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김묘진 작가

인천시는 지난 9월 20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중앙전시실에서 ‘인천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했다. ‘2015 대한민국 독서대전’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다. 인천지역 출신으로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장르별로 양진채 소설가, 이경림 시인, 김묘진 수필가, 이성률 아동문학가가 초대돼 시민들과 대화했다.

지난 13일 남동구 구월동에 사는 김묘진(60ㆍ사진) 작가를 그녀의 집에서 만났다. 그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한국문인협회 인천지회(이하 인천문인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책이 좋았던 소녀, 서른 넘어 글을 쓰다

▲ 김묘진 작가.
김묘진 작가는 인천 중구 내동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인천에 살고 있다. 글씨를 알기 전인 네다섯 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책에 그림도 나오잖아요. 그걸 보면서 어른들한테 그림이 무슨 내용이냐고 묻기도 하고, 그냥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 일본유학을 다녀온 아버지 덕에 집에 책이 많았다. 아버지는 책읽기를 좋아한 그녀를 무척 예뻐해주셨다.

박문초교를 다닌 김 작가는 교내 백일장이나 전국대회에서 동시를 써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김 작가가 태어난 1950년대는 중구 내동이 인천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였다. 농촌 삶을 막연하게 갈망한 그녀에게는 자신의 집이 도시 한복판에 있는 게 불만이었다. ‘나는 왜 농촌에서 자라지 못할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살기도 했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후 딸 셋을 낳았다. 아이들이 커가고 있는 서른 중반, 갑자기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야하는가’ 하는 질문이 내면에서 솟구쳤다.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겨서 마음이 힘들었을 때였어요. 주부 우울증 같은 거였죠.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인지 문학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라디오 프로그램 중 ‘임국희의 여성살롱’이 있었는데, 인기가 대단했죠. 제가 사연을 써서 엽서로 붙이면 자주 채택되곤 했어요. 인천시나 그때 살고 있던 서구에서 주최한 백일장에서 산문을 써서 당선되기도 했고요”

그 후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글을 썼는데, 어느 날 문득 다른 사람의 수필집을 읽다가 내 글도 다른 수필가의 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노내기’의 꿈

1995년 인천 중앙도서관에서 수필가 김시헌 선생이 강의했다. 친구가 김 선생을 소개해줬다. 김 선생은 김 작가의 글 몇 편을 읽더니 등단을 권유했다. 그녀는 1996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그로부터 5년 뒤 2001년 첫 작품집 ‘노내기의 꿈’을 세상에 선보였다. 김 작가는 둘째 딸과 같은 해에 숭의여자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2000년, 그녀 나이 마흔네 살 때다.

“신입생을 ‘새내기’라고 하잖아요. 딸아이가 ‘엄마는 노내기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필집 제목을 그렇게 붙여 봤어요”

만학의 길에 들어선 김 작가는 내처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인하대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는 소설 강좌를 듣기도 했다. 삶과 작품에 깊이를 더해가고 있을 무렵, 인천문인협회 사무국장직을 제안받기도 했다. 그러나 같이 활동하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그녀가 처음 글을 쓸 무렵 마음고생을 했던 것처럼 ‘이렇게 계속 살아야하나’ 하는 고민에 깊이 빠졌다.

인도 철학자인 오쇼 라즈니쉬나 달마, 부처 등 영성을 다룬 책들을 평소 즐겨 읽는 김 작가는 3년간 일했던 사무국장직을 그만두고 한 달간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그 이듬해엔 남편과 히말라야를 다녀오기도 했다. 두 차례의 인도 여행을 다녀온 후 2005년 ‘김묘진의 인도 여행기 샨티샨티(열린나무, 2005)’를 출간했다. ‘샨티’란 인도어로 ‘평화’를 뜻하며, 이 책은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우수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필집 ‘밥 한술 걸쳐 놓고’(이담북스, 2008)와 장편소설 ‘그늘 꽃’(이담북스, 2010)도 출간했다. 한 여자가 결혼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불우하게 사셨던 아버지를 제가 마음으로 받아들이질 못했어요. 돌아가시고 나니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그늘 꽃’ 주인공은 여자지만, 아버지를 투사했어요”

문학이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

▲ 인천시가 지난 9월 20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중앙전시실에서 진행한 ‘인천작가와의 대화’ 모습.
‘샨티샨티’는 다른 지역에 사는 독자로부터 팬레터를 받을 만큼 반향을 일으킨 반면, 소설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았다. 고생하면서 소설을 썼지만 읽어주는 독자가 별로 없었다.

“계속 써야하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문학이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언제나 ‘써야한다’는 생각을 해요. 하늘이 내린 천형(天刑)처럼이요. 제 문학의 원천은 가족이에요”

김 작가는 가족이나 집안끼리의 갈등이 심했을 때마다 글쓰기로 자신을 바라봤다. 그러다보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문학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며, 아픔을 승화하는 무기에요. 일기 같은 거 쓰면서 그런 경험들 하잖아요. 제가 처음 글을 썼던 30대 중반에 이와 같은 경험을 한 거죠. 글쓰기는 전문적인 교육이 별로 필요하지 않아요. 책을 많이 읽고 자기의 마음을 풀어내는 게 가장 중요해요. 글쓰기를 하다보면 관조하게 돼요. 불교에서 ‘자신을 지켜봐라, 알아차려라’라고 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수행인 것 같아요. 연기하는 배우들이 다양한 경험을 했을 때 내면연기를 잘 하듯, 아픔과 상처가 예술작품에 깊이를 더하죠”

행복한 삶에 문학을 더하다

지난해 말 인천문인협회 송년회 때 김 작가가 소속돼있는 수필분과는 연극 한 편을 준비했다.

“분과별로 장기자랑을 하기로 했어요. 사람들과 얘기하다 요즘에는 남성들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권위가 떨어지고 처지도 좁아지는 경향이 있으니 ‘남성 장례 퍼포먼스’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제가 희곡을 썼습니다”

다들 재밌게 놀았는데 작품을 그냥 두기 아까워 김 작가는 90분짜리 희곡으로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개신교와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접했다. 현재는 정토회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다.

“저는 문학을 종교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지만 의지하고 싶은 거죠. 그러나 문학에 매달리기보다 내가 행복한 삶을 사는 데 문학을 더한다고 생각해요. 전문 작가인데 너무 안이한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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