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38 - 겨울, 강원도(상)

▲ 철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와 그 가족들이 살았던 까치발 건물들. 태백시는 2013년 12월에 까치발 건물 몇 채를 살려 철암탄광역사촌을 만들고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꾸몄다.
2016년의 새해가 밝았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쓰려니, 덕담 나누기조차도 민망한 세상이다. 지난 1월 2일부터 3일까지 강원도 태백ㆍ정선ㆍ영월 등지로 새해맞이 겨울여행을 다녀왔다.

2일 새벽, 백운역에서 양재역까지 가장 빠르게 가는 노선을 검색해보니 노량진역에서 내려 9호선으로 갈아타란다. 1호선 노량진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는 환승통로가 생겼다. 이거 언제 생겼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니 즉각 댓글이 달린다. 작년 10월 마지막 밤에 개통됐단다. 얼마 안 됐군.

양재역 12번 출구로 나가니 이른 아침부터 산행 떠나는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다. 양재역은 경부고속도로에서 가까워 대부분의 등산버스들이 출발하는 곳이다. 이번 여행은 내가 회원으로 있는 시민단체인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사업단이 주최하는 겨울기행이었다.

# 철암탄광역사촌

▲ 산동네 삼방동에서 바라본 철암 탄광.
치악산 휴게소에 들렀는데, 주차장에 웬 지붕을 씌워 놓았나 했더니 태양열발전판이었다. 11시 반께, 국내 석탄의 30%를 생산했던 옛 탄광도시 태백에 도착했다. 1970년대 당시 태백시 인구 14만명 중 철암에만 4만 5000명이 모여 살았다. 당시 광부 월급이 공무원의 서너 배나 됐다고 한다. 그래서 전국에서 광부들이 모여들었고, 사택과 상업시설 등을 지을 땅이 없어 하천에 지지대를 세우고 건물을 지었다. 그래서 ‘까치발 건물’이라 한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근ㆍ현대사의 모습들을 ‘남겨야하나, 부수어야하나’ 논쟁만 하다가 하나둘 사라져 버렸는데, 태백시에서는 다행히 2013년 12월에 옛 까치발 건물 몇 채를 살려 철암탄광역사촌을 만들고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꾸몄다. 잘한 일이다.

몇몇 식당은 새 단장을 해서 현재도 영업하고 있다. 철암탄광역사촌을 둘러보고 나서 ‘두멧길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래 토요일은 영업하지 않는데 우리 때문에 일부러 문을 열었다. 곤드레밥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 안의 연탄난로가 정겹고, 자식들과 손자들이 할머니에게 만들어드린 상장이 재미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철암의 광부들이 모여 살던 산동네 마을인 삼방동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동네 우물이 아직도 남아있다. 대문 앞 시래기 말리는 풍경을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계량기 돌아가는 걸 보니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철암역은 하루에 한 번 서울에서 중부내륙순환열차가 다니고, 하루에 세 번 백두대간협곡열차가 다닌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찍은 곳이다.

# 상장동 벽화마을

▲ 상장동 벽화마을을 둘러보고 있는 여행객들.
탄광촌의 애환 서린 모습을 벽화로 만든 벽화마을, 상장동 남부마을로 갔다. 2011년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벽에 그림을 그리고 동네에 이야기를 만들었다. 돈이 흔해 개들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데서 착안해 ‘입에 돈을 문 만복이’로 동네 캐릭터를 삼았다. 유입분 할머니 댁 대문에 그려 놓은 개도 돈을 물고 있다.

주인 할머니의 얼굴이 예뻐서 이름이 ‘이쁜이’였을 텐데 굳이 ‘설 립’과 ‘가루 분’자로 바꿔놓은 옛날 면사무소 직원의 작명 솜씨가 눈물겹다. 어떤 집에 ‘119 사랑의 집’ 팻말을 붙여주는지 궁금하다.

드럼세탁기를 닭장으로 쓰는 동네 사람들의 창조력이 놀랍고, 카센터 앞의 바닥에 앉아 졸고 있는 개가 한가하다. 이 집 개는 주인이 바닥에 깔아놓은 줄 길이만큼만 돌아다닐 수 있다. 우리도 저 개의 처지와 비슷한가?

#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알리는 표지석.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로 갔다.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한 건 검룡소 기념조형물이었는데 설명문처럼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매우 기괴한 모양이 되고 말았다.

숲 해설사 자격증도 있는 문화해설사 선생의 나무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부럽다. 문제는 들을 때는 다 알겠는데 돌아서면 금세 다 잊어버린다는 거다. 서울에서 오는 열차가 하루에 한 번 400여명쯤을 태우고 오는데 그중 여성이 385명이란다. 이상하게 이런 얘기는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남자는 다 어디 갔나?

생각해보니 이번 공정여행도 남성은 나 포함해 달랑 두 명이다. 검룡소는 정선 아우라지와 영월을 거쳐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만나고, 파주에서 임진강을 만나 김포에서 서해로 빠진다. 길이가 무려 514.4km나 된다.

#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

▲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 황지로 갔다. 시내 한복판에 발원지라니,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황지못 전설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장자못 전설과 똑같다. 황씨 성을 가진, 부자지만 인색한 시아버지, 시주하러 온 중에게 황 부자는 똥을 시주, 며느리가 몰래 쌀을 퍼다 주니 중이 말하길, ‘이 집을 연못으로 만들 건데 절대 돌아보지 말고 따라오라’고 했고, 결국 며느리는 뒤돌아보다가 업은 아기와 함께 돌이 됐다는 전설이다. 장자못 설화에는 개도 함께 등장한다.

작은 생활사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140년 된 너와집에서 (물론 너와집을 뜯어다 그대로 옮겨지었다) 강원도 전통 한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태백산민박촌에 짐을 풀고 다음 날 아침을 먹을 ‘태백산 가는 길’ 식당으로 가서 술 한 잔 했다. 선하게 생긴 주인 부부는 우리가 가져 간 수제 막걸리와 몽골 술 마유주도 마시라고 허락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도리어 우리 먹어보라고 강원도 옥수수막걸리와 감자전을 서비스로 내온다. 세상도 날씨도 추운 겨울, 태백산을 지키고 있는 부부의 마음이 따뜻하다.

# 태백산 석탄박물관

▲ 태백산 석탄박물관 내부 전시물들.

▲ 태백산 석탄박물관 내부 전시물들.
다음날 새벽 6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사위는 깜깜한데 그 시간에도 입장료를 받는다. 태백시가 몹시 부지런하다. 온도계는 영상 1도인데 바람 때문인지 날씨는 맵고 차다. 플래시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긴다. 태백산 속에도 달이 들어 있다. 하현이다. 시간상 정상에는 오르지 않았다. 태백산 반재에서 새날의 동이 터왔다. 비록 태백산 정상 천제단은 아니지만, 태백산의 기운이 정상에만 있는 건 아니겠지? 새해에 민족의 영산 태백산의 새벽 기운을 친구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매표소 직원들 말고도 부지런한 사람들은 또 있다. 잘 보이지도 않는데 벌써 막걸리와 어묵을 팔고 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몇 시에 올라왔나? 잠시 쉬었다 내려가는데 한 노인이 지게에 물통을 짊어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어묵을 팔던 사람들의 아버지인가? 삶은 이렇게 늘 엄정한 것이다. 군데군데 눈이 녹지 않아 하산 길은 제법 미끄러웠다.

당골광장은 눈 축제 준비 중인데 날씨 때문에 축제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눈 조각가들이 일하면서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니 전부 중국 사람이다. 이것도 인건비 때문인가? 지난밤 막걸리와 감자전을 서비스로 내온 식당 ‘태백산 가는 길’에서 아침을 먹고 나서 태백산 쪽으로 다시 올라가 석탄박물관을 관람했다.

태백산 입장권이 있으면 석탄박물관은 무료다. 박물관 벽에 안도현의 시를 세 개나 붙여 놓았다. 도현의 시가 이렇게도 쓰이는구나. 진폐로 망가진 허파도 전시해 놓았다. 몸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우리 아버지들의 상징 같았다.(다음호에 하편 계속)

글ㆍ사진/신현수 (사)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