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최규석 만화가

인기 웹툰 ‘송곳’의 작가 최규석(39)을 만났다. 훤칠한 키에 운동으로 단련된 몸과 조각 같은 이목구비의 소유자인 그. 그러나 호감을 갖기엔 그의 강렬한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눈빛이 말해주는 듯했다. 웹툰 ‘송곳’으로 하고 싶은 말을 이마에 붙이고 시작했다는 그는 현재 3부까지 쓰고 약간의 휴지기를 갖고 있다.

그 사이 ‘송곳’은 단행본으로 출판됐고, 현재는 종합편성채널인 <JTBC>에서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그러나 자신은 결코 ‘핫(hot)’하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는 그를 지난 20일 부천시 상동에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에서 만났다. 8월부터 웹툰 ‘송곳’ 4부를 다시 연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국만화박물관 작업실에서 6년째 작업하고 있는 그는 부천시 중동에 산다.

<인천투데이>과는 지난 8일, 책읽는마을동구사람들 대표도서 선포식 때 만났다. 그의 우화집 ‘지금은 없는 이야기’가 대표도서로 선정된 덕분이다. 그 때 인터뷰를 약속했다. ‘송곳’을 내년 이맘때까지 연재할 계획이라, 작품의 이후 내용은 묻지 않았다.

한 달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던 소년

▲ 최규석 만화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그림을 그렸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네 살 많은 같은 반 형이 있었다. 시골이다 보니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늦게 들어왔다. 그 형이 또래에 비해 그림을 잘 그렸는데, 신기해서 따라 그렸다. 그때 그림에 재미를 처음 느꼈다. 그때부터 학교에 갔다 오면 그림을 그렸는데, 종이가 귀해서 달력에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 달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1977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최 작가는 2남 4녀 중 막내다. 그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가정형편으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맘껏 그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원주민’이란 만화에서 유년시절 경험을 소재로 다루기도 했다.

“중학교 때 만화에 확실히 빠졌다. 일본 해적판 만화가 들어오던 때였는데, 그때 마음에 들던 일본 만화가 있었다. 그전까지는 만화가 좀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다양한 만화를 접하면서 만화 자체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만화 동아리에 가입했고, 고교 3학년 때 미술학원을 다녔다. 학원을 다니던 중에 상명대에 처음으로 만화학과가 생겼고, 그곳에 입학했다.

1998년 단편 ‘솔잎’으로 서울문화사 신인 만화 공모전 성인지 부문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동년배보다 빨리 데뷔했지만, 군대에 입대했다. 제대 후 2002년 단편 ‘콜라맨’으로 동아 LG 국제 만화 페스티벌 극화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단편 ‘공룡 둘리’로 인기를 얻어 유명작가 반열에 올랐다.

공모전에 당선돼도 소용이 없었다. 한국에서 만화가 침체기여서 두 번 입상해 당시 유명한 신인이었지만 연재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창원으로 내려갔다. 이 정도 했는데 안 되는가 보다 생각하고 미술학원에 취직했다. 아는 편집자가 <경향신문> 주간 만화섹션 4페이지를 하자고 해서 했다. 1년 하니까 만화만 그려도 먹고 살 수 있어, 미술학원을 그만두고 올라왔다. 그 후 2005년 ‘습지생태보고서’, 2008년 6월 항쟁을 다룬 만화 ‘100℃’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만화로 사회를 벗기는 노골리스트

김혜리 <씨네21> 기자는 그의 저서 ‘진실의 탐닉’에서 크리에이티브(creative) 리더(leader) 22인을 소개했는데 최규석에 대해 ‘만화로 사회를 벗기는 노골리스트’라고 표현했다. 최 작가는 이보다 앞선 2008년에 그의 벗인 연상호, 허지웅과 함께 스스로 ‘노골리즘’을 선언하기도 했다. 사회가 문제가 있으면, 누구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를 노골적으로 밝히고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중ㆍ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문학예술은 주제를 감춰야한다고 배운다. 드러나면 유치하다고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문짝만하게 주제를 전면에 내밀어도 재미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사회문제를 그리는 작가가 사라졌다. 주제가 전면에 드러나는 걸 폐기하고, 사회적인 시선을 집어넣고 싶을 땐 비유나 은유적으로 양념 치듯이 집어넣는다. 사회의식은 숨겨져서 없어진다. 대부분의 독자는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눈치를 채는 독자들이 있긴 하다. 발견의 기쁨을 누리지만 끝이다. 사회적인 영향력은 행사하지 못한다. ‘개구쟁이 스머프’나 ‘미래소년 코난’이 사회주의 공동체나 좌파적인 시선을 담은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의식 있는 사람들의 자족적인 발견 외에 작가가 대중적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에는 실패했다고 본다. 주제를 이마에 붙여야한다고 생각한다”

죄책감과 찝찝함 떨치고자 시작한 웹툰 ‘송곳’

▲ 최규석 만화가.
2003년 10월, 부산 한진중공업노동조합 김주익 지회장은 회사의 일방적인 정리해고에 맞서 100톤짜리 크레인에서 129일간 농성하다가 스스로 목을 맸다. 당시 그의 죽음을 애도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추도사가 많은 이의 마음을 울렸다.

“그 추도사를 듣는데 감정이 동요했다. 노동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직접적인 계기는 ‘100℃’를 작업하면서였다. 죄책감이 있었다.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 식고 그것이 아무런 사회적 동력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6월 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과정이 쓸모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만화를 그리면서 거기에 나도 동참했다. 진짜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이 만화를 그린 것에 대한 찝찝함이 계속 남아있을 것 같았다”

최 작가는 노동문제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10년 전부터 했지만 여건이 허락하질 않았다. 연재하려면 오랜 취재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돼야하는데 쉽지 않아, 준비하고 포기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다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아 노동문제를 다룬 만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소재가 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이었을까.

“연재 시작하기 직전에 김경욱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처음부터 비슷한 성격이라 잘 통했다. 김 위원장은 이론적인 견고함이 아니라, 보수적인 아저씨의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법은 지켜야하고, 사람들한테 나쁜 짓을 하면 안 되고, 내가 시작한 일이면 내가 책임을 지고,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직업 활동가인 구고신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러나 취재하면서 만난 활동가들의 삶과 깊은 교감을 이루기가 힘들어 주인공으로 다루기가 어려웠다.

노조 간부가 주인공인 작품 많이 나왔으면

▲ 웹툰 송곳의 한 컷.
최 작가는 웹툰 ‘송곳’은 주제가 따로 없다고 했다. 주인공 자체가 주제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노조 위원장이 주인공이었던 대중적인 작품이 없었다. 노조 간부가 주인공이면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 게다가 노조 얘기가 재밌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다른 작가가 노조 간부를 등장시킬 때 훨씬 편해진다. 문화영역 안에 노조를 진입시키는 게 1차 목표였다. 지금까지는 대중영역 밖에서 소수의 사람들만 이런 소재를 봤다. 그게 싫었다. 이제는 멜로드라마에도 여성 노조위원장과 재벌 3세가 사랑할 수도 있지 않겠나? 노조 간부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상식화하고 싶었다”

웹툰 ‘송곳’의 다른 버전인 드라마는 10월부터 방영돼 올해 안에 종영될 예정이다. 그러나 웹툰은 내년까지 4부와 5부가 연재된다. 원작자로서 드라마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웹툰의 엔딩까지 시놉시스를 다 줘야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혹시 드라마가 재미없다면 그것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해 웹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캐스팅도 마음에 들고 제작진에 믿음도 있다. 드라마나 웹툰 모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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