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37- 제주에서 4박 5일(하편)

▲ 온 몸으로 비를 받아주고 있는 조천 바다.
이중섭, 삶과 예술의 아이러니

제주여행 넷째 날인 1월 25일, 이중섭미술관 등 서귀포 쪽을 둘러보기 위해 5.16도로를 타고 서귀포로 넘어갔다. 서귀포에 거의 다 내려와 환경파괴 문제로 뉴스에 오르내렸던 중국인타운을 봤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7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토지 54만 9000㎡를 사들여 리조트 사업을 벌였다.

이른바 ‘부동산 투자이민제도’를 시행한 지 4년 만에 중국인 소유 토지면적은 제도 시행 전과 비교해 무려 300배 가까이 증가했다. 자칫 잘못하면 기회가 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장소만 제공하고 돈은 중국인이 벌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역시 남 얘기가 아니다.

이중섭미술관에 갔다. 이중섭은 한국전쟁 때 서귀포로 피란 와 1년 정도 살았다. 어른 두 명도 눕기 어려운 작은 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지만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중섭미술관에는 이렇다 할 작품이 없다. 그나마 부인 이남덕이 기증한 팔레트와 이호재 가나아트 대표가 기증한 작품 8점이 체면치레를 하고 있다.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이중섭은 극심한 생활고로 아내와 두 아들마저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가난과 싸우며 살았다. 결국 40세를 겨우 넘기고 간염과 영양실조로 적십자병원에서 숨졌고, 행려병자로 처리됐다가 3일 만에 친구들에게 발견됐다. 그 유명한 이중섭의 ‘소’는 현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 있다. ‘소’는 35억 6000만원에 낙찰됐다. 삶과 예술의 아이러니다. 그는 화장돼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서귀포는 이미 봄이다.

이중섭미술관을 나오니 이중섭거리다. 내가 일하고 있는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의 부설기관인 인천자치문화연구소의 김경언 소장의 고향이란다. 생활예술가들이 작품을 팔고 있다. 직접 그리고 만든 공예품과 옷가지, 기념품을 파는 장터다. 식당도 카페도 길바닥도 담벼락도 가로등도 모두 이중섭. 불과 1년밖에 머물지 않았는데, 예술의 힘은 이토록 크고 넓다.

이중섭거리를 내려와 길을 건너니 식당 ‘안거리 밖거리’(064-763-2552)가 보인다. ‘안거리 밖거리’는 추사 유배지에서 공부한 것처럼 ‘안채 바깥채’를 뜻하는 말이다. 제주도는 울타리 안에 안채와 바깥채를 만들어 부모와 자녀가 따로 살았다. ‘안거리 밖거리’는 백반집이고, 메뉴는 정식과 비빔밥 두 가지만 있다. 정식은 옥돔구이ㆍ돔베고기(=삶은 돼지고기를 도마에 담아내는 음식. 돔베는 도마라는 뜻)와 반찬이 무려 열일곱 가지 나온다. 인공조미료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건강식인데, 가격은 8000원이다.

‘밥은 굶어도 필름은 산다’던 김영갑 선생

▲ 쇠소깍.
▲ 조랑말체험공원.
쇠소깍으로 갔다. 제주는 눈길 닿는 곳마다 모두 비경이지만 쇠소깍은 특히 더 그렇다. 아직 안 가봤지만 TV에서 본 라오스 방비엥 못지않은 곳이다. 아, 만일 제주가 없었다면 대체 우리는 어디로 여행을 갔을꼬. 사공이 밧줄로 끄는 테우를 타보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었다.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조랑말박물관)에 갔다.

가시리는 조선시대 최상급의 제주 말을 길러내던 목장(갑마장)이 있던 마을이다. 조랑말박물관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이립박물관이다. 따라비(=땅할아버지)승마장에서 말을 탔다. 카페에서 차를 마실 수도 있다. 가시리엔 따라비오름을 비롯해 오름이 열세 개나 있다. 자연사랑미술관에 들렀다. 알고 보니 ‘사랑’은 사진 갤러리라는 뜻이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064-784-9907)에 갔다. 김영갑 선생이 폐교를 개조해 만든 갤러리다. ‘밥은 굶어도 필름은 산다’던, 돈이 없어 하루 종일 찐 고구마 하나로 버티면서 점점 마비돼가는 손가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김영갑. 사진가 김영갑은 1985년 가족ㆍ친구들과 이별하고 제주에 왔다. 그리고 줄곧 제주만 찍었다. 어느 순간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지 않았다. 루게릭병이었다. 2005년 9월 숨졌고, 그의 뼈는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김영갑 선생의 제자인 박훈일 선생이 갤러리 관장으로 있다.

‘시인의 집’에 다시 가서 손세실리아 시인이 만들어준 피자와 토스트를 먹었다. 와인도 한 병 마셨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김영갑 선생이 살았을 때 만났단다. 내가 그 갤러리에 가는 줄 알았으면 미리 얘기해 놓을 걸 그랬다고, 제주 사람들 중에서 첫 번째로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라고, 박 관장을 못보고 온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는 법. 다음에 제주에 갈 때는 꼭 봐야겠다. ‘시인의 집’을 나오는데 비가 내렸다. 조천 바다는 온 몸으로 비를 받아주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와 절물휴양림

▲ 절물휴양림.
제주여행 마지막 날. 제주의 날씨는 정말로 변화무쌍하다. 어제 비더니, 오늘은 또 안개였다. 그냥 안개가 아니라 잔뜩 낀 안개 때문에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원래는 사려니숲길을 걸으려 했는데, 안개가 너무 끼어 포기하고 근처의 절물휴양림으로 갔다. 그러나 험한 날씨는 나쁜 일만 있는 게 아니어서 오히려 안개 때문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이번 제주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었다. 운이 좋았다.

제주로 나와 용연 근처에 있는 ‘김희선제주몸국’(064-745-0047)에서 점심을 먹었다. 몸국은 모자반으로 만들었는데, 모자반은 톳 비슷한 해조류다. 이 글에 쓴 식당들은 모두 제주 사는 친구들에게 추천받았거나, 믿을 만한 사람들이 추천한 곳 중에서 내가 가본 곳들이다. 혹시 앞으로 제주로 여행 갈 사람은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젬마씨는 또, 그 유명한 조천 신촌리에 있는, 재료가 떨어지면 그냥 가게 문을 닫는다는 덕인당 보리빵집에서 보리빵을 사왔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 수속을 밟았다. 안개 때문에 한 시간쯤 연발됐다. 상을 당했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내 일상은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시 시작이다.

제주는 4.3항쟁 때문에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는 또, 어이없게 숨진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 때문에 마음 아픈 곳이 됐다. 예전에 썼던 제주 4.3항쟁에 관한 시 한 편으로 제주 여행기를 마친다.

‘제주시 일도리 23 이도리 53 도남리 27 삼도리 46 용담리 45 건입리 47 화북리 343 삼양리 217 도련리 185 용강리 134 봉개리 269 회천리 122 아라리 203 영평리 127 월평리 71 오라리 238 오등리 104 연등리 101 노형리 523 해안리 83 외도리 62 내도리 24 도평리 147 이호리 345 도두리 276 서귀포시 동흥리 52 법환리 16 보목리 2 상효리 38 서귀리 47 서호리 21 서홍리 136 신효리 33 토평리 92 하효리 39 호근리 62 강정리 162 대포리 37 도순리 58 상예리 81 색달리 65 영남리 55 용흥리 2 월평리 19 중문리 105 하예리 38 하원리 52 회수리 44 북제주군 귀덕리 39 금능리 13 금악리 150 대림리 25 동명리 51 명월리 133 상대리 14 상명리 54 수원리 15 옹포리 1 월림리 2 한림리 43 월령리 1 한수리 1 협재리 11 고산리 50 금등리 4 낙천리 35 두모리 22 산양리 1 신창리 6 용수리 17 저지리 115 조수리 53 청수리 107 판포리 19 고내리 34 고성리 87 곽지리 24 광령리 181 구엄리 39 금덕리 104 금성리 8 남읍리 70 상가리 49 상귀리 67 소길리 65 수산리 76 신엄리 40 애월리 55 어도리 136 어음리 65 장전리 99 하가리 36 하귀리 258 김녕리 43 덕천리 31 동북리 126 상도리 49 세화리 61 송당리 83 연평리 9 월정리 50 종달리 92 평대리 37 하도리 148 한동리 28 행원리 102 교래리 74 대흘리 131 북촌리 424(479) 신촌리 173 선흘리 215 신흥리 105 와산리 81 와흘리 136 조천리 224 함덕리 264 남제주군 가파리 12 구억리 15 동일리 50 무릉리 65 보성리 34 상모리 56 신도리 65 신평리 92 안성리 39 영락리 39 인성리 21 일과리 38 하모리 85 남원리 101 수망리 102 신례리 89 신흥리 122 위미리 56 의귀리 248 태흥리 98 하례리 37 한남리 110 고성리 69 난산리 98 삼달리 15 성산리 14 수산리 131 시흥리 14 신산리 11 신양리 7 신천리 2 신풍리 27 오조리 53 온평리 15 감산리 79 광평리 27 덕수리 36 동광리 157 사계리 33상창리 103 상천리 57 서광리 94 창천리 60 화순리 25 가시리 411 성읍리 75 세화리 33 토산리 163 표선리 13 하천리 4 도외본적 56’<신현수의 시 ‘아, 아, 4.3’ 전문>

사진ㆍ글/ 신현수 부광고 교사ㆍ(사)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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