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인천투데이이 주목하는 사람 ④]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 관장

인천시립박물관은 1946년, 공립 박물관 중 전국 최초로 세워졌다. 초대 관장은 석남 이경성 선생이다. 미술 학도였던 선생을 박물관계로 이끈 사람은 우현 고유섭 선생이었다. 박물관의 중요성을 얘기하던 우현 선생의 말에 감명 받은 석남 선생은 해방 후 인천시립박물관의 첫 관장이 됐다.

그 후 줄곧 퇴직 공직자가 관장이 되다 2013년 처음으로 개방형 관장 공모를 시행했다. 이명숙 전 관장에 이어, 2015년 3월 개방형으로는 두 번째이자 39대 관장으로 현 조우성(68) 관장이 임명됐다. 12월 28일 조 관장을 박물관에서 만났다.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며

인천시립박물관은 2000년 이후 외연이 확장됐다. 박물관 본관 산하에 한국이민사박물관ㆍ송암미술관ㆍ검단선사박물관ㆍ컴팩스마트시티 등, 분관 4개가 생겼다. 전체 직원 수가 100명이 넘는다. 지난 봄 관장으로 취임한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조 관장에게 근황을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과분한 자리라 맡은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사회적 활동으론 마지막 봉사의 시간일 텐데, 박물관이 시민사회 속으로 다가갈 수 있게 고민하는 게 내 일이다.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한다”

이어 조 관장은 “70년 역사의 인천시립박물관이 서울과 가까워 등하불명(燈下不明)이었지만 송도에 국립 세계문자박물관을 유치했다. 전국의 유명한 박물관과 비견되는, 경쟁력 있는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했다.

덧붙여 “인천의 화두가 ‘관광’이다. 외국 관광객이 왔을 때 인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박물관이 되게 백 데이터(back data=원본 자료) 복구작업을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시립박물관 본관은 경치와 공기가 좋은 연수구 옥련동 청량산 자락에 있다. 박물관 우현마당에서 내려다보면 인천대교와 송도가 훤히 보인다. 하지만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박물관을 찾기에는 쉽지 않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제일 처음 지킬 게 국경선이고, 다음은 정부, 세 번째가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한 지역이나 국가의 ‘집단기억의 저장소’이면서 심장부다.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를 시민과 국민들에게 전시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고답적인 골동품을 전시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21세기 박물관은 지역사회에 문화센터 구실을 해야 하며 과거와 현재가 대화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돼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려면 재정이 필요한데 시정부의 재정도 중요하겠지만, 메세나(Mecenat) 운동을 벌이거나 박물관재단후원회를 만들 예정이다”

박물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것

▲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 관장
조 관장은 인천지역의 다양한 박물관을 건립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많은 역할을 했다.

“2002년 안상수 전 인천시장 재임시절 미주이민 100주년 기념대회를 하와이에서 한 적이 있는데, 안 시장이 하와이 교민들에게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초창기 이민자의 상당수가 인천사람이었고, 인천은 그들에게 뜻 깊은 지역이었다”

조 관장은 인천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짓자고 제안했다. 또한 동구 수도국산박물관, 중구 개항박물관과 자장면박물관 건립도 제안했으며, 자문위원ㆍ추진위원 등의 역할로 박물관을 짓는 데 힘을 보탰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역사자료와 골동품 등에 관심이 많아 서울 인사동과 장안평 등을 수시로 다니며 골동품을 모으기도 했다. <인천일보> 기자로 일할 때는 쉬는 날이면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시내 고서점을 돌며 향토사 연구에 매진했다. 자료 검색을 위해 전국의 각종 박물관을 찾다 보니 박물관에 대한 조예도 깊어졌다.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위원, 문화재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다른 지역의 근현대 유물을 심의하러 다니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자연스레 박물관으로 향하게 했다. 임기 2년 동안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얼까?

“인천에서 발굴된 유물 수천 점이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수장고도 적고 여러 가지 여건상 돌려달라고 할 조건이 안 된다. 그러나 박물관으로서 기능을 갖추려면 발굴단이 있어서 우리 지역을 우리가 조사하고 연구해야한다. 그래서 이번에 어렵게 고고학 전공자 3명을 뽑았다. 또한 지역에서 발굴한 유물의 연구 성과를 발표해 전시하는 일도 할 것이다. 검단에 선사박물관이 있다. 사람들은 인천의 역사를 기껏해야 고려나 고구려 또는 일제강점기나 개항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만 년 전인 구석기 때부터 인천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자료를 모아 이를 시민들에게 인식시킬 것이다”

조 관장은 인터뷰 내내 ‘공부해야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공부해서 자신의 학문적인 수준을 높이는 것이 박물관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전 직원이 공부하는 게 일이다.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그것보다 우선해야할 일은 발굴ㆍ조사ㆍ연구 등, 공부하는 것이다.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한다. 실력을 쌓고 경쟁력을 얻고 나서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찾아가는 박물관’은 2016년에도 계속

인천시립박물관은 올해 대한민국 최초로 마을박물관을 만들었다. 교육부가 지원한 사업인데, 남구 용현2ㆍ5동의 토지금고 이야기를 담아 박물관을 만들었다. 기획 단계부터 운영까지 마을주민들이 함께했다.

“모든 도서관ㆍ박물관ㆍ문화원에서 인문학을 얘기한다. 그러나 살아있는 인문학이라고 하는 건 우리의 삶과 직결돼야한다. 전국 어디에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자료를 찾고 토론해 만든 마을박물관이 있었나? 유물의 수준은 미미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찾는 게 진정한 인문학이다. 새해에도 마을박물관 운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조 관장의 이름 뒤에 붙여진 직업은 다양했다. 등단 시인이며 국어교사였으며 <인천일보> 기자를 하기도 했다. 또한 향토사학자로 지역의 역사를 조사ㆍ연구하기도 하더니 시립박물관 관장이 됐다. 많은 이력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게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물었다.

“‘나이 사십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 시(詩)를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문사에서 일을 해보니 산문의 힘을 깨달았다. 지금 박물관에서 하는 일도 재밌다. 모든 일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얼마나 열정을 쏟았느냐의 문제다. 임기 끝나고 계획하고 있는 것도 없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이 박물관장이다. 이 직책을 사심 없이 잘 할 수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는 것만도 축복이다. 더 바란다면 과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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