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홍선웅 판화가(상편)

▲ 홍선웅 판화가
작가 조정래가 쓴 소설 ‘태백산맥’은 1989년 한길사에서 처음 세상에 나왔다. 그 후 1995년 해냄 출판사에서 재 간행했다. 원고지 1만 6500장 분량으로 6년간 ‘현대문학’에 연재된 소설 ‘태백산맥’은 1997년에 100쇄를 기록했고 2009년 200쇄를 돌파, 10권 합쳐 1000만권 넘게 팔렸다.

‘태백산맥’을 읽은 이들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해방 전후의 역사와 소설 속 주인공들, 또한 그들이 구사하던 언어에 푹 빠졌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에 못지 않게 강렬하게 우리의 기억을 사로잡는 것은 책 표지그림이리라. 태백산맥을 형상화한 굵고 역동적인 판화.

한길사에서 간행한 책의 표지그림은 이철수 화백이 1983년에 그린 것이고, 해냄 출판사에서 재 간행한 책 표지그림은 홍선웅 화백이 그렸다.

인천에서 출발해 강화대교를 건너기 직전 강화도로 건너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김포 문수산성 남문이 나온다. 그곳을 지나 왼쪽에 염하(鹽河=강화해협)를 끼고 10여분 달리다보면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라는 동네가 나온다. 70여 가구가 사는 조용한 이 마을은 축산업도, 공장도 들어설 수 없는 청정지역이다.

이곳에 홍선웅(64) 화백의 작업실이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5년이 된 지난 25일, 북쪽 방향으로는 개성 땅이 보이는 이곳을 방문했다. 옛날에는 마을회관으로 쓰였다는 2층짜리 건물에서 홍 화백의 작품세계와 만났다.

지조와 강인함의 상징인 매화 사랑

▲ 2000년에 제작한 작품 ‘미황사’. 해남 송지면에 있는 미황사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사찰이다. 달마산 상봉에 길게 뻗은 석봉은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홍 화백 작업실 1층에 목판본(사진 아래)과 민예총 기관지인 월간 ‘민족예술’ 표지에 실린 책(사진 위)이 함께 있다.
“이건 용매예요. 용처럼 줄기가 구부러져 있습니다. 이건 제가 좋아하는 송광매예요.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가져온 거죠. 이것은 줄기가 파란 청매이고, 저건 홍매예요. 재래종은 열매인 매실이 굵어요. 전 해남에서 가져온 해남매와 송광매 등 토종 매화나무가 좋습니다”

길가에서 홍 화백의 작업실로 들어가는 건물 입구까지 10여m 양쪽에는 매화나무 열일곱 그루가 있다. 수령은 대략 15년쯤 됐다고 한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고서 심었다.

그는 정원에 있는 나무 하나하나뿐 아니라 매화에 얽힌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의 로맨스에서부터 ‘혹한을 이기며 은은하게 피어나는 매화의 향기야말로 선비의 정신이고, 이것을 배워야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줬다.

매화가 피는 시기 이곳을 찾아오는 벗들과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때가 행복하다는 홍 화백. 그에게 매화에 얽힌 역사와 매화의 정신을 30여분 더 들은 후에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눈이 오는 속에서도 꽃을 피우며 은은한 향기를 품는 성품을 닮아야합니다. 매화를 단순한 꽃이 아닌 인문학적으로 접근했어요. 나와 매화의 성품을 교감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매화는 지조와 절조, 강인함이 있어요. 매해 봄이면 매화가 피어있는 곳을 답사해 완상(玩賞)하고 그림으로 그립니다”

2001년 인천 신세계갤러리에서 ‘차와 매화’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기도 한 홍 화백은 오는 7월 6일부터 매주 월요일 총5회로 연수도서관에서 매화를 주제로 강의할 예정이다.

판화의 시조인 팔만대장경을 만든 곳, 인천 2층 건물은 가운데 계단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어졌다. 입구를 기준으로 1층 왼쪽에는 판화의 모체인 나무판이 보관돼있다.

“판화를 하다 보니 서원이나 절,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각이나 판을 많이 연구했어요. 판의 재료인 나무도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게 달라요. 영남지방은 단단한 돌배나무를 주로 사용하고, 호남지방은 내장산 등에 많이 있는 단풍나무를 선호하죠.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에 사용된 주요 나무는 산벚나무(67%)와 돌배나무(13%)예요. 세계유산인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곳이 강화도 선원사지예요. 판화가들은 해인사를 판화문화의 성지라고 해요. 그 시발은 인천 강화도 선원사에 설치한 대장도감이죠. 해인사는 만든 것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지, 시작은 인천입니다”

그의 작업실에 보관하고 있는 목판은 현재 작은 작품까지를 포함하면 사오백여 점 된단다. 계단 오른쪽 공간으로 이동하니, 이곳을 찾는 방문객을 위해 판각을 시범보이기도 하는 공간이다. 홍 화백은 한번 칼을 잡아 보라 권했다. 덕분에 고급스런 목판에 칼집을 냈다.

또한 이곳은 근대 판화의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할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돼있다. 작은 판화박물관 같았다. 작년 초, 홍 화백은 ‘한국근대판화사’를 판화와 관련한 각종 자료를 모은 지 15년 만에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그의 작업실에는 100년도 더 된,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신문들이 있었다. 목판으로 새긴 동양화를 수집하기 위해 1906년에 발행된 ‘대한매일신보’를 갖고 있었으며, 1898년 창간된 ‘제국신문’과 1883년 창간된 ‘한성순보’도 있었다. 동판을 사용하는 윤전기가 나오기 전에는 모두 목판으로 인쇄된 것들이다. 꽤 값어치가 있는 골동품들이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아닌 작업실에서 홀대를 받는 듯해 안타까웠다.

“고서를 취급하는 중개인들이 소장하고 있었지만 작품의 진가를 보는 눈이 부족해 묻혀있던 자료가 많아요. 미술평론가들이 정리해야 했는데 못했죠. ‘한국근대판화사’는 조선 후기부터 개화기, 대한제국시대,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까지 판화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본 책입니다. 쓰고 나니 추가할 내용이 더 생겨 재판 때 보강할 생각도 합니다. 책이 출판되고서 석ㆍ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에게 문의가 많이 옵니다.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시대정신을 담은 1980년대 작품들

▲ 작업실 2층에는 홍 화백의 작품이 실린 책들이 전시돼 있다.
2층에 올라가니 그의 작품이 수록된 도서나 신문, 소식지들이 즐비했다. 해냄 출판사에서 펴낸 ‘태백산맥’ 전집과 양장본, 200쇄를 기념해 만든 고급스런 소재의 기념책자가 전시돼 있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이하 민예총) 국제부장으로 활동할 때 조정래 선생도 같이 민예총 활동을 했어요. 그게 인연이 돼 ‘태백산맥’ 표지그림을 그렸고, 그후에도 조 선생 단편집 몇 개의 표지그림을 그렸죠. 목판은 전남 벌교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에 기증했어요”

그 외에도 월간지 ‘민족지평’ 창립 축하시를 쓴 신경림 시인의 작품에 홍 화백의 작품이 삽화로 쓰이기도 했으며, 문병란 시인 외 여러 시인의 시집 표지그림 작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 중 월간 ‘다리’라는 잡지에서 한 코너를 김남주 시인이 석방되고 췌장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1년간 함께 작업했다. 김남주 시인이 민족과 통일에 대한 내용의 긴 시를 쓰면, 그 시 내용에 맞는 작품을 세 개씩 책에 수록했다. 홍 화백은 그 중 7점을 수록해 ‘역사의 길, 통일의 길’이라는 내용으로 판화첩을 만들었다.

“김남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작업하기가 좋아요. 그림그리기에 선명하고 메시지가 축약된 단어를 사용하거든요. 가령, ‘죽창이 되어’나 ‘역사의 길’ ‘함성’ 등이 그렇죠.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홍 화백의 작품은 1980~90년대 당시 여러 대학의 교지 1면 삽화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신문 등에 사용됐으며, 대학로에서 공연된 ‘금관의 예수’ 리플릿에도 삽입됐다.

김남주 시인은 1989년 그의 부인과 강화도에 온 적이 있다. 강화도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던 그는 그때 그곳에 살 생각으로 집을 샀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병마에 시달려 운명을 달리했고, 현재 그의 부인과 아들은 강화도에서 살고 있다.(하편은 다음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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