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원
차이나타운을 떠올릴 때 기억의 제일 앞부분을 차지하는 건 청ㆍ일 조계지 경계계단 위에 앉아 있던 노인들이다. 아직 석등이나 공자상이 없던 때였고, 조경도 다듬지 않아 계단만이 남아 있는 휑한 장소였던 시절이다. 가끔 계단 한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 청소년들과 마주친 적도 있다. 삼삼오오 둘러 앉아 떠들고 웃는 모습이 여유 있어 보였다.

한가롭게 보내던 세월은 이제 차이나타운에서 찾아볼 수 없다. 계단으로 주민들을 끌어 모은 건 햇빛과 풍경이었다. 툭 트인 계단 위에서 항구를 바라보면 추운 날에도 하루 종일 앉아 해바라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 지금은 그런 여유가 없다. 계단을 오르다가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는 것도 뒤따라 오르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무엇보다 조경을 위해 해놓은 각종 시설물과 나무들이 마음을 조급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차이나타운에 ‘베이징로’나 ‘난징로’ 등, 중국 유명 도시나 거리의 이름을 딴 테마거리를 만든다고 한다. 유커들의 자부심과 이국적인 매력을 위해서 그런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가 달렸다. 중국인들의 자부심까지 배려하면서 관광지를 만들어야할 정도로 인천이 매력 없는 도시였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베이징로’를 걸으면서 이국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마음부터 앞선다. 송월동 동화마을, 러시아 특화거리, 개항 각국 거리 등이 등장할 때마다 ‘짝퉁’ 논란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이나타운은 개항기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적어도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그렇다. 신문물의 유입과 항구를 통한 각국 외국인들의 출입이라는 과거의 경험이 장소를 기획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는 모양인데 지금 차이나타운에 가서 그런 걸 접하는 건 어렵다. 무엇보다 ‘중국인 마을’이 조선 땅에 생긴 마을이란걸 간과하고 있다. ‘조선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거기에 중국의 색채를 덧씌우려고 하는 건 개항장에 담긴 조선의 역사를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행위다.

지인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중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자부심을 느끼는 곳 중의 하나가 동네마다 있는 향교라고 한다. 자신들의 조상이 이역만리 남의 땅에 와서 이렇게 추앙을 받고 있으니 중화민족의 힘을 맘껏 느끼고 간다고 한다. 중국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해서 향교에 모택동의 위패를 갖다 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마을을 살리고 상권을 회복하려고 고심하는 기획자들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너무 과하다. 역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콘텐츠다. 약간의 숨결만 불어 넣어주면 된다. 가령, 백범 김구와 인천감리서 터의 일화는 얼마나 흥미로운가. 외국인들이 머물 조계를 조성하기 위해 집과 무덤을 불태우고 쫓겨나야했던 조선인들의 처지는 얼마나 가슴 아픈가. 경인철도의 끝, 인천역을 들고나던 그 숱한 사람들의 사연들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을 거다.

조계지에 울타리를 쳐 놓고 개항기에 갇혀 가꾸려하는 생각도 버려야한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길을 건너고 언덕을 오르면 인천의 아름다운 풍경과 흥미로운 사연을 보여주고 들려줄 곳이 아주 많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이나타운 언덕길에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다. 차이나타운의 매력을 ‘베이징’에서 찾으면 안 된다. 차이나타운은 인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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