품식이 시작되기 전 묵주기도를 했다. 묵주기도는 공식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하는 기도다. 기도는 5단으로 구성되고, 1단을 바치는 데 5~7분이 걸린다. 1시 30분쯤 시작한 묵주기도가 영광의 신비 4단을 바치던 1시 50분쯤 갑자기 중단됐다. 사회자가 묵주기도를 중단하고 유 시장의 인사말 시간을 삽입한 것이다.

유 시장은 인사말에서 자기 세례명이 ‘바오로’라며 자신도 천주교 신자라고 했다. 유 시장의 인사말이 끝난 뒤 묵주기도는 다시 진행됐다. 그리고 묵주기도가 끝난 뒤 서품식에 참여한 인천지역 국회의원 소개가 이어졌다.

이일로 유 시장은 묵주기도를 중단한 시장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천주교 일각에선 서품식장이 정치인들의 선거운동을 하는 곳이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시는 당혹스러워했다. 시 관계자는 “시장님은 자기 때문에 행사 일정에 지장을 주는 것을 결벽증처럼 싫어한다. 이날 인사말도 시가 요청한 것이 아니다. 당초 사전에 주교님과 티타임만 하기로 돼있었다. 이후 일정도 있고 해서 그렇게 조율했다. 주교님과 면담 후 신부님이 묵주기도장인 체육관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주최 쪽에서 갑자기 인사말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여전하다. 서품식에 참여했던 신자 박아무개씨는 “기도가 갑자기 중단되자 체육관 여기저기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다”라며 “설령 인사말을 한다 해도 기도를 마친 뒤 해도 될 일이며, 게다가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인사말이라면 유 시장도 거절해야했다. 성스럽고 경사스러운 서품식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크다”고 쓴 소리를 했다.

인천교구의 불찰이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자신을 인천교구 신자라고 밝힌 사람은 <가톨릭프레스>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소속된 인천교구는 서품식의 의미를 되새기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야할 것이다’라고 개선을 요구했다.

그는 이어, “신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성전에서 큰소리를 내는 것이 죄스러워 참을 뿐이고, 사제와 주교님들을 존중하기에 믿고 기다렸을 뿐이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고 반성하고 참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교회가 돼버리면 아마도 나 같은 신자들은 하나 둘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나 같은 신자들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인천교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서품식 전 묵주기도는 공식미사가 아닌 만큼, 별무리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아무개 신자는 “공식미사가 진행 되는 중에 발생한 일이라면 큰 결례 일 수 있지만, 공식미사 전 시장 인사말이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인천투데이>은 이번 일과 관련해 천주교 인천교구청에 반론을 요청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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