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노동운동의 메카, 인천의 노동자교육을 혁신하다
3. 민주노총 교육사업의 현황과 전망

<편집자 주>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전국적으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노동조건 향상이 경제의 선순환으로 내수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노조 설립과 운영의 동력은 다양한 형태의 학습 소모임을 기본으로 하는 노동자교육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시대 이후 노동운동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이와 함께 노동자의 삶은 황폐화되고 있다. 노조 활동의 위축과 노동교육의 부재로 인해 경제의 선순환 고리가 끊긴지 오래됐으며, 비정규직 양산과 실업률 상승으로 전체 세대가 고통 받고 있다.

<인천투데이>은 ‘노동자교육기관’과 함께 현 노동자교육을 진단하고 21세기에 맞는 노동자교육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교육사업의 현황과 전망을 살펴본다. 다음 호에선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충북본부의 교육 현황을 다룰 예정이다.

민주노총 20년, 교육 사업을 재설계하다

민주노총은 1994년 건설됐다. 민주노총 교육원은 ‘민주노총 20년! 교육사업 실태 개요’라는 제목의 보고서 발간을 준비 중이다. 교육 사업을 혁신하기 위해 실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본방향을 정리하고 있다.

▲ 박혜경 민주노총 교육원장.
민주노총 교육원 사무실(서울시 중구 정동)에서 박혜경(55) 교육원장과 최은계(40) 교육국장을 인터뷰했다.

박 원장은 “사람이 성장하게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인데 현안 중심으로 돌아가는 총연맹의 현실 조건상 쉽지 않다”고 말한 뒤 “총연맹만의 사업이 아닌, 전국에 존재하는 노동교육단체와 일상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해 시너지 효과를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교육사업 집행체계는 교육ㆍ선전홍보ㆍ문화미디어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사업들을 보다 유기적으로 연계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2006년 교육원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중장기 교육과 간부 재생산 영역 사업을 교육원 중심으로 진행하고, 일상적 교육선전 사업은 교육선전실 사업으로 분리ㆍ정립했다.

최은계 국장은 “민주노총이 건설되기 전에는 투쟁방침 중심의 교육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시대였다. 1987년 노동자들의 요구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였다. ‘두발 자유화’를 외치고 사무직과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식당이 다른 것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온몸으로 부당함을 느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1990년대 투쟁으로 단련되면서 노조 간부들이 형성됐다. 현장 동료들은 물론 사회적 지지를 받는 분위기였다”라고 한 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겪은 노조 간부들은 은퇴 했고, 젊은 노동자들은 정서가 다르다. 젊은 간부들을 육성해야한다”고 말했다.

대상에 맞는 교육 내용과 체계 갖춰야

민주노총의 조합원수는 현재 70만여명이다. 단위사업장(이하 단사)은 2032개이며, 가맹 조직(산업별)과 지역본부는 16개다. 노조 안에 교육수준과 성격이 다른 다양한 노동자가 분포돼있어, 대상에 맞는 교육을 진행하거나 시도하고 있다.

신입 조합원 교육은 단사에서 ‘노조란 무엇인가?’와 ‘노조의 역사’ 등을 주제로 진행한다. 조합원 교육매뉴얼은 다양하게 구비돼있고 예전부터 해온 노하우가 있어 풍부하다. 특히 요즘은 영상자료를 많이 활용한다. 신임 간부교육은 산별노조나 연맹, 지역본부에서 진행하고, 10년 이상 활동한 중견ㆍ핵심간부들은 총연맹에서 교육한다.

최 국장은 교육사업 담당자로서 교육의 중요성을 체감하는데 특히 요즘은 교육도 교육이지만 관계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970년대 노동운동이 정권으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지만 노동자 내부의 분란은 없었다. 원풍모방노조든 YH노조든 학습소모임 활동이 왕성했다. 원풍모방노조의 경우 2박 3일 조합원 교육을 1년에 10여 차례 진행했고, 그것이 노동자들의 연대의식을 높였다. 그러나 요즘은 간부들끼리 친해도 사적인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이게 지금의 노동운동을 어렵게 하는 하나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요즘 총연맹은 ‘참여’식 교육을 많이 도입한다.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참여자들이 발언하는 교육으로 서로 고민을 알아가고 인간적인 관계가 두터워지며, 이는 곧 조직력으로 나타난다. 교육원에서도 ‘소통’을 화두로 삼고 있다. 간부들은 조합원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어떤 리더가 될 것인지 고민한다.

최 국장은 연맹 중에서는 서비스연맹이나 공공연맹,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이 상대적으로 교육 사업을 잘하고 있다고 꼽았다.

총연맹 교육원, 핵심간부 교육에 사활 걸다

▲ 민주노총 교육원이 연 ‘4기 노동운동 지도자과정’ 참가자들이 분반 토론을 하고 있다.<사진출처·민주노총 교육원>
교육원은 10년 이상 된 간부들을 대상으로 지도자층을 형성하기 위해 기획한 ‘노동운동 지도자 과정’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5기를 진행했다. 이 과정은 3개월간 매달 1박 2일, 총70시간 진행된다. 대안사회에 대한 고민과 전망, 리더십, 조직진단 등을 교육한다.

박혜경 원장은 “기수 별로 20~30명 정도 참여해 큰 성과라 보긴 어렵다. 그러나 중견 활동가에게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10년 이상 노동운동을 한 활동가들은 ‘운동의 전망은 있는가?’ ‘나는 잘 살아왔나?’ 등을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전망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노동운동을 그만두려는 간부가 새롭게 결의한 사례도 있다. 또한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며 대안사회를 그려보기도 한다. 하나의 정답이 아닌, 토론으로 조금씩 찾아나가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을 마친 간부들을 대상으로 보수교육과정을 진행할 계획인데, 아직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 지도자 과정은 최고 지도자 과정으로서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대의체계 안에서 ‘공식 교육과정’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이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밖에, 총연맹은 다양한 주제로 봄ㆍ가을에 계절강좌를 열고 있다. 갈등조정해소법, 포토샵ㆍ영상편집 등 실무교육, 학습소모임 운동, 리더십, 인권감수성, 자기치유 등, 교육프로그램에 여러 가지다. 한나절 진행하는 것에서부터 1박 2일 진행 등, 형태도 다양하다.

박 원장은 “새로운 교육 내용과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개발하는데, 나름 성과가 있다. 그 중 일부는 산별노조(연맹)나 지역본부로 확대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계절강좌 안에 노동자학교나 노동대학, 정규 간부과정을 포함했지만, 지금은 분리했다. 계절강좌는 노동교육 내용과 영역, 범주를 확장하고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과 내용을 생산하는 역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단체네트워크와 교육활동가대회,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박혜경 원장은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강화해야한다’는 원론적 얘기에는 동의하지만, 지역본부는 여전히 한 사람이 예닐곱 개의 역할을 같이 해 교육역량이 축적되지 않는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교육 담당자가 바뀌거나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사업을 맡다보니 교육 담당자 회의를 해도 구심력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시야를 넓혀보니, 노동자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교육단체들이 있었다. 그 역량을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교육단체네트워크를 구성했다. 1년 반 운영하다가 지금은 중단됐는데, 복구할 계획이다. 총연맹 교육에 교육단체가 함께한다면 단체도 활성화할 수 있고 노동현장도 큰 힘이 돼, 서로 협력하면 좋다. 네트워크 회의에서 토론하고 활동사례를 공유하면서 친숙해졌는데, 시스템을 복구해야한다”

하지만 박 원장은 교육단체네트워크를 현실적으로 이끌어야할 총연맹이 재정적으로나 사업적으로 준비가 덜 돼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교육단체네트워크를 총연맹 차원에서 조직하면서 지역본부에서도 고민을 같이 했는데, 지금 울산지역본부는 모범적으로 교육단체와 공동으로 교육 사업을 논의하고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네트워크로 무슨 사업을 할 수 있는지 물으니, 박 원장은 “예를 들면, 협력 강좌 같은 것이다. 단체에서 하고 있는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그대로 조합원을 상대로 진행하는 거다. 조합원들한테 여러 형태의 교육이 필요하니까, 조합원들한테는 다양한 교육을 제공해서 좋고, 단체는 활동을 확장해서 좋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민주노총은 2007년부터 교육활동가대회를 열었다. 초창기엔 1년에 한 번 열다가 최근에는 2년을 주기로 개최한다. 올해는 12월에 1박 2일 일정으로 5회 교육활동가대회를 열 예정이다. 전국의 단사에서부터 지역본부나 산별노조(연맹), 지역 교육단체 담당자가 모인다.

박혜경 원장은 “교육활동가대회가 한국사회 노동교육과 관련한 인적ㆍ내용적 교류로 진보진영 담론 형성의 역할을 하기 위해 ‘한국사회노동교육포럼’과 같은 형식을 고민하고 있다. 노동교육의 사회화를 위한 주요 사업이자 거점으로 만들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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