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일부 단체장 ‘불통’ 행정의 배경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들이 취임 후 6개월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이제 각자 구상한 행정을 구체적으로 펼칠 때이다. 민심의 선택을 받은 단체장들은 취임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행정을 쇄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모두 ‘열린 행정, 주민과 소통 강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단체장의 행보는 논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주민과 연이어 충돌하면서 ‘갈등 유발자’가 되기도 했다. 이들이 새해엔 어떤 행보를 보일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할 정도이다.

‘일방통행’ 넘어 ‘독단․불통’ 행정

2012년 대선 때 치러진 보궐선거에 이어 다시 당선된 김홍섭 중구청장은 도시 개발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송월동 동화마을과 각국거리 조성, 대불호텔 복원, 월미도 해수족탕 조성 등이다.

중구 지역은 개항으로 근대문화유산이 많은 곳이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은 김 구청장이 이러한 역사와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지역을 개발하려한다며 반발했다. 중구는 문화관광 콘텐츠를 개발해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했지만, 지역 예술인들은 ‘각종 구경거리와 먹을거리를 억지로 만들어 제공하고 서둘러 계산하는 사이에 주민들 스스로 형성해온 자연스러운 삶들은 관광산업의 한 재료로 전락한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8월에 열린 관련토론회에서 정윤수 문화평론가는 ‘도시 개발엔 최소한 지켜야할 원칙이 있다. 지역 주민의 반대가 심하거나, 해당 지역의 역사성이 왜곡되거나, 그 지역의 사회ㆍ문화적 조건과 어긋나는 것을 억지로 유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여기다 중구는 지난해 말 의회의 승인 이전에 특정 종교의 행사(=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설치와 캐럴 공연 등)에 예산 2억 5000만원을 지원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논란이 된 사업들은 견제세력이 미약한 속에서 그대로 추진되곤 했다.

이흥수 동구청장의 행정은 더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구청장은 취임 이후 전임 구청장이 추진한 사업들을 중단시켰다. 마을 만들기 사업과 주민참여예산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예산이 수립된 사업도 중단하면서 행정의 기본인 신뢰를 잃었다.

구청 공무원 다수가 반대함에도 불구,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미명아래 구청식당을 폐쇄했고, 이에 항의해 1인 시위를 벌인 공무원노동조합 간부에게 보복성 인사를 단행했다. 노조사무실 폐쇄 지시도 내렸다.

더욱이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던 화수청소년문화의집을 위ㆍ수탁계약 기간이 2년이나 남았음에도 합당한 이유 없이 폐쇄했다. 동구청소년수련관은 위ㆍ수탁계약 기간을 보장하는 대신, 시설 종사자를 감원하고 이용시설 규모를 대폭 줄였다.

동구청소년수련관은 물론 관내 일부 사회복지시설을 직영하겠다고 밝힌 것과 달리, 시설관리공단을 신설해 이 시설들을 위탁운영하겠다는 계획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청소년수련시설을 시설관리공단에 위탁ㆍ운영하는 것은 상위법인 ‘청소년활동진흥법’에 위배되므로 개선하라고 권고했고, 여성가족부는 이 권고안을 준수하라고 각 지자체에 전달했다. 동구가 어떻게 할지, 지켜볼 일이다.

시설 종사자들과 지역주민들은 토론회와 집회를 열고, 주민 1만 4400명의 ‘시설 폐쇄ㆍ직영 반대’ 서명을 받아 구에 제출하면서 구청장과 대화를 요구했다. 구청장은 결국 대화에 응했지만, 뜻을 굽히진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의회는 뒷짐 지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구속 기소된 같은 당 소속 박상은(중ㆍ동구, 옹진군) 국회의원 구명 탄원서를 받고 있었다.

급기야 ‘동구청의 불법적인 사회복지시설 위탁 계약 파기 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회’는 동구가 화수청소년문화의집 운영 유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지, 위ㆍ수탁계약 해지나 폐쇄 과정에서 고의성은 없었는지를 공익감사 청구로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독단․불통’행정의 근원은?

단체장이 ‘독단ㆍ불통’이라는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선 ‘정당 책임정치’의 실종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그러나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은 공천을 강행했고, 결국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버티다 못해 공천했다.

지난해 2월, 새누리당 당헌ㆍ당규 개정특위 위원장인 이한구 국회의원은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폐지할 경우 책임정치가 무너지고, 토호세력이 등장하는 등 부작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국회의원이 후보자 선출에 미치는 영향력을 축소하고, 여성의 정계진출을 확대함으로써 지방선거를 개혁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말처럼 정당 공천의 기본 취지는 책임정치이다. 그러면 새누리당은 왜 중ㆍ동구청장의 ‘독단ㆍ불통’ 행정을 제어하지 못하나.

두 단체장에게 정치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은 해당 지역의 당원운영협의회 위원장인 박상은 국회의원이다. 그러나 박 의원은 현재 ‘범죄 수익 은닉’ 혐의 등으로 구속돼있다. 범죄 수익이 12억 3000여만원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이 단체장들은 한동안 표심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공천을 걱정할 이유도 없다. 다음 선거까지 3년 6개월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지방의회도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중ㆍ동구는 집권여당 강세지역이다.

단체장이 ‘독단ㆍ불통’이라는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흥수 동구청장은 지난해 8월 마을 만들기 사업 중단 후 이에 항의하는 동구마을만들기네트워크 관계자들과 한 면담에서 “조택상 지지자와 내 지지자는 다르다. 조택상 전 구청장이 추진하고 주도했던 모든 사업을 100% 재검토해 전면 수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동구마을만들기네트워크 관계자가 “그러면 1만 7000명(=이 청장의 지방선거 득표)의 구청장이냐?”고 묻자, “1만 3000명(=조 전 청장의 득표)이 원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이냐. 내 지지자들은 마을 만들기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인천지역 공직사회에서 30년 동안 몸담았던 김경언(60) 인천자치문화연구소 소장은 “주민의 화합을 도모해야할 단체장이 오히려 주민을 편 가르기 하는 것은, 자기가 더 많은 주민의 지지로 당선됐다는 오만과 편견 때문이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내쳐서는 안 된다. 그건 주민 참여와 자치를 막는 행위”라며 “행정은 절차를 지켜야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수렴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자고 설득하는 것이 단체장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또, “최근엔 갈등조정심의위원회를 두는 지자체도 있다. 불가피하게 발생한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하기 위해서이다. 갈등이 심화될수록 행정력을 낭비하게 되고, 가장 중요하게는 행정 불신을 초래한다. 이는 관과 민 양쪽에 손해”라며 “무엇보다 전체 주민을 위한 단체장이라는 의식과, 주민을 화합하려고 노력할 때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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