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돌봄노동 종사자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면서 속담 바꿔보기를 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를 ‘여자 셋이 모이면 김장은 거뜬하다’로 바꾸니 고개를 끄덕인다.

공감정도는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다르다. 여성에게 김장은 자기 일이지만, 남성에게는 꼭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이른바 ‘바깥’일을 하고 있어도 대부분의 ‘집안’일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일과 가정 양립정책’은 여성이 일하면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함이 아닌, 여성에게 두 가지를 다 잘하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떠나지 않는 이유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선 차장이 신입사원 안영이에게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아. 워킹맘은 늘 죄인이지. 회사에서도 죄인, 어른들에게도 죄인,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라고 한 말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통계청이 12월 2일 발표한 ‘2015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경력단절여성은 올해 4월 현재 205만 3000명으로 작년 4월보다 8만 7000명(4.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기혼여성 중 경력단절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1.8%로 5명 중 1명은 결혼ㆍ임신ㆍ출산ㆍ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됐다.

결혼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의 비중은 2011년 47.0%였다가 이후 매해 떨어져 올해엔 38.8%로 줄었다. 하지만 임신ㆍ출산ㆍ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지난해 49.7%에서 올해 54.3%로 늘었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함을 보여준다.

여성의 경력단절은 ‘유리천정’ 문제로 연결된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2012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시장형ㆍ준시장형 공기업 30개의 여성 신규채용과 승진 현황을 분석한 것을 보면, 신규채용 인원 2501명 중 여성은 490명(19.6%)에 그쳤다. 여성을 한 명도 채용하지 않은 곳이 11개나 됐다.

여성들에게 채용보다 더 높은 문턱은 승진이다. 그래서 유리천정이라 한다. 공기업 30개의 임원 148명 중 여성은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과 홍표근 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 단 두 명뿐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공기업 여성 임원을 30%로 높이겠다는 법률 개정안까지 나왔지만, ‘법 따로 현실 따로’인 셈이다. 공기업부터 여성 임원 할당제를 의무화하면 달라질 수 있다. 현재 노르웨이ㆍ핀란드ㆍ스페인ㆍ프랑스 등이 여성 임원 40%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ㆍ가정 양립정책이 여성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다. 유럽 각국의 저출산 정책을 분석해보면, 성평등을 정책 목표로 정하고 이를 위한 정책들을 시행한 경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와 출산력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의 저출산ㆍ고령화 사회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라는 주제의 포럼이 지난 3일 인천여성가족재단에서 열렸다. 포럼 참여자들의 가장 큰 요구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이었다. 여성 참여를 형식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실질적으로 반영해나간다면 변화는 시작된다. 대책이 아닌 원인해결로 나아가면 새로운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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