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강화유적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 제고방안④ 강화 해양관방유적의 역사ㆍ학술적 가치(하편)

<편집자 주>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역사문화 유적이 많다. 인천시는 강화의 역사문화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기본계획을 지난해 11월 수립했고, 올해 1월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세부추진계획을 수립,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강화의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대상은 관방유적(진ㆍ보ㆍ돈대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진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인천시민은 많지 않다. 이에 <인천투데이>은 추진 상황은 물론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목적과 의의, 세계문화유산 선정 기준과 절차 등을 보도해 시민 관심도를 높이고자 한다.

아울러 현재 국내에선 서울 한양도성, 충남 공주ㆍ부여와 전북 익산의 백제역사유적지구 등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타 지역의 추진 사례를 취재해 강화와 비교해보고,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등의 등재 추진과정과 등재 후 관리방안 등을 취재해 강화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등재 후 관리방안 등 향후과제도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취재] 강화 유적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 제고 방안

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가치 재창조
② 강화 유적 세계유산 등재 추진, 어디까지 왔나
③ 강화 해양관방유적의 역사ㆍ학술적 가치(상편)
④ 강화 해양관방유적의 역사ㆍ학술적 가치(하편)
세계유산은 ‘인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닌 유형의 유산으로서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을 입증하는 유산’으로 정의한다.

이를 증명해내기 위해서는 첫째, 세계유산의 운용지침(Operational Guidelines)에서 제시하는 10가지 등재기준(Ⅰ~Ⅹ) 가운데 최소한 한 가지 이상 기준에 부합해야하고, 그 기준에 해당하는 근거를 밝혀야한다. 둘째, 세계유산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매뉴얼에 따라 후보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을 입증해야한다. 셋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비교연구가 필수적인 동시에 보전과 관리방안을 제시해야한다.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의 범위와 구성

성곽이나 군사 유산은 각 나라에서 문화유산의 중요한 일부로 존재하는 특성을 보인다. 하지만 그 기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 보존 관리는 세계적으로 풀어야할 난제이다. 2005년에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산하 학술분과위원회의 하나가 된 국제성곽ㆍ군사유산위원회ICOFORT)의 정관 제2조 ‘성곽ㆍ군사유산’을 보면, ①성곽ㆍ진지(요새화된 마을)와 같은 구조물: 군사공학시설, 병기창고, 항구, 막사, 군 기지, 공격ㆍ방어 목적으로 조성된 시설. ②야전 격전지, 반수생(半水生) 또는 방어시설을 포함한 경관. ③고대 또는 최근의 전쟁기념물, 묘지, 전사자 추념탑 등, 그 종류와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

이에 근거해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의 범위와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범위는 강화도와 김포 연안, 그리고 부속의 섬에 구축된 군사시설이다. 대상은 성곽(강화외성ㆍ강화산성ㆍ정족산성ㆍ문수산성ㆍ갑창성ㆍ정창성 등), 진보, 돈대, 포대, 봉수대, 요망대 등의 군사시설과 그 부속건물이다. 여기다 강화도 주변의 각종 훈련 장소와 전투 격전지 또는 방어시설을 포함한 군사경관이 중요한 대상이다.

아울러 전쟁기념물(비석 등), 묘지, 전사자 추념탑(雙忠碑) 등도 포함된다. 이밖에 강화도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갯벌, 군량미 조달을 위한 둔전(屯田), 염하의 좁은 해로와 손돌목도 해양관방유적과 연관돼있고, 유적지의 형태와 디자인, 자재와 구성 물질, 용도와 기능, 입지와 주변 환경, 비물질적 전통, 정신과 감성 등도 무형적 유산으로 포함될 수 있다.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의 특징

▲ 강화도 월곶돈대. 좁은 바닷길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강화도 북쪽 해안은 해상 통행이 금지되고 있고, 이 주위에 구축된 돈대는 현재 군 시설로 이용되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그래서 강화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군사요충지로서 ‘살아있는 유산’의 성격을 갖는다.
심승구 한국체육대학교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정리하면,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은 섬 주변의 자연지형과 지물을 최대한 이용해 성곽과 군사시설을 갖췄다. 그 특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자연지형인 바다를 이용해 만든 요새도시 유산이다. 강화도가 일찍부터 보장처(保障處: 아군의 병력이 열세해 적과 대적할 수 없을 때 후퇴해 병력을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한 곳)로 주목받은 까닭은 수도 인근에 위치(개성까지 60리, 서울까지 120리)한 섬이기 때문이었다. 13세기 몽골군이 침입하자, 임시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최후의 보루로 삼은 것도 몽골군이 바다를 쉽게 건널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강화도와 김포 내륙 사이의 긴 해협은 육로로 침입할 때 1차 방어선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강화도 주변에 군사기지인 진(鎭)과 보(堡)를, 해안에 장성과 돈대ㆍ포대를 설치하고, 내성과 산성을 쌓아 2차ㆍ3차 방어선을 삼은 것도 강화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바다 건너 김포 내륙 산 위에 강화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문수산성을 쌓은 것 또한 섬과 바다, 내륙을 연결해 해양방어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강화도와 그 인근의 교동도ㆍ장봉도ㆍ볼음도ㆍ말도의 봉수대와 주문도ㆍ어류정의 요망대 등도 강화도의 해양경비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둘째,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은 강화해협을 이용할 뿐 아니라 바다 물길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어 유산이다.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가로지르며 길게 흐르는 염하(鹽河)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빨라 배가 쉽게 지날 수 없었다. 특히 손돌목 지점에서는 강화도의 산세가 바다 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물속에 만들어 놓은 뾰족한 바위들이 소용돌이를 치는 물살, 즉 ‘손돌기(孫石磯)’를 만들어냈다. 이곳을 지나는 배의 전복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고려와 조선 때에는 손돌목 항로를 피하기 위해 아예 부평의 내륙으로 뱃길을 여러 번 팠다가 중단했을 정도였다.

손돌목은 서해안 남쪽에서 개성이나 한강으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로였다. 손돌목 부근에 광성보, 덕진포, 덕포진 등의 진보와 돈대, 그리고 포대가 집중된 것도 이 같은 지형과 물길을 최대한 이용한 방어 전략에 입각한 것이었다. 19세기 말 프랑스가 조선 연안의 수로를 측량하면서 굳이 염하(鹽河)의 해도(海圖)를 만든 까닭도 바로 손돌목이 갖는 해상 교통ㆍ방어망으로서 중요성을 잘 인식한 탓이었다.

셋째, 염하의 물길 이외에도 섬 주변의 자연지형과 지물을 최대한 활용한 군사유산이라는 점에 특색이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저택(沮澤)’이라 불리는 갯벌이다. 강화도 주변의 해안은 사면이 사초(沙草)와 점토성이 강한 갯벌로 둘러져 있어 ‘육해(陸海)’라 불리며 또 하나의 방어벽 구실을 했다. 갯벌에 배를 정박해 놓아도 사람 신체의 절반이 빠지므로 좀처럼 섬으로 상륙하는 일이 어려웠다. 강화도의 동쪽 해안(월곶~초지진)에만 긴 외성을 쌓고, 다른 해안에 외성을 쌓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동쪽 해안을 제외하고는 다른 해안 대부분이 갯벌로 둘러져 있기 때문이었다.

넷째,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군사요충지로서 기능하는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의 성격을 갖는다. 강화도 북쪽이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묶여있고, 강화해협의 양쪽은 아직도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부대와 각종 군사시설이 설치돼있다. 특히 좁은 바닷길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강화도 북쪽 해안은 해상 통행이 금지되고 있고, 이 주위에 구축된 돈대는 현재 군 시설로 이용되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강화해협은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북한 신의주까지 오가던 뱃길이었으나, 전쟁 후 뱃길이 봉쇄됐다가 최근에 와서야 민간어선이 다닌다. 강화도가 아직도 냉전의 현실을 반영하는 관방지역임을 말해준다. 세계유산 가운데 과거의 성곽ㆍ군사유산이 오늘날까지 그 기능이 유지되는 사례를 거의 볼 수 없는 점을 감안할 때,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이 매우 특별한 사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섯째, 강화도의 해양관방유적은 13세기 이후 19세기 말까지 동아시아 군사시설의 단계적인 양상을 보여주는 해양의 성곽ㆍ군사유산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바다와 섬, 그리고 인근 내륙의 산악지형을 배경으로 700여 년간 지속적으로 구축된 성곽과 각종 방어시설은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다.

국내외 성곽·군사유산의 사례 분석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 서류에는 신청 대상의 유산에 대한 비교연구가 포함돼야한다. 이 비교연구는 특정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도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80년부터 2015년 5월까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 779건 중 성곽ㆍ군사시설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유산 50건이 갖고 있는 공통적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당대 최고의 축성술과 공학기술을 반영한다. 둘째, 국제정치의 구조나 세력판도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셋째, 중세나 근대적 의미에서 문화경관(자연경관)을 갖는다. 넷째, 유형적 가치 이외에도 신앙ㆍ신념ㆍ의식 등이 가미된 무형적 가치를 갖는다. 다섯째, 오지에 소재한 까닭에 보존관리나 접근성, 이용의 한계(유산의 방기ㆍ파괴)가 드러난다.

심승구 교수는 “이와 같은 공통점은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갖추는 데 반드시 고려해야할 점”이라며 “이러한 보편성을 찾아내면서도, 강화도 해양관방유적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을 밝혀야한다”고 했다.

현재 강화도 해양관방유산과 유산한 세계유산으로는 성채(citadel), 성(Castle), 성벽(Wall), 요새(Fort), 요새도시(Fortress), 읍성(Fortified) 등이 있다. 이 유산들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기능과 성격이 서로 다르다.

심 교수는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은 중세 봉건 영주가 살았던 성채나 성 또는 제국이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쌓은 요새도시와 달리, 민족을 수호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였다”고 한 뒤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이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도 특별한 사례로 판단된다”고 했다.

그는 또, “기존의 성곽ㆍ군사유산의 사례가 주로 평지ㆍ산지ㆍ해안에 집중되는 공통점을 보인 것에 비해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섬과 내륙 사이에 구축된 군사시설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섬과 해협을 끼고 산지 주변에 구축된 성곽과 돈대, 그리고 포대를 비롯한 다양한 방어시설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만든 독특한 해양경관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 11건 중 성곽ㆍ군사유산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수원화성과 남한산성이다. 이 유산들은 모두 내륙의 평지와 산지 또는 산지와 평지에 연결된 군사유산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국내의 성곽ㆍ군사유산은 주로 산성ㆍ읍성ㆍ도성의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바다의 외성과 주변 산지에서 해안 방어를 위해 쌓은 산성과 각종 군사시설은 강화도가 유일하다. 더구나 강화도에 임시수도를 두고 이를 수호하기 위한 방어체제에서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한 방어체제라는 시대변화에 따라 기능과 성격이 변화된 점도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이 갖는 특색이다.

심 교수는 강화도 해양관방유적이 세계유산 등재기준 열 가지 중 ‘Ⅱ(특정 기간이나 문화 지역 내에서 건축,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 계획 또는 경관 디자인에서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 증거)’와 ‘Ⅳ(인류 역사에서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기술의 총체, 경관유형의 대표적 사례)’를 갖추고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을 입증해내는 것이다. 진정성은 해당 유적이 본래 형성된 조건 속에 남아있고, 모든 중요한 역사를 반영하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전면적인 조사연구를 선행해야한다. 완전성은 신청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표현하는 특성의 전체와 원래 모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여기엔 신청 유산의 보호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무관심과 개발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도 들어간다.

▲ 강화도 돈대 54개 위치도.<제공·강화고려역사재단>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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