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숙 시민기자의 교실이야기 (20)

20년보다 훨씬 더 전인 6학년 겨울 졸업식 즈음, 나는 외부에서 주는 상을 받는 몇 안 되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상을 주고받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해, 졸업식 며칠 전 어떤 교실로 들어갔다.

교장선생님이 계시는 단상까지 몇 걸음에 걸어 나와야 하는지, 상을 받을 때 손모양은 어때야 하는지, 인사는 어떻게 해야 하고 뒤로 돌아 나올 때는 몇 걸음에 돌아 나와야 하는지, 연습을 여러 번 했다.

나는 매우 진지하게 연습했고 우쭐한 기분이었다. 누구한테 받는 상인지, 그 사람이 왜 나한테 상을 주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꽤 근사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 아빠에게 오늘 졸업식 때 대외상 받는 연습을 했다고 자랑했다. 아빠는 누가 주는 상이냐고 물었고, 나는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새마을회장상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선생님이 네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거니? 상을 줄 거면 제대로 된 것을 주든가. 뭐 그런 이상한 곳에서 주는 상을 너한테 주니”라고 하면서 버럭 화를 내셨다. 근사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지금까지 내게 초등학교 졸업식은 이상한 상을 대표로 받은 날로 남아있다.

겨울방학에 들어가기 전 즈음이면 나는 종종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이번 방학이 끝나면 저 아이들이 중학교를 가는 구나’ 싶어 어떻게 잘 마무리 해줘야할까,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6학년 담임교사를 맡는 것은 특별하다. 교사들이 흔한 말로 아이들을 날려 보내기 위해 키운다고 하지만, 6학년 담임은 아이들을 다른 학교로 떠나보내야 하니, 마음이 남다르다.

글씨체를 바로잡아주고 싶어 글자 따라 쓰기를 시켰던 아이를 봤다. 지금도 여전히 글씨체는 알아보기 힘들지만, 아이가 얼마나 글씨체를 바꾸고 싶어 했고 노력했는지 알기에 결과와 상관없이 시도와 노력을 축하해주고 싶다.

“귀찮아요”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를 봤다. 생각해보니 아이는 그렇게 귀찮다고 하면서도 지각 한 번 한 적이 없다. 숙제를 안 해올 때는 있으나 꼭 남아서 숙제를 하고 갔다. 방학 즈음에는 일기도 빠짐없이 냈다. 그 아이가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들, 어찌나 입담이 좋은지 나를 많이 웃게 해줬다. 아이는 무엇이 귀찮았던 것일까. 난 그 아이가 전혀 귀찮지 않았다.

“짜증나”란 말을 자주 했던 아이도 봤다. 무엇이든 잘하고 열심히 하는 아이는 ‘뭐가 그리 자주 짜증이 날까’ 생각해보면, 뭐든 잘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하니 얼마나 사는 게 무겁고 힘들까 싶다. ‘실수해도 괜찮아. 가끔 못할 때도 있는 거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안심해’란 말을 속으로 했다.

내가 속상해하면 쉬는 시간에 와서 말벗이 돼줬던 아이도 쳐다봤다. 아이는 아마 다른 사람이 아파하면 함께 아파하며 손잡아주는 사람으로 클 것이다. 따뜻한 아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쳐다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했다. 한 명 한 명 축하해주고 싶은 일, 격려해주고 싶은 일이 참 많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잠시, 졸업사정회 준비가 밀어닥쳤다. 졸업사정회 준비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은 바로 대외상 시상 준비였다. 내가 졸업하던 때로부터 무려 25년이 지난 지금도 훌륭한 아이들에게 상을 주라고 외부에서 상이 들어온다.

교육감상, 교육장상, 시장상, 시의회상, 국회의원상을 중심으로 이런 단체 저런 단체에서 상이 들어온다. 그러면 학교는 고민에 빠진다. 이 상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그럼 그것에 관한 규정이 필요하다. 이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래서 우선 들어오는 상은 상을 주는 사람의 지위를 생각해 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아이들도 순위를 매겨야한다.

그런데 순위를 매기려면 아이들이 살아온 삶을 모두 수치화해야한다. 삶을 수치화하려면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한다. 가장 수치화하기 쉬운 것은 중간ㆍ기말시험 점수다. 시험점수는 이미 숫자로 나오니 얼마나 객관적이고 간편한가. 그 다음 수치화하기 쉬운 것은 임원점수다. 반장, 부반장, 전교 회장, 부회장. 공개적으로 선출하니 그것 또한 이런 저런 말이 나올 수 없다.

그 다음은 상이다. 학교에서 받는 상과 학교 밖에서 받은 상을 상 등급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상이라는 근거가 정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것 역시 점수로 바꾸기 좋다.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가치 아래 이런 점수들을 더해 등수를 세워 밖에서 온 상을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그래서 나는 졸업사정회 준비를 위해 그동안 아이들이 살아왔던 6년간의 삶 가운데 6학년 때 시험성적, 임원실적, 수상경력만 쏙 뽑아 점수로 바꾸고 줄 세우는 일을 정신없이 했다. 엑셀 파일을 들여다보며 이름과 점수와 등수로 간단하게 정리되는 아이들의 삶을 지켜봤다. 6년간 아이들이 웃고 울고 때로는 넘어지면서 조금씩 커왔던 과정들을 축하하고 격려하고자 하는 마음은 졸업사정회 서류에 담을 수 없었다. 그것이 많이 미안하고 아쉬웠다.

요즘은 존재하는 과거와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가 가끔 뒤섞이는 것을 느낀다. 대외상은 존재하고 중간ㆍ기말고사는 사라졌다. 졸업 시상 규정에 존재하는 중간ㆍ기말고사 성적 반영 규정을 바꿔야한다.

2학기에는 부랴부랴 수행평가를 수치화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런데 고민했다. 아이들 성적은 수치화ㆍ등수화하지 않게 평가방법을 바꿨는데, 대외상을 주려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등수를 매겨야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이청연 교육감님, 학교로 교육감상을 안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누구 상줄까 계산하느라 아이들 졸업 준비가 연말결산이 돼버렸어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그리고 말해야겠다. “6년 동안 네가 살아온 삶, 정말 멋졌어”

※ 구자숙 시민기자는 인천대정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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