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인천 동구 만석동 ‘우리미술관

“이 작품은, 마을 주민들이 폐타이어에 흙을 쌓아 쪽방 앞에 만든 화단에서 꽃이 피는 걸 보면서 작가가 희망과 생명을 느껴 만든 것입니다. 이 그림은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풍경을 캔버스에 흙을 이용해 그린 거고, 이 설치미술은 마을 주민들이 깐 굴 껍데기를 작가가 얻어와 다섯 번 닦아 설치한 겁니다. 굴 껍데기 손질하느라 지문이 없어졌다고도 하더라고요”

미술관 안내원의 친절한 설명에 처음 와본 괭이부리마을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술관 가운데에 설치한 굴 껍데기를 이용한 작품이 미술관의 무게중심 같기도 했다. 굴 껍데기는 한때 괭이부리마을 일대 집의 기초를 다지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굴을 까는 일을 생계로 하는 주민이 있다.

지난 8일, 인천 동구 만석동 9번지 괭이부리마을에 위치한 ‘우리미술관’을 다녀왔다. 이 사업의 기획자인 인천문화재단 관계자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전시관의 안내원, 마을 주민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교육관에서 만난 총괄기획자 등, 많은 관계자가 우리미술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철과 물, 그리고 흙

▲ 최선미 인천문화재단 직원.
만석동은 조선시대 세곡을 쌓아두던 창고와 포구, 수문통까지 연결된 수로가 있던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1905년 일본인이 갯벌을 메워 새로운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정미소와 간장 공장을 세웠다. 이후 조선기계제작소(현 두산인프라코어)와 일본 군수공장이 들어섰고 1940년대에 비로소 ‘괭이부리마을’이 형성됐다. 해방과 전쟁 발발 후 황해도 출신 피란민들과 남쪽에서 올라온 이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기도 했다.

괭이부리마을은 김중미 작가가 펴낸 베스트셀러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쪽방촌 빈민지역이다. 소설에는 마을의 어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괭이부리말이 있는 자리는 원래 땅보다 갯벌이 더 많은 바닷가였다. 그 바닷가에 ‘고양이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었다. 호랑이까지 살 만큼 우거진 곳이었다던 고양이섬은 바다가 메워지면서 흔적도 없어졌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곳은 소나무 숲 대신 공장 굴뚝과 판잣집들만 빼곡히 들어찬 공장지대가 되었다. 그리고 고양이섬 때문에 생긴 ‘괭이부리말’이라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우리미술관 개관전(展)인 ‘집과 집 사이-철, 물, 흙’은 빼곡히 붙어 있는 판잣집들과 좁은 골목길, 집과 집의 벽이 하나로 붙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괭이부리마을을 표현했다.

강혁ㆍ구본아ㆍ김순임ㆍ이상하ㆍ도지성 등, 인천 작가 5명은 동네를 직접 걷고 만지고 냄새 맡고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의 역사와 추억을 느꼈다. 이들은 만석동을 상징하는 세 가지를 주제로 뽑았는데, 마을에 이웃하고 있는 철강단지(철)와 만석부둣가(물),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흙)가 그것이다.

공공미술로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난 6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작은 미술관 조성 운영 사업’을 공모했다. 인천문화재단은 동구와 협의해 응모했고, 지난 9월 전국 43개 단체 중 선정된 6곳에 포함됐다.

“인천에는 시립미술관이 없어요. 그래서 작은 미술관이 필요합니다. 공ㆍ폐가가 많은 중구와 남구, 동구를 중심으로 고민했어요. 중구는 작은 갤러리가 많이 생기고 있고 아트플랫폼도 있어서 활성화됐고, 남구도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작은 활동이 꾸준히 벌어지고 있는데, 동구는 그런 게 거의 없었죠. 공가와 폐가의 비율도 40%로 가장 높았고요”

만석동을 선정한 이유를 묻자, 인천문화재단에서 8년째 근무하는 최선미씨가 한 말이다. 최씨는 재단 기획사업팀에서 지역공동체문화 만들기 사업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대학에서 시각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올해 초 처음으로 공공미술 커뮤니티 업무를 맡았다. 처음에는 업무의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사업을 진행하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단다.

“다른 사업은 짧게 해도 성과가 나지만, 공공예술은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사업이에요. 이 사업을 시작하러 동네를 방문했을 때, 처음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인사도 안 받으셨어요. 계속 찾아오니까 인사를 받고 말도 걸어오시더라고요. 미술관도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찾아주시고요. 이제는 이 동네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우리미술관은 전시관과 교육관으로 구성돼있다. 전시관에선 작가 5명의 개관전을 하고 있고, 교육관에선 주민이 참여해 만든 작품을 전시한 ‘주민참여전시-기억의 동네’전이 열리고 있다. 개관전이 열리고 있는 공간은 동구에서 소유하고 있던 공방이었다. 못 쓰거나 손상된 가구를 고치는 이 공간을 마을 예술가가 운영하기로 했는데, 그동안 방치돼 전시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의 작품을 전시한 교육관은 ‘희망키움터’라는 공간으로, 2013년 6월에 만석동 주민들의 자활 공동작업장으로 만들어졌다.

“9월에 선정된 이후 개관 두 달 전부터 주민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만들기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빵을 만드는 ‘베이킹 프로그램’과 도자(기)를 만드는 ‘도자 프로그램’이었죠. 주민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게 음식을 나눠먹는 거라고 생각해 베이킹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도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는 미술관 간판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미술관의 총괄기획자인 정상희씨의 말이다. 정씨는 문화예술로 도시 재생,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 ‘스페이스 아도’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도 주민참여 전시에는 개관 전시에 참여한 도지성 작가와 함께 ‘내가 사는 동네’와 ‘나의 가족’이라는 주제로 그린 작품 60여점이 걸려있다. 다섯 살 아이에서부터 초등학교 3학년 학생까지, 29명이 그린 작품들이다.

문턱 없는 ‘우리’미술관

▲ 인천 작가 5명이 철·물·흙을 주제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우리미술관 개관전을 하고 있는 전시관의 내부 모습.
교육관에 들어서자, 미술관 관련 사무를 보는 이들이 있었다. 사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심스러워했더니, 최선미씨가 ‘불편했냐?’고 계속 물었다.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편한 곳이어야 하는데,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기 위해서란다. 우리미술관이 취지에 맞게 운영되길 바라는 열정이 느껴졌다.

“우리미술관은 크고 거창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미술관과는 달라요.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전문 작가의 그림이 아닌 ‘내 그림’이 전시될 수 있는 문턱 없는 미술관입니다. 그래서 미술관 이름에 ‘우리’라는 단어를 넣어 주민들과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노력했어요. 이곳에 오면 누군가 따뜻하게 맞아줄 사람이 있는, 내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활용됐으면 좋겠어요”

최씨는 주민들이 뭘 원하는지를 잘 들어서 마을공동체를 토대로 한 미술관을 만들고 싶어 했다.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들어와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 동네에는 젊은 사람이 별로 없고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 많아요. 주로 집에서 티브이(TV)를 보거나 주무시는데, 외로움을 많이 타시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을 때 무언가 배우기보다는 누군가와 얘기가 하고 싶어서 오는 분들이 더 많아요.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미술관이 여러 사람이 어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내년에도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면 초상을 그려주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리면서 얘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하죠”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진행한다. 사업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최씨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었다. 동구가 우리미술관을 운영하고 지원할 수 있는 조례를 최근에 제정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없어도 자치구에서 미술관을 계속 활용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동구와 세부적인 내용을 협약하는 일이 남았지만, 주민들에게 따뜻하고 좋은 공간인 ‘우리미술관’이 지속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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