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대통령의 자진 사퇴. 필자가 살고 있는 독일의 이야기이다. 2012년 2월, 10대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 크리스티안 불프의 자진 사퇴는 독일 사회에 커다란 충격이었다. 임기가 2년 정도 지났을 때인데, 갑작스런 자진 사퇴는 독일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독일’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빈틈이 없고 고집스러운, 그래서 누구보다 공정하고 정확한 사회, 안전한 나라로 인식되기에 이 같은 정치적 충격은 더 큰 관심을 갖게 했다.

신문사, 저금리 융자 대출 의혹 제기

불프 대통령의 자진 사퇴 내용을 살펴보면, 저금리 융자 대출과 관련한 비리 의혹으로 시작한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니더작센주 총리로 재직 당시, 평균 이자보다 낮은 금리의 은행 대출을 받아 자택을 구입했고, 기업인 친구로부터 거액의 돈을 빌린 사실이 기자들에게 포착됐다. 자신의 비리 내용을 덮기 위해 불프 대통령은 언론사 편집장과 신문사(악셀 스프링거) 사장에게 협박성 전화를 걸었다. 이 협박성 전화는 전 독일 언론인들은 물론 전 국민이 그를 불신하게 했고, 대통령으로서 자질 부족이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진보, 보수, 중도 성향의 모든 신문사가 불프의 또 다른 비리 혐의를 폭로하는 데 혈안이 됐다. 휴가지 호텔 무상 제공, 자동차 구입 특혜, 영화 제작을 위한 로비, 육아 돌보기에 무상 특혜 등, 기업인들과 유착관계에서부터 대통령의 젊은 아내 베티나 불프의 사생활까지, 언론은 폭로의 폭로를 이어갔다.

검찰, 대통령의 소추 면책 특권 정지 요청

언론의 지속적인 신상 털기와 더불어 검찰의 움직임은 불프 대통령을 더욱 압박했다. 대통령의 면책 특권은 현직 대통령의 검찰 조사를 불가능하게 했는데, 니더작센주 검찰은 대통령의 소추 면책 특권 정지 요청을 단행했다.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한 일이었다. 언론과 검찰, 그리고 여야 정당은 물론 국민들의 여론이 불프 대통령의 사퇴를 불가피하게 했다. 불프의 정치적 지지 세력들도 점차 그의 사퇴를 인정했다.

불프 대통령은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그리고 세련된 매너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으로서 독일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부도덕한 사채 의혹이 언론에 폭로되고, 검찰이 대통령의 ‘수사 면제’권 철회를 연방의회에 요청하면서 불프 대통령은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정치권력과 타협하지 않은 독일 언론과 검찰

요즘 한국의 정치 뉴스를 보면, 불프 대통령의 사퇴를 가능하게 했던 독일의 언론과 검찰이 떠오른다. 언론과 검찰이 정치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제 역할과 기능을 했던 이 사례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홍보와 선전의 결과가 아닐 것이다. 독일 사회의 구성원과 사회 기관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가 있기에 ‘독일’이라는 국가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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