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 지원 ‘절실’

▲ 영화를 보러 온 노인들이 미림극장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쉬고 있다.
‘레드 툼(Red Tomb)’이라는 영화를 봤다. ‘빨갱이 무덤’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한국전쟁 때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을 다룬 영화다. 국민보도연맹이란 이승만 정권이 1949년 좌익 전향자 등을 회유하고 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위험 요소(=좌익 전향자 등)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이다. 2013년에 제작됐지만 배급처를 찾지 못해 국민들이 볼 수 없었으나 최근 개봉했다. 광복과 분단 70주년인 올해 개봉돼 더 뜻 깊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개봉관이 많지 않고 인천에서는 유일하게 동인천에 있는 미림극장 한곳 뿐이다. 그것도 7월 9일 하루 상영했다. 10시 30분부터 2시간씩 모두 네 번 상영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미림극장을 찾았다.

미림극장은 1957년 개관한 후 복합상영관인 멀티플렉스 극장이 붐(boom)을 이루던 2000년을 전후해 어려움을 겪다가 2004년 7월 문을 닫았다. 그리고 2013년 10월, 실버전용극장 ‘추억극장 미림’으로 다시 개관했다. 개관 당시 하루 평균 100여명이던 관객이 이제는 150여명이다.

1회 상영 시간임에도 관람객 100여명이 자리를 메웠다. 퇴직 초등학교장 출신들의 모임인 인천시 원로회 회원 70명이 예약해 이 영화를 봤다. 영화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사람들의 유가족과 마을 주민들의 증언, 시신 발굴 작업 등이 주를 이뤘다. 상영 도중 자리를 뜨는 노인이 몇 있었다. “저게 다 김일성이 한 짓이야”라고 큰소리를 외치며 떠난 이도 있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옆자리에 앉은 노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익명 처리를 요구한 노인(75)은 부평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평소 주말에는 자식들이 집에서 편히 쉬게 이곳을 찾았는데, 오늘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일부러 왔다”고 했다.

노인은 또한 “남이나 북이나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은 있었을 것이고, 모두 김일성이 한 짓이라고 말하는 건 무식한 발언”이라며 영화 상영 중간에 나간 노인의 행위를 비판했다. 아울러 “미림극장이 지금 재정적으로 어려워 인천시의 지원을 받기 위한 진정서에 서명했는데 시장이 바뀌자마자 실버전용극장을 천대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림극장 지원 협약한 인천시와 동구는?

미림극장은 인천사회적기업협의회에서 운영하는 ‘메타 사회적기업’이다. 메타 사회적기업이란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전액을 재투자해 공익성을 높이는 기업을 말한다.

2013년 9월 12일, 당시 송영길 인천시장과 조택상 동구청장, 조민호 (사)한국사회적기업협의회 인천지부 대표는 ‘추억극장 미림의 효율적 조성·운영’을 위한 협약서에 서명했다.

협약서에는 시가 사업비를 지원하고, 미림극장을 관내에 두고 있는 동구가 주변 환경 조성과 노인인력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또한, 업무의 효율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으며, 서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협약이 유지된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협약서 서명자였던 당시 송영길 시장과 조택상 구청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떨어져 지금은 없다. 운영위는 협약 체결 당시 몇 차례 회의를 한 후 흐지부지돼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미림극장은 재개관 때 시로부터 지원받기로 한 리모델링 비용 2억 1000만원을 아직도 받지 못해 빚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미림극장은 지난해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아 지원금으로 직원 14명의 인건비와 사업개발비를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매달 임차료 400만원과 영화 판권료 500만원 등의 운영비를 자체 마련해야 하는데, 그나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지원 사업 제안서를 제출해 올해 3월까지 지원금을 받아 운영비를 메웠다. 4월 이후에는 매달 적자 상태로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영화 관람료(편당 2000원)로 월수입 600만원가량이 생기는데, 운영비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미림극장을 살리기 위한 노력들

최현준 미림극장 운영부장은 “미림극장의 모델은 서울의 허리우드 실버극장이다. 그곳은 서울시가 노인문화복지사업비 명목으로 한 해에 예산 1억원을 지원해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비해 미림극장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받는 지원금 외에는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해 폐관 이야기가 나온다.

미림극장 관계자들은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미림을 살리기 위한 진정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인천에 단 하나뿐인 노인전용극장을 이대로 문 닫게 할 수 없다는 의지를 시와 시의회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모두 1260명이 서명했다.

미림극장은 이 진정서를 시와 시의회, 동구, 동구지역 국회의원에게 제출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에도 제출할 예정이다. 최 운영부장은 “진정서를 제출하고 시나 동구에서 담당공무원이 찾아왔다. 그러나 진전된 얘기는 없었다”고 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노인문화 활성화를 위해 극장에서 추진하는 사업들은 취지도 좋고 성과도 있다”고 하면서도 “인천시는 재정이 어려워 서울시처럼 지원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사회적기업 관련한 지원만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사업말고도 다른 사업들이 많아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 있다”며 추가 지원문제에 대한 여지를 일축했다.

미림극장은 자력으로 극장을 세우기 위한 다양한 활동도 벌이고 있다. 최 부장은 “그동안 실버 대상 영화 상영을 위주로 했는데 앞으로는 인천시민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게 다양한 사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했다.

일례로 올 하반기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진행할 계획이고, 영화 상영 후 관객과 대화 시간을 확보해 일반 관객의 참여도를 높이려고 한다. 또한 인천지역 기업의 후원을 발굴하고, 인천영상위원회나 인천독립영화협회 등과 파트너십을 형성할 계획이다. 생사의 기로에 선 인천 유일의 실버전용극장의 미래에 지역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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