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구, 기념비ㆍ조각상 건립 등 기념사업 추진

“한국 주교단은 옳지 못한 일을 당하면서도 침묵을 지킨다면 큰 잘못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대 교황께서 가르치신 원리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적 사회 정의를 가르칠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특히 노동자 권리를 가르쳐야합니다. (중략)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노동자의 기본적 존엄성과 권리를 존중하고 이 존엄성과 권리를 강화하는 데 능동적으로 관여할 때 비로소 하느님 뜻에 따라 국가가 발전할 것입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인 1968년 2월 9일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이 발표한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공동 성명서’ 내용 중 일부다. 이 성명서는 강화도 심도직물노동조합 활동 탄압과 관련해 나온 것이다.

한 회사의 노조 탄압에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주교단이 성명서를 발표한 이유는 무얼까?

강화 심도직물 사건을 아시나요?
한국 천주교회의 첫 사회적 발언

당시 강화도엔 직물공장이 여러 개 있었다. 하루 12시간 노동에도 불구,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아온 노동자들은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를 결성했다. 이들은 하루 12시간의 노동도 모자라, 공휴일 전날 야간 조는 24시간을 일했다. 이 때문에 결핵에 걸린 노동자도 꽤 있었다. 기록을 보면, 결핵환자 중 20%는 ‘2기’에 해당하는 중환자였다.

1967년 5월, 강화도 직물회사의 하나인 심도직물에 노조가 결성됐다. 당시 강화엔 직물회사 21개가 있었는데, 심도직물에 앞서 노조가 결성된 곳이 있었다. 심도직물은 종업원이 1200여명이나 되는 큰 공장이었다.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강화 본당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회원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심도직물노조 결성 후 사용자 쪽은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고 JOC 회원들을 불법적으로 해고했다. 다른 회사 사용자 쪽도 이 틈을 타 노조 활동에 가담한 노동자를 해고했다. 해고된 노동자 16명은 모두 천주교 신자였다.

또한, 직물회사 사장들을 향후 JOC 회원을 고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를 주도한 장본인은 김재소 심도직물 사장이었는데, 그는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7대)이었다.

그는 종업원 1200여명 중 900여명이 노조에 가입하자 온갖 방법을 동원해 노조를 와해하려는 조치를 취했다. 심지어 전 미카엘 강화 본당 주임신부를 찾아가 노조활동에 간섭한다고 항의하고 ‘반공법’으로 위반으로 구속시키겠다고 위협한 후 공장을 폐쇄했다.

미카엘 신부는 노동자들의 회합 장소를 제공하는 등, 노조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사용자 쪽이 노동자와 천주교 신자를 탄압하자, 1967년 3월 2대 JOC 총재로 취임한, 당시 마산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강화도를 방문해 대책을 강구했다.

당시 김 추기경은 “억눌리고 고통 받는 노동자를 위해 그리스도 사랑을 실행하느라 스스로 십자가를 진 연약한 소녀들과 JOC 회원들에게 존경을 표할 뿐입니다. 여러분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교회 역사가 증명합니다”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심도직물을 비롯한 직물회사들은 노조와 JOC 회원들을 계속 탄압했다. 결국 나 굴리엘모 인천교구장은 1968년 1월 18일 “모든 사람이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 임무를 이행할 때, 또 그들이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존중할 때, 하느님의 뜻대로 나라가 번영할 것”이라는 특별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어서 그해 2월 9일 주교단이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이 때 신민당 김은하 의원은 진실 규명을 위해 자료 수집에 착수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주교단의 공동 성명서가 발표되고 이 문제가 정치권으로 확산되자, 그동안 미온적으로 방관했던 정부가 사태 수습에 나섰다. 공동 성명서 발표 후 6일이 지나 해고자 전원이 복직됐다.

이 공동 성명은 한국 천주교회의 첫 사회적 발언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 바깥 세상에 눈을 돌린 것이다.

▲ 삼도직물 사건 기념비와 조각상 건립 장소(강화읍 관청리 405).
심도직물 사건 기념사업 추진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다음 달 10일 강화 심도직물 공장 터에 기념비와 조각상을 세우고 축복식을 여는 등,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심도직물 공장 터는 천주교 강화성당 근처에 있다. 공장 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설은 대부분 사라지고 굴뚝만 남아있다.

한국 천주교에서 심도직물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천주교가 국내에서 노동인권 옹호와 사회 참여를 시작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인천교구는 5월 3일 오후 2시 중구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강화 심도직물 사건의 역사적 기억과 미래의 노동사목’을 주제로 심포지엄과 기념미사를 연다.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 이주사목위원회, 교회사연구소가 공동 주관하는 심포지엄은 심도직물 노동자, JOC 회원의 증언과 서울ㆍ인천ㆍ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장의 좌담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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