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만난사람]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윤식(사진) 인천문화재단(이하 재단) 대표이사를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약속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김 대표이사가 일주일에 두 번씩 인천지역 예술인이나 예술단체를 방문하고 지역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사에 참여하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이사는 2013년 12월 재단 4대 대표이사로 임명됐다. 임기는 2016년 12월 6일까지다.

해결하긴 힘들어도 소통과 공감하기 위하여

▲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큰 규모의 단체보다 작은 개인스튜디오나 창작실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을 주로 찾아간다. 사단법인이나 제도권에 있는 단체가 아닌, 풍족하지 않은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내가 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지만 작업환경을 직접 눈으로 보고, 힘들다는 빤한 얘기를 듣더라도 위로와 공감을 느끼고 소통하려한다”

주 2회 일정이 만만치 않지만 김 대표이사는 봄부터 지역 예술가와 만남을 진행했고, 여름 휴가철 잠깐 중단했다가 9월부터 다시 시작해 10여 군데를 다녔다.

그는 “바람도 잘 통하지 않는 덥고 습한 작업실에서 전기세가 아까워 조명과 선풍기 사용도 아낀다는 예술가들을 만날 때면 안타깝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담론을 형성해 공부하고 뿌리를 내리려는 지역 예술인들이 고맙다”고 했다.

추억의 장소, 스토리텔링으로 관광명소로 거듭나야

김 대표이사는 “그릇이 있어야 음식을 담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그릇만 챙기고 음식에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맛있는 음식을 손님에게 내놓으려면 그릇이란 외형도 중요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맛난 음식을 이빨 나간 그릇에 챙기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러나 너무 외형 중심으로만 가는 문화정책의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 뒤 “인천도 ‘문화의 거리’ 등 거리 조성 사업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추억과 내용이 있는 역사나 장소를 이야기로 만들어 관광지로 개발하는 방법을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독일 라인강 기슭에 솟아있는 로렐라이 언덕은 ‘직접 보면 실망하는 세계 3대 관광 명소’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명성에 비해 작고 초라해 보여서다. 나머지 두 명소는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과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상’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의 마력이 그 가치를 그 어떤 유적지보다 더 크게 만들었다.

“자유공원에서 제물포구락부와 중구청으로 내려오는 길에 ‘키스골목’이 있었다. 지금은 막혀서 갈 수 없지만 예전에 이곳을 들른 남녀들이 영락없이 뽀뽀를 하고 갔다. 이런 사연이 있는 곳을 ‘이 골목을 손잡고 내려가면 안 헤어진다더라’라는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하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자연스럽게 인천의 명소가 된다”

문화란 산에 길을 내는 것

재단은 2004년 12월 출범했다. 중구 신포동에 위치한 재단 건물은 한국근대문학관, 인천아트플랫폼 건물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물류창고와 김치공장으로 사용됐던 것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처음에 이 거리는 황량했다. 그런데 지금은 갤러리들이 들어서고 있고 단청박물관과 선광미술관도 있다. 아기자기한 카페도 늘고 있다. 인천시나 중구의 정책이 아니라 시민들의 안목으로 이 거리가 향후 문화의 거리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속력은 늦더라도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조성하고 있다. 문화란 이런 것이다. 산에 길을 내는 것과 같다. 절벽이나 직선으로 가지 않고 옆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100명, 1000명이 가면 길이 생긴다”

김 대표이사는 기원전 실크로드로 많은 사람이 먹고 살기위해 다니면서 서양과 중유럽, 극동의 문화가 섞이듯 다른 지역의 삶이 혼합되면서 익어가는 것들이 문화가 된다고 했다.

“쌓이는 게 문화다. 물이 고여야 침전이 되는데 그런 면에 있어서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아무리 능률적인 게 중요해도 길을 내자고 수령 300년인 나무를 뽑자고 할 순 없다. 고목을 보존하기 위해 로터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경제적인 것과 비경제적인 논리가 상충될 때 이를 조정하는 게 문화정책이다. 관에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문화 인프라를 만들고 대중문화가 민들레 홀씨처럼 널리 퍼져나가게 해야 한다. 우리 재단은 시민문화가 퍼져나가게 지원하고 있다”

다른 공공기관과 통폐합, 가능하지 않다

▲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와 인천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현안 몇 개를 질문했다. 우선, 행정자치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인천시 산하 기관 통폐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재단은 법령에 의한 기관이다. 설립 근거와 존재 준거가 있다. 자격 신분이 명시돼있는 법적 기관으로 문화재단이 전국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재단의 필요성은 있다. 행자부 안이 어떻게 발표됐는지 그 경위는 모르지만, 인천시나 시민, 예술인, 행정 담당자들도 재단의 성격과 통합 얘기가 나오고 있는 인천발전연구원의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한다. 인천관광공사로 흡수하기 위한 전단계라는 말도 나오는데, 관광공사와 재단은 성질이 서로 다르다.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합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 대표이사는 일반 시민은 잘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통폐합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못 박았다.

최근 인천시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재단 소속 기구인 송도 트라이볼의 공연장을 비밥 상설공연장으로 바꾸려해 지역 예술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김 대표이사는 관광객 유치로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건 공감하지만 문화예술인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트라이볼을 비밥 상설공연장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쉽다고 했다.

예술에 단비를 내리다

재단은 지난 9월 17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인천 문화예술의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아트레인(ARTrain) 선포식을 개최했다. 아트레인이란 예술(Art)과 열차(Train)를 조합한 단어다. 김 대표이사는 아트와 레인(rain: 비)의 조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예술이 잘 자라게 단비가 내린다는 의미도 되겠다고 얘기했더니 많은 사람이 호응해줬다. 아트와 트레인을 조합한 말도 의미가 있다. 예술을 끌고 가는 열차라는 뜻이다. 많은 기부자들이 열차를 한 칸 한 칸 연결해줬으면 좋겠다. 씨를 뿌린 대지에 봄날 촉촉이 적시는 봄비로 싹이 트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김 대표이사는 기부문화가 활발하지 않은 우리나라에도 기부문화가 꽃 피기를 바라고 있다. 그나마 종교나 자선단체에는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문화예술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과 단체는 극소수라고 했다.

“얼마 전 송도 트라이볼 공연장에서 재즈페스티벌 유료공연을 했는데, 매진됐다. 공연 내용이 좋으면 사람들이 온다. 문화예술진흥기금도 조만간 고갈될 상황이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문화예술이 기부문화 정착으로 자생력을 길러야한다. 문화예술이 직접 상품을 생산해 수익을 창출하지는 않지만, 질 좋은 작품을 기획해 기부자들과 나누려한다”

모아진 기금은 전문예술인과 시민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 시민들이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사업에 쓰일 뿐, 재단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 8일, 김 대표이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협력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재단은 올해 초 전국 시ㆍ도 문화재단 대표자회의 의장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무거운 짐을 졌는데 어려움은 없을까?

“능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맡은 이상 열심히 할 생각이다. 13개 지역 문화재단마다 독특하고 복잡 미묘한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현안을 조율하고 시ㆍ도 문화재단 대표자로서 정부와 상황을 공유하고 정책적 건의를 할 예정이다. 미력하지만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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